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_중앙역
많은 사람들은 노숙자, 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 없이 불쾌한 존재로 생각할 거다. 그들의 사랑이나 안위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 자체가 조금 충격적일 수 있다. 이 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역과 옆의 광장의 사람들이다. 거리에서 살아가다보면 오히려 조용한 방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수년 전, 대학을 상대로 생활임금 투쟁을 하던 농성장에서 잠을 잘 때, 천막을 찢을 기세로 부는 바람이 오랜 시간 마음에 남았었던 것이 책을 읽으며 다시 기억이 났다. 광장은 벗어나야 하는 곳. 광장의 사람들은 ‘비정상’의 사람들, 아무리 자리가 비어도 옆에 누구도 앉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갖게 되는 방은 무엇일까. 소음이 차단되고, 바람이 없다고 해서 그곳이 마땅한 공간이라 할 수 있을까. 쪽방은 거리보다 훨씬 좋은 공간이고, 권해져야할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정적으로 쉴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고, 안전할 수 있는 ‘나’의 ‘방’에 정말 이 사회는 함께 내어야할 몫이 없을까.
제 한 몸 책임지지 못하고, 악취를 품고 사는 이의 삶은 누가 비웃고 무시할 수 있나. 그 속에서 만난 두 사람의 매일이 지긋지긋한들 그게 당신의 입에서 함부로 내뱉어질 것인가. 절망이라 한들 결코 사랑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자유가 누구에게 있을 것인가. 가느다란 끈이지만, 붙잡을 것 하나 꽉 잡고 하루를 지나 또 내일의 하루를 맞이하는 것. 사실 그런 것의 상상은 불가능의 것도, 소설만의 것도 아닌데 왜 쉽사리 ‘다른’ 혹은 ‘틀린’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일까. 궁금해 하지도, 예의 그 질문이란 것도 던지지 않을 거면서 쉽게 경계 밖으로 쫓아내는, 쫓겨나는 사람들. 재개발 속에서 강제 철거가 되고, 누군가 죽어나가도 멈춰지지 않는 그 행위는 시멘트 건물만의 훼손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 속에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김혜진 작가 소설은 언제나 표정이 구겨지고 만다. 울컥하니 슬퍼지고 만다. 그의 소설은 어째 웃게 하질 못한다. 기쁘지도 웃지도 못하지만, 읽는 동안 애착이 생겨버리는 소설들이 있다. 어두워지는 절망 속에서도 해가 있는 곳으로 포기하지 않고 가게 하는 소설이 있다. 김혜진 작가가 내게 그렇다. 읽는 곳이 고통스럽더라도 그의 소설을 기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