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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Mar 11. 2024

퀴어링하며 다시 쓰여지는 세계

한정현_쿄코와 쿄지


좋아하는, 한정현 작가의 <쿄코와 쿄지>의 첫 소설이자 프롤로그는 그의 등단작이다. 그 소설 안에서 그는 광주항쟁을 다루고 있다. 내가 먼저 만나온, 그러나 이 등단작 이후의 세계인 그의 소설들 역시 그렇다. 그는 항상 우리가 여성/젠더, 퀴어로서가 아닌 역사 그 자체로만 만나온 장을 다르게 접하게 한다. 한정현의 소설은 퀴어링한 역사 소설인데 그로인해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어느 곳에서나 여성이, 퀴어가, 소수자는 존재했다는 것을. 언제나 사람들은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그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쿄코와 쿄지’에서는 ‘아돌프와 알베르트의 언어’에서 남쪽으로만 칭해졌던 지역명이 나온다. 광주. 그리고 들불야학이란 이름도. 8일 뉴스에서 지나가는 단신 기사로 윤상원 열사의 사망 경위가 밝혀졌단 걸 알았다. 그리고 다음날 읽는 소설에서 나는 들불야학을 만나 그를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이 소설은 그러한 역사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적인 공간으로 치부되던 가정에서의 폭력과 차별을, 여자와 결혼한대서 집안에서 쫓겨난 여자가, 인터섹스의 몸과 지정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성별 정체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좋아하고 함께 살았으나 제도적 힘이 없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이 짧은 소설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그것이 어떤 류의 영화처럼 욕심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다. 사람들은 다양하고 그 다양함이 그대로 존중 받지 못하고 폭력에 노출되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도 고통스럽지만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소설은 광주민주화항쟁만 다루고 있지 않다. 부마항쟁, 용산참사 그리고 베트남전쟁 등 국가폭력을 다루고, 삼풍백화점 사건과 같은 사회적 재난을 다룬다. 가스라이팅, 스토킹, 폭행, 강간 등 성적 폭력도 이야기한다. 이 폭력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은영 작가와 또 다른 방식으로. 그가 말했듯 정말 논문과 소설의 사이와 같이.


‘리틀 시즌’은 ‘쿄코와 쿄지’의 연작소설인 듯 인물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줄리아나 도쿄>와도. 이것은 한 작가의 소설을 계속 읽으며 만나는 재미/발견의 요소이기도 하다. 제도권 내에서 어떤 증명을 할 수 없는 존재들이 나오지만,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해보려“는 이들로 눈물을 얻지만, 그보단 더 큰 용기와 사랑의 마음을 얻는다. 역시 이 책에서도 변함없이 ‘낙관’의 마음이 나오는 것도 그때문이려나. ‘리틀 시즌’의 번식용 개들을 보면 9남매를 낳은 할머니가 떠오른다고, “나중엔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조차 없어졌을 거”란 상화 선생님의 말을 읽으며 나는 지난 여름에 만났던 네팔의 한 산간지역의 젊은 여성들이 떠올랐다. 2030세대의 여성들이 가진 수 회의 출산 경험에 대해.


이어지는 ‘지금부터는 우리의 입장’은 다시 ‘리틀 시즌’의 연작소설로 그 소설에서 잠시 언급됐던 이들이 주요인물로 나온다. 여성을 사랑한다고 세상에 말할 수 없던 여성, 사랑같은 건 모른다고 폭력에 노출됐던 무성애 스펙트럼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말이 안 된다고 쉽게 무시하도 쉽게 판단하고 쉽게 지워왔으나 결코 쉽지 않았던 마음들에 대해 이 소설은 당신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는 더 전에 발표되었는데 또 앞선 소설의 주인공과 이어진다. 그뒤의 소설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한정현 작가의 다른 소설에도 이미 만났었음에도 이 소설집에서는 계속해서 놀라웠다. 하나의 소설 속에서 스치듯 나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그려나가는 소설의 세계가. 그러니까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큰 세계관에서 뻗어나오는 이 이야기들이. 이 퀴어링한 세계가.


‘쿄코와 쿄지’ 소설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 외에는 다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면서 배제하며 살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역사를 그리고 우리 사회를, 일상을 젠더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며 바라보고 퀴어링한다는 건 이런 깨달음을 확장하고 다시금 세계를 써내려가는 게 아닐까. ”한 소설집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렇게 멋진 과정을 지나 결과를 만들었다.


덧붙임: 그의 등단작 ‘아돌프와 알베르트의 언어’를 읽으며 얼마전 읽은 <전쟁같은 맛>의 저자 그레이스에게 전하고 싶었다. 엄마의 다른 목소리 ‘오키’에 대해, 그러니까 생각이 나게 한 이 소설의 ‘옥희’에 대해. “발음의 한계로 그가 자꾸만 오키, 라고 발음하면 몇몉 주한미군 출신의 미국인들이 해방촌 뒤의 ‘오케이 걸’들이 떠오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는 문장을 읽고 떠오른 그의 엄마의 ‘목소리’인 ‘오키’가 생각나고 엮여졌다고 말이다.


<쿄코와 쿄지>, 한정현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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