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 Dec 26. 2023

‘축복을 비는 마음’을 읽고

김혜진_축복을 비는 마음


읽쓰말사 책 모임의 올해 마지막 책인 김혜진 작가의 <축복을 비는 마음>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기도 하고, 책 제목이 연말에 어울리는 제목일 듯하여 한 해를 따뜻하게 마무리하겠다고 ‘섣불리’ 생각했다. 그런 기대는 뭐하러 혼자 김칫국 마시듯 하는 거지? 싶게 책은 사실 우중충한 편에 가깝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기대였기에 김혜진 작가의 소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소설이 별로였단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김혜진 작가의 소설스러웠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 역시 읽으며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었는데, 그의 소설이 늘 그랬다. 이 소설을 읽으며 어쩐지 그의 전작 중 하나인 <너라는 생활>이 생각나기도 했다. 퀴어 시선의 소설 속에는 가난이 밀착되어 있었고,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상의 어떤 주류나 중심에서 비켜난 사람들이 존재했다. 김혜진 작가는 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제멋대로 판단하거나 희망적으로만 그리거나 쉽게 동정하지 않아서 좋다. 그러니까 이 소설 역시 그랬단 거다. 인생이 한쪽의 것만 가득하여 마냥 기쁘고 신나기만 하진 않지 않던가. 당신에게 가난이나 어떠한 결핍도 없다면 모를까, 이 소설 속 색채가 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의 서사는 그렇다.


<축복을 비는 마음>에 담긴 소설 속에는 모두 ‘집’에 대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담겨있는데, 나에게도 ‘집’이란 주제는 뒤처질 리 없는 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에서 살아왔고, 많은 집과 집이라 부르기 뭣한 방들에서 살아 오늘에 이른 나에게 ‘집’이란 공간은 언제나 갈망하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었지. 거실이나 욕실처럼 이른바 ‘보통의’ 가정집으로 쉽게 그려지는 구조에서 비켜난 삶을 오랜 시간 살아오고,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채 살면서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없고, 원가족의 민낯을 24시간 매일매일 수년을 넘어 또 그만큼이 꼬박 쌓이는 시간을 살아내야 했던 나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남달랐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한순간도 떼어짐 없이 가난이 들러붙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고개가 돌아가진 않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가난한 사람들, 삶의 많은 순간이 부대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중충하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한탄이 많다고 하여 그 삶에 인생의 기쁨이 전혀 없다고 판단할 수 없고,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는 걸 알고 있다. 삶이란 그렇게 흐른다는 것도.


이 소설의 제목이 빛을 발한 것은 그런 생각들의 이어짐 뒤였다. 마냥 신나고 기쁨이 넘치지 않는 삶이라도 나는 매일 그 삶을 살아내고 있고, 이 속에서도 축복을 비는 마음은 존재한다. 집다운 집이란 것이 있다면 그 이미지 속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가지 못했지만, 지금 내 삶이 원망이나 억울로 낭비되고 있지 않고, 누군가를 맹렬히 미워하지도 않고, 같이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 가난은 자꾸만 움츠러드는 마음을 만들며 금이 가고 갈라지는 소리를 만들곤 하지만, ‘마음을 일으키며 앞을 보고 걷는다.’ 무너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미래가 있다면, 나에게는 그런 마음이다. 그렇게 이제는 내가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언제든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말을 내가 다정하게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축복을 비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을게요.


- <축복을 비는 마음>을 읽고, 2023년 12월 26일

작가의 이전글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