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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Mar 15. 2024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하마노 지히로_성스러운 동물성애자


정희진 선생님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는 동물성애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면에서 충격을 전해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또 다른 한편으론 생각해본 적 없던 것에 대해 만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글에 인용된 일본에서 출간되고(관찰 대상은 독일의 단체-당사자들이다) 한국에도 번역된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를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이 책은 대구의 모든 공공 도서관 중 단 2곳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이 책은 인간과 비인간동물 사이에도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나온다. 이때의 ‘사랑’은 흔히 말하는 것과 좀 다르게 친밀함, 감정 교류뿐 아니라 성적 행위도 포함되며, 대등한 사랑의 교환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 나온다. 저자는 독일의 ‘동물성애 옹호단체’ ‘제타’의 ‘주파일’을 대상으로 참여 관찰하여 이 책을 썼다. ‘제타’는 동물성애에 관한 이해를 촉구하고 동물학대를 방지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활동을 한다. 회원 다수는 남성이며, 수컷 동물과 애착 관계와 성적 실천을 행하는 ‘주파일 게이’가 과반수이며, 또 그들은 전부 수컷 동물을 받아들이는 섹스를 하는 ‘페시브 파트’이다. 이 책은 ‘수간’과 ‘동물성애’ ‘페시브 파트’를 구분한다. (주파일은 다양한데, 이 책은 단체의 탈퇴자에게 높은 윤리관으로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로 불리는 ’제타‘ 회원들을 상대로 하여 대체로 ‘페시브 파트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와 주파일 레즈비언 역시 관찰 대상으로 등장한다.)


나 역시 정희진 책을 통해 구분되지 않고 있던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책 제목은 한국어판 추천의 글의 강상중 교수가 썼듯, 누군가에게는 ‘음담패설’인가 싶어 오히려(?!) 호기심을 자아내거나, 혹은 누군가는 “으웩” 하고 책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겠다. 반면 나의 ‘상식’이란 것을, ‘규범’이란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와장창’의 시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정희진의 책에서 느낀 바는 그러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BDSM의 가능과 긍정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성적 실천에 대해서 그러하지만, 그럴 수 있음의 중요한 전제는 ‘동의’였기에 나에게는 성적 폭력이 그러할 수 없듯이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간 역시 그러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은 지점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초반에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해 쓴다. 수 년을 함께한 파트너에게 ‘성폭력을 비롯한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하던 피해자였’음을. 한 페이지 정도 적힌 폭력의 경험은 눈을 감아버리게 하는 너무 화가 나는 가해였다. 이 책은 동물성애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고 생각해봐야할 지점은 ‘정상’이라 여겨지는 가부장제 이성애 규범 속 폭력적인 성문화이다.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처럼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도 폭력과 범죄가 존재하며, 이 책에서는 주파일과 구분한다) 저자 역시 주파일들과의 만남을 통해 쉽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덮어지는 ’폭력‘에 대해, 그리고 ’섹스‘에 대한 규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파일이 파트너 동물과 맺는 관계와 고민하는 대등성을 들여다보면, 그들을 단지 동물과 섹스하는 자들로만 정리할 순 없다. 이성애 규범만이 정상적 사랑이며, 때론 그 안에 존재하는 폭력의 면까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뭉개져왔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해제의 정희진의 글처럼 “에로틱의 의미는 언제나 재정의되어야” 하며, 사랑의 정의 역시 그러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인간과 동물의 대등성에 대해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겠어?”라고 말한 친구에게 나는 대등하다고 믿고, 대등성에 대해 나눌 수 있다고 전제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무수한 폭력에 대해, 그것을 용인해온 사회 문화에 대해 역으로 생각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정희진의 해제 마지막 문장을 같이 기록해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성 노동의 성애화, 여성 섹슈얼리티의 상품화, 만연한 젠더 폭력, 구조적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남성 문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새로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종도 편견도 넘어선 사랑>, 하마노 지히로 지음, 최재혁 옮김, 연립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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