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루니, 노멀 피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태이거나 기분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라난 사람, 메리앤, 메리앤은 매일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속에서도 자신의 진짜 삶은 실은 다른 곳에 있고 그 삶이 자신을 빼고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현실에 발 딛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몹시 외로웠고 늘 이상한 취급을 받아왔다. 그런 그녀는 대학에 가서 더는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인기가 있고 친구도 생기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실은 잘 모르는 사람, 코넬. 운동도 잘하고 공부 잘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던 코넬이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 잘 모른 채 순응하며 살아온 코넬은 헬렌과 만나며 평범하고 잘 들어맞는 관계라고 너무나 생각하지만, 때론 자기가 아닌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비밀의 관계였던 메리앤과는 잘 되지 않던 표현의 모습도 헬렌과는 잘 되었는데, 자신도 평범하고 잘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삐걱 거리는 것들.
메리앤과 코넬,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알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시간이 늘 안녕하거나 행복한 결말만 주어졌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했다. 이해하려 노력을 떠나 흡수되듯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 사실 이 둘은 둘만으로 온전한 독점의 관계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메리앤은 자신이 코넬에게 소유되기를, 소유되어 잇기를 바라는 욕망이 있기도 했고. 하지만 학교에서 혼자였던 메리앤과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배제되지 않길 바랐던 코넬의 비밀의 관계는 그것을 발화하고 요구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더군다나 코넬은 찌질함은 있었지만, 그는 윽박지르지 않았고, 대체로 보기 힘든 안전과 평등, 동의에 대해 사고하는 (남성)사람이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여서 안전했다. 메리앤이 나는 네 것이라고 소유에 대해 말할 때, 코넬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생각하지 않은 것을 넘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코넬은 메리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소유물로 취급하지 않는다. (코넬이 빠졌던 것은 그가 그런 캐릭터여기 때문이기도.)
두 사람을 보며, ‘이상한 나’에게 ‘이상한 너’인 타인이 다가와 ‘이상한 우리’가 됐다면 그건 ‘노멀’해지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노멀 피플’이지 못할까? 하며 이상한 그들은 외롭고 지치기도 했지만, 사실 ‘노멀’이란 것이 무엇인가. 그 ‘노멀’이 무엇이길래 그 경계가 확 그어져서 비-노멀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지. 까짓 어때. 그냥 이대로의 삶, 모두 ‘노멀’이다, 같은 마음이 자꾸 들어서 두 사람의 곁에 서고 싶었다.
나는 이 소설의 결론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해피엔딩이 아닌 다른 해피엔딩이어서 좋았다. 코넬은 뉴욕으로 떠날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떠나지 않은 메리앤은 더블린에서 코넬에게 말했듯 “넌 가야해. 난 항상 여기 있을 거야.”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것이 슬픈 이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새로운 각자로서의 삶, 안고 달릴 사랑의 기억, 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 또 다시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고 나는 너무나 생각하고, 그러길 바란다. 시간이 흘러 또 다시 서로여도 물론 좋다. 지금의 그들에게 펼쳐질 순간 순간들을 응원하니까.
메리앤과 코넬 모두에게 저자 샐리 루니가 나뉘어 담겼다고 생각되었다. 어느 한쪽이 아니라. 나는 너무 다르면서 너무 닮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메리앤과 코넬 모두에게 샐리 루니가 이입되어 있고, 불어 넣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자신의 이상을 그렸을 거라고 이상한 확신 같은 그런 생각을.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드라마로 보고, 소설로 읽고, 다시 또 드라마로 보면서 나는 메리앤과 코넬을 내내 응원하고 같이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리 말하냐? 싶겠지만, 이제 메리앤이 현실에 발 딛고 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여태도 그래왔겠지만, 자신을 의심하거나 못났다고 감춰왔던 시간과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가난의 문제로 늘 자유롭기 힘들었던 코넬도 하고 싶은 글쓰기를 계속 해나가고 그 행위를 지지받으며 조금 더 자신을 믿고 안전하다는 감각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니 절로 내게도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잘 살아가고 싶다고. 그래야겠다고.
사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메리앤이나 코넬보다 헬렌에 가까운 사람이고 로레인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메리엔과 코넬이 조각조각 존재할 것임을 안다. 서로에게 서로가 한 것들로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이 서로의 몫으로도 온전히 펼쳐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으며 더 나은 스스로로 변화되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옆에 혹은 뒤에 혹은 그리 멀지 않은 가까이에 오롯하게 서서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