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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Apr 28. 2021

사랑 역시 자기 돌봄이로구나

어쩌다 책, 글쓰기

- 사랑 역시 자기 돌봄이로구나.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의 북토크가 줌으로 진행되었다. 그는 앎이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나는 차곡차곡 쌓이는 앎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앎이며 글쓰기가 그렇다고 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쓰기 시작한 이후는 쓰기 전과는 다른 자신이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또 다른 앎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앎이라고 했다. 그것은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되는 앎이라고 했고, 그녀는 노들야학과 동물권이 그런 앎이 되었다고 했다. 나에게도 장애 인권을 처음 만났을 때와 페미니즘이 그랬다. 너무 당연하고 익숙했던 세상이 눈물이 펑펑 쏟아질 만큼 낯설어지고 다르게 보였고, 내가 만들어온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무너짐은 처음에 너무 당혹스럽고 아프기도 했지만, 이내 반길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세계가 한번 무너지고 나니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 그전에 들리지 않던 것들이 쏟아지듯이 들어오게 된다.


그는 장애인권 운동과 동물권 운동을 이야기하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참느라 혼났다. (결국 질의응답 시간에 혼자 눈물을 주루룩- 흘려버렸지만) ‘운동’을 시작했던 어떤 날들을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할 수 있다면 너를 성장시키고, 나를 성장시키고, 함께한 이들과 그 운동의 곁을 확장시켰던 그 시간들을.


처음 어떤 단체와 그 단체의 활동 그리고 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내가 받은 충격과 불안을 아직 기억한다. 비장애인이란 인식과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살아온 지난날과 지금-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가 모르고 있단 이유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 다른 이야기지만 처음 곁의 이에게 여성주의 운동이 하고 싶다고 오랜 고민 끝에 말을 꺼내며 울었던 그 밤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최근의 내게는 활동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기 돌봄’이 계속 키워드인데, 나를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것조차 자기 돌봄의 하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울었다. 나를 무너지게 했던 앎이 반가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도,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속도를 찾아가고 알아봐주는 것도, 때론 싫은 마음과 미움이 가득 차 있는 나를 모르고 흘러간 시절을 돌이켜보고 지금 사랑하는 것들의 세계를 걷는 것도 모두 자기 돌봄이구나.


우리가 서로 성장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로서의 사랑이라면, 그것은 곧 나를 돌보고 너를 돌보는 일이구나. 나라는 사람은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고민이기도 했겠지만, 별 수 없이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사랑을 느끼는 존재구나. 우리가 세상만이 아니라 ‘나’의 아픔과 돌봄과 기쁨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하고 듣고 나눌 수 있어서 지금이 좋다. 한때 내가 머물던 그 시절의 그 공간과 관계와 경험을 후회하지 않지만, 지금의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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