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by 수수

1.


책을 읽으며 자주 코를 지그시 눌렀다. 눈물이 나려 할 때는 그렇게 코를 약하게 눌러댔다. 시선은 운이 좋았던 걸까, 다행이었던 걸까, 생각하다 그 생각을 지웠다. 쉽게 다행이란 말을 내뱉지만, 그렇게 툭 뱉어지는 다행에 대해 자꾸만 붙들고 서성거리게 되었다. 다행이란 말은, 정말 아무것도 다행이 아니어서 이어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사실 처음에는 부러움의 감정이 주를 차지하며 앞으로의 삶에 대해 흥얼거리듯 상상하다가 조금 길을 벗어나서 이내 골이 났었다. 그 당시에 시선과 같은 사람은 흔하기 어려웠고, 시선으로부터 나온 이들의 삶 역시 시선에게서 온 영양분으로 가능했을 테니까. 그런 영양분을 받을 수 없는 사람, 받을 수 없었던 사람은 어쩌란 말이야? 라며 괜한 심술을 부린 시간이 존재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시선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노골적인 시선과 온갖 추정들 속에서 살아내기 위해 썼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아냈다. 화수가 제 할머니인 시선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 그러니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 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그러니까 가슴이 터지지 않고 살아온 이에게 그게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심하고 폭력적인지.



할머니에게 받은 조각 같은 건 존재할 리 없는 나는 할머니가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할머니를 상상할 수가 없어서 자꾸만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인 엄마, 여자인 엄마, 엄마인 여자, 엄마가 아니었던 엄마, 엄마가 아니었다면 그 여자. 교육의 기회라는 말에 위험한 나락에 닿기도 한 여자들. 교육의 기회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여자들. 모멸감으로 차오르는 여자들. 모멸감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여자들. 로맨틱한 결혼을 하는 여자들. 폭력인지도 모르고 받아들이는 여자들. 마음이 부러지는지도, 부서지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여자들. 삶의 그 순간순간을, 오늘 오늘을 체념한 듯 그러나 체념으로서는 할 수 없는 기세로 헤쳐나간 여자들. 그런 여자들 속의 엄마가, 명자가 자꾸 생각이 났다. 이 책에서처럼 심시선 가계도같은 건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명자를 생각하며 나는 불쑥 3대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 내가 사랑하는 엄마, 명자.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엄마에게 3대를, 그러니까 명자가 할머니가 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저 나와 명자에서만 이야기를 만들고, 결을 나누고, 밀도를 높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선으로부터 뻗은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며 참 달고 쓰디쓰게 웃고 울면서 나는 나의 시선을 아래로 향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바라보는, 지금 이곳의 여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름들을 지킬 수 있기 위해서.



2.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너무 오래된, 너무 이상하지만,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숨죽여왔던, 우리가 바라지 않던 어떤 ‘시선으로부터’ 뚫고 나오는, 그러니까 권위에 맞서고 어제와 다른 오늘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목소리들을 지지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꾸 이야기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꼭 이래야 하냐고. 미투가 사람을 죽였다고. 가짜 미투나 무고 꽃뱀을 운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미투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고 싶단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를 피해경험자의 용기는, 피해경험자를 향한 지지의 목소리는 그 무엇도 흐릿하게 만들지 않는다. 세상을 망치지 않는다.



작가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발화를 생각하며 문장을 썼다고 했다. 그러나 가해가 되는 자살은 마지막이 없이 계속되고 있는 사회를 나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라는 말은 가해자에게 하고 싶지 않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면, 성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동시에 이루어진다. 마우어가 시선에게 그럴 수 있었던 것도, 안희정이 김지은에게 그럴 수 있었던 것도, 박원순이 A씨에게 그럴 수 있었던 것도, 그간 우리가 만나온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도. 그렇기 때문에 사실 다른 어떤 글보다도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글에서 나는 단호하다.



늘 승리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지 않았지만,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나는 승리하는 싸움을 하고 싶다. 성폭력 가해자가 아닌 성폭력 피해경험자와 지지하는 이들이 승리하는 싸움을. 지금 당신은 그 가해행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 방관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피해경험자를 외면하며 부르는 내일의 노래가 탁한 노래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책임을 노래할 수 있나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잘’아플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