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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Mar 15. 2024

오늘도 골골한 몸으로

김미영•김향수_골골한 청년들


세계보건기구 헌장에 규정된 건강의 정의대로라면, 과연 그에 부합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질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를 정의한 연유에 대해 예상되지 않음은 아니지만, 이것은 과연 실현 가능의 목표인가.


‘골골한 청년‘ 중 한 사람인 나는 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노동을 하며 살아갈 것으로 기대되는 30대 청년 세대이나 나는 이미 ’건강‘의 표상에서 미끄러진 ’만성질환자‘이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여러 개, 정기적으로 몇 군데의 진료과에 외래 진료를 ’아픈 몸’의 사람이다. 작년에는 내 소득분위 기준보다 많은 돈을 의료기관에 사용해서 환급을 받기도 했다. 건강보험제도 등으로 큰 돈은 아니라고 하겠으나, 정기적 의료 비용이 부담이 없지 않은 높지 않은 임금과 가난한 살이의 여성청년이기도 한 나에게 몇 년전, 쓰러짐 이후 ‘관리’해가는 질환들은 나를 더이상 아프지 않은 건강이나 완전한 안녕과는 다른 몸으로 해석해야함을 뜻한다.


그럼에도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더 강화되더라도 우리 사회와 같은 분절적이고 상업화된 보건의료 공급 체계에서는 많은 이들이 길을 잃기 쉬운데, 나는 신뢰할 수 있는 보건의료인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혼자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문제를 운으로 넘겨도 될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이고, 이는 당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골골한 청년들>에서 다양한 정체성과 삶의 모양을 가진 ‘골골’한 청년들을 만났다. 가장 왕성하고 건강할 시기라 불리는 2030 세대의 아픈 몸의 청년들이 존재한다. 건강은 모두의 목표랄지, 청년은 아픔과 거리가 멀거나 아픔은 나약함으로 인식되는 등 편견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왜 이 청년들이 아프게 되었는지, 어떤 사회정치적/환경적 요인이 원인이 되고 또 얽혀있는지 고려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해서 아픈 청년들을 만나고 또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그들을 ‘버릴’ 것이다.


몸이 아플 때 필요한 치료나 계속되는 진료에 따른 비용 부담, 또 아픈 몸이란 이유로 오는 사회적 시선과 일을 할 때의 어려움, 경제적 상황 등이 언급되면서 이 책의 몇 군데에서 ‘기본소득’이 언급되기도 했다. 누군가 청년수당이나 재난수당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누군가는 전청년에게 동일하게 지급되는 기본소득보다 소득분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것이 더 필요성이 크고 효과가 크지 않겠냐는 이야기, 질병 당사자의 변동이 큰 상황이 있으니 기본소득 같은 제도가 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만났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필요하다 생각하기에 반가웠으나, 이 책에서 기본소득이 언급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가 만나 여러 생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파도 생활을 안전하게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가는 삶이 누군가에게 죄스러움이 되지 않도록 협소한 정상성 기준으로 건강을 내세우지 말고 다른 보편, 다른 돌봄, 다른 건강에 대한 관점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프건 아프지 않건 누구나 잘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조건은 이 사회가 곰곰이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잘못도, 개인의 몫으로 미뤄서 해결할 수 있음도 아니다. 너무 빠른 속도와 경쟁, 이윤을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가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당신과 내가 미끄러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ㅡ


<골골한 청년들>, 사회건강연구소 기획, 김미영•김향수 지음,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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