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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an 27. 2024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켄로치_나의올드오크

켄로치 감독의 마지막 장편 영화라고 하는, <나의 올드 오크>를 드디어 보았다. 개봉 소식 듣고부터 계속 상영시간을 본다고 오오극장을 많이 검색했다. (물론 다른 영화관도 있겠으나^^;) 그러다 드디어 오늘 시간이 맞아서 보고 왔는데, 너무 좋았다. 여운이 긴 영화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좀 더 소화되어야 할 것 같다.


영국 북동부의 한 마을. 탄광으로 활기가 있던 마을은 폐광 후 많이 달라졌다. 가난해진 삶, 활기뿐 아니라 사라진 희망, 무기력한 아이들. 그런 마을에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이 살아가게 된다. 자신들의 불행이 그들때문인 것처럼 혐오를 퍼붓고 경계를 긋는 일부 마을 주민들 속에서 TJ는 이도저도 아닌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 마을이 낯설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고국을 떠나 낯선 국가로 들어와 맞이한 것이 욕설과 차별인 시리아 난민들 중 수용소에서 영어를 배운 야라와 TJ는 폐광에 반대하며 파업했던 당시의 이야기와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증오로 표출되는 문제가 난민들에게도, 마을 주민들의 문제만으로도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치와 국가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대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폐광 반대 파업시 주민들이 매일 같이 밥을 먹으며 나눈 연대와 단단한 다정, 환대를 다시 이어가고자 했던 시도가 너무 빛났다. 불상한 난민을 돕자가 아니라, 불쌍하고 가난한 마을 아이들을 돕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모이고 함께 연대하여 마주하기 위한 시간. 그때의 장면은 난민보다 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아이들이 더 각인되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공짜인지, 지속되는지, 계속 와도 되는지 묻는 아이들이 이후 좋은 건 계속되지 않는다고 희망은 없다는 이야기를 할 때,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주민들에게 소중한 의미에 더불어 전한 ”용기, 연대, 저항“의 메시지는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이 영화는 엔딩에서 보여준다. 사실 예상치 못한 엔딩에 켄로치 감독이 말하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에 대해서 너무너무 여러 생각이 오갔고, 여운이 짙었다. 우리가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당신의 삶이 안전하다는 것이 나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가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도 멈춰지지 않고, 또 방관하는 권력 관계 속에서 누군가들의 삶은 무너지고 짓밟히고 있음을.


&켄로치 감독의 영화는 각본 역시 그이지만은 않다. 폴래버티 각본은 이전 감독의 작품에도 늘 함께였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가 정말 좋아서 뭔가 귀한 마음이 되었다. 참고로 TJ를 연기한 배우는 데이브 터너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영국 북동부에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야라 역의 에블라 마리외 영화에 나오는 시리아 난민들도 해당 지역에서 만난 실제 난민들이라고 한다.  그럼 야라의 동생역인 배우도 그렇다는 건데, 나는 엔딩에서 마을 사람들이 애도를 하기 위해 사방에서 야라의 집으로 모일 때, 그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우는 듯한 모습 이후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잊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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