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대신이라는 혼모노

혼모노_성해나

by 수수

<괴물들>을 읽고 바로 이어서 <혼모노>를 읽은 건 참 우연치고는 나이스했다. 아니, 나이스가 맞나? 첫 단편인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물의’를 일으킨, 폭력을 쓴 감독과 그 감독을 ‘사랑’하는 이들이 나온다. 애써 외면했던 것이 빵 터져버리고 더는 감독을 ‘빨지‘ 않는다. 요즘 잘 나가는 성해나 작가의 첫 단편부터 아, 참 MZ스럽다 혹은 그런 것들을 훅 알겠다 싶더라(물론 얕은 수준이겠으나). <스무드>를 읽고 책을 잠시 덮고 생각에 빠졌다. 이 소설에 나오는 소위 ‘태극기 집회’와 말하자면 나는 언제나 그들이 반대하는 쪽에 있는 사람이다. 어떤 때는 그들에게 욕을 먹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런 그들의 ‘축제’에서 ‘귀한‘ 반응 그러니까 받는 이로 하여금 무언지 알 순 없지만 그래서 자꾸만 유대감이 미끄러지게 되지만 그럼에도 환대받고 환영받는 것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 아니 여러가지 마음 조각이 되었다. <혼모노>를 읽기 시작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참 소재가 다양하네.’ 성해나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는 거였는데, <혼모노>를 읽을 때쯤은 조금 피로해지기도 했다. 어느 하나 은은한 이야기가 없다 싶어.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어떤가. 여전히 나치즘에 대한 옹호나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생각나기도 했다. 희망을 가질 수 없이 공포를 가중시키겠다는 생각에도 인간을 중심으로 두고 배치한 생각이라면, 우리가 인간을 중심으로 두겠다는 것이 한끗 차이로 존중이나 배려가 아니라 공포와 폭력, 통제가 될 수 있을지 소설로 하여금 섬찟해진다. 회사 생활이나 이윤적 관계가 아니더라도 <우호적 감정>에서의 수면 위와 아래의 너무 다른 모습, 그 갈등이 어디 없는 삶이 있을까 싶어 공감이 가고 한숨이 길어지면서도 그럼에도 풀어가고 엮어갈 수 있는 관계, 그 장에 대해서도 곰곰해진다.


열풍에 열풍이라 도서관에서 빌릴 수가 없던 <혼모노> 나도 드디어 읽었다. 박정민 배우의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역시도 이해가 된다. 심심할 틈 없는 다양한 주제가 여기 다 있으니까. 다만 그게 내 취향인가, 는 좀 다른 문제라서 예컨대 내가 첫 소설집을 엉엉 울면서 끌어안고 본 000 작가나, 수 차례 읽는 000작가의 책과는 내겐 다르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읽었기에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볼 생각이다.


<혼모노>, 성해나 소설집, 창비


p20-21 멍하게 스크린을 보고 있자니 난해하 기는 했어도 그동안 봐온 한국 영화와 이 영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폭도 나오지 않았고 여성이 무참히 희생되지도 않았으며 신파도, 생에 대한 헛된 희망이나 자비도 없었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독특했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p191 선생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여재화는 흠칫했다. 이제껏 구보승이 밀어붙였던 합리와 대척점에 놓인 사고였다. 드디어 인간을 고려하다니. 독학하는 과정에서 건축의 기조를 깨달은 게 아닐까, 어렴풋이 유추하며 여재화는 안도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에 창이 없어선 안 되지.

네. 제가 선생님의 뜻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창이 필요했던 건데······ 저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으니까요.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p273 저 양반도 일생 부모 정 못 받고 살아온 사람이야. 너도 그랬다고 하지 않았니? 아가, 난 말이다. 결핍이 집착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애정도 적절히 내어줄 줄 알아야 해.

그러니 이 반지는 서진이 말고 네가 가지라고, 그랬으면 한다고 시모는 말했다. (잉태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괴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