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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마리아미즈•반다나시바_에코페미니즘

by 수수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에 쓰여 지고, 24년 전에 한국에 처음 출간된 마리아 미즈와 반다나 시바의 『에코페미니즘』은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고 유효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과학기술이 “그저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모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나 사건 역시 그렇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젠더와 다양성은 여러모로 얽혀 있다.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만든 것도 생물세계의 다양성을 제거하고 절멸시킨 개발패러다임이 그러하듯 이 차이를 다루지 못하는 무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가부장적 세계관에 서는 남성이 모든 가치의 척도로서 다양성의 여지는 없고 오직 위계만이 존재한다. 여성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불평등하고 열등하게 취급받는다. 자연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 가치 있어 보이지 않으며 오직 상업적 이익을 위한 경제적 착취를 통해서만 가치가 부여된다. 상업적 가치기준은 이렇듯 다양성을 문제점과 결핍으로 환원한다. 다양성의 파괴와 단일경작의 창출이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지상과제가 되는 것이다.” 가부장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주변화하고, 자본의 논리는 단일품종 플랜테이션으로 생물다양성을 파괴를 일삼고 끝없는 과학기술의 진보는 별개로 각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함께 존재하며, 서로에게 매달려 있다. 마리아 미즈와 반다나 시바에게 ‘다양성의 상실’은 “단일문화, 획일성, 동질성을 향해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는 가부장적 진보 모델이 치른 대가이다.”


우리는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회를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남성과 같아지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성별 불균형에 저항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이야기하는 것이 단순히 남성과 동일한 몫을 요구하는 것인지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고민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과 같아지고 싶은가? 기술은 여성을 해방시키는가? 둘 다 어떤 면에서 분명 그러한 점이 있을 것이고,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속화되는 지금의 사회에서, 그리고 전체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지속적으로 갇힘을 경험하게 되고, 또 이러한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분리를 경험하는가. “피식민자와 식민자의 관계는 결코 동반자적인 것이 아니라 전자에 대한 후자의 강제와 폭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관계야말로 축적의 중심에 놓인 무한성장의 비밀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누가 약자가 되고, 이용되는가. 누가 버려지는가.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무엇이며, 지켜내야할 것은 무엇인지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최근 주디스 버틀러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이후인 12월 4일 그는 한겨레21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게다가 그가 미리 약속했던 강연의 주제는 ‘민주주의와 인문학의 미래’였다. 그의 인터뷰에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먼저 그는 『연대하는 신체들의 거리의 정치』 이야기를 하며 ‘관계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몸은 열려 있다. 코로나19 때 깨달았듯 우리는 서로의 숨을 나누면서 연결되고, 키스할 때 타액을 교환한다. 서로 요리하고, 먹고, 넘어지지 않게 도우면서 계단을 오른다. 서로 넘어지는 것을 막으려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의 인프라다.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신체에 대한 생각은 급진적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된다. 장애학은 상호의존적 관계를 일깨운다.”라고 말했고, 이어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도 하며 “상호의존성은 신자유주의 저항의 핵심이다. 인간만이 서로에게 상호의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생명을 희생하여 인간의 삶을 증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모든 곳의 생명 과정에 상호의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에코페미니즘을 “매우 강력한 운동”이라고 하며, 인간이 자연에 대해 위계를 설정하고, 우위에 서려 했던 지난날에 대해 “지구와의 관계를 성찰하고”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멈출 줄 모르고 달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상호의존성을 껴안고, 이 지구와 다른 관계 설정을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만의 혹은 너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고 그런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에코페미니즘은 말한다. 2024년에도 변함없이 유효하게, 아니 더욱더 강력하게.


<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반다나 시바 지음, 손덕수·이난아 옮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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