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나는 서로가 멀어져서야 비로소 싸우지 않았다

by 수수

아빠와 나는 서로가 멀어져서야 비로소 싸우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싸움터 같았던 집은 동생이 엄마에게 데려가달라고 호소하고, 나는 집보다 안식처가 된 기숙사에 들어가버린 후 고요한 곳이 되었다. 주말마다 집에 가면 아빠는 내게 설거지 하나도 시키지 않았다. 먹고 싶다는 음식을 시켜주거나 아빠가 직접 밥상을 차리곤 했다. 희석되고 이리저리 흐물해진 기억이겠지만, 한 번은 아빠가 순두부찌개를 만들어준 적이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정말 두부와 양파 말고는 텅 빈 국물인 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후에 떠오른 그 기억이 잘 믿어지지 않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망가듯 엄마가 사는 곳으로 왔다. 아빠가 나를 부양할 수 없다는 확신은 나를 낯선 곳으로 이주하게 하였고, 대학 이외 생각해보지 않았던 낯설어 설움이 되기도 한 스무 살의 시간이 흘렀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던 때라고 가난이 멀던 건 아니지만, 행복하건 아니건 ‘우리’로 쓰이던 이들은 이 이후부터 ‘나’로 바뀌어 제각각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아등바등해왔던 것 같다. 그런 삶의 경험은 어떤 생각을 붙잡게 만들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내 부모의 못난 탓, 나의 잘나지 않는 탓, 그 탓들 속에 허우적대다 ‘운동을’ 만나 조금씩 일어나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고단함이 시궁창이 되는 세상의 절댓값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건 가난과도, 그 가난이 닿고자 하는 삶과 구원 서사와도, 그 삶 이상을 누리는 이들이 긋는 경계선과도, 결코 그 경계선에 설치된 승강기의 버튼을 자신을 손으로 누를 수 없는 이들의 위치와도 연관되었다.”라는 임지은의 문장을 오래도록 생각하며 사는 삶. 아빠의 남루한 차림과 방 한 칸의 공간을 떠올려본다. 그것도 벌써 몇 년 전이다. 어떤 이의 책제목처럼 그는 집이 아니라 방에 살고 있었고, 나는 방이 아닌 빌린 집에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만 집중해 산다. 결국 나도 그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우리는 흩어진 점들로 오늘도 살아간다.


다른 원가족구성원에 대해서도 메모를 남겨두었는데, 나는 그 안에서 어쩐지 모를 마음을 안고 아빠를 집어 올렸다. 오래전 어떤 날, 오랜만에 마주한 내게 그는 데모가 위험하다 했고, 그렇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변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라고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사이 좋은 관계로 웃으며 만나고,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아빠와 나는 서로가 멀어져서야 비로소 싸우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나에게 뻐근하게 짓누르는 존재이지만, 나는 내가 싸우고 싶은 대상도, 싸워야할 대상도 그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정말 아빠와 나는 서로가 멀어져서야 비로소 싸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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