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독이 되던 시간을 이겨낸 방법
퍼스널 브랜딩 초창기 때 일이다. 1인 브랜드로 일하겠다 결심하고 1주일도 안 되어 내 루틴은 증발하듯 사라졌다. 기상 시간은 부모님 모두 출근하시는 10시 이후였다. 사실 그보다 늦어질 때도 많았다. 아침에 텅 빈 거실에서 소파에 누워 릴스를보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지나 12시가 된다. 냉장고를 뒤적이다가 라면을 끓여 먹으면 13시가 된다. 식곤증에 잠깐 누워 있다보면 15시, 16시가 되는데 이쯤 되면 인간인 이상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제야 책상에 앉아 보지만 그날따라 책상이 지저분해 보여서 정리를 한다. 하루 절반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날려 버린 허탈감은 저녁까지 이어진다. 어느새 부모님이 퇴근하고 오신다. ‘부모님도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데 젊은 나는 오늘 하루 뭐 했지?’ 죄책감에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한다.
이렇게 악순환이 생겨났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하루가 반복되었다. ‘이러다가 정말 인생 망하겠는데?’라는 걱정이 쌓였다.
무너진 루틴을 되찾기 위해 각종 자기계발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유명 유튜버들의 아침 루틴부터 억대 부자들의 하루 루틴 등을 찾아봤다. 일어나자마자 이불 개기부터 창문 열기, 명상하기, 집 청소하기, 10분 동안 눈을 감고 하루에 할 일과 일어날 일을 미리 그리기 같은 것이었다. 속는 셈 치고 하나씩 따라 하기 시작
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일찍 일어나 이불을 개도, 창문을 열고 아침 공기를 마셔도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뻔한 소리였구나. 역시 잘되는 사람들은 진짜 노하우를 공개하지 않는구나.’ 속았다 싶었다. 어느 날 한 콘텐츠가 눈에 들어왔다. 한 유튜버가 새벽 6시에 일어나 한달 동안 매일 새벽 러닝을 하는 영상이었다. 평소였으면 넘겼을 텐데 이상하게 호기심이 생겼다. 한 달 동안 변화하는 모습과 장단점까지 솔직하게 말하는 콘텐츠를 홀린 듯 끝까지 보게됐다. 이후 알고리즘은 러닝 관련 콘텐츠를 계속 추천했다. 영상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달리기로 성취감과 자존감이 올라간다. 이 말에 ‘어쩌면 이걸로 내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생겼다. 다음 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 알람이 울렸다. 눈을 뜨자마자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왔다. ‘오늘은 뭐부터 해야 하지?’, ‘오늘도 그냥저냥 하루가 흘러가면 어쩌지?’ 같은 생각들이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아, 아침 러닝 하기로 했지?’ 간단히 세수하고 운동화를 신으려던 찰나 또 망설였다. ‘뛴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냥 좀 더 자고 오후에 맨정신으로 시작하는게 낫지 않을까?’ 이상했다. 직장 다닐 때는 아침 시간을 내 삶에 쓰고 싶었는데 막상 시간이 생기자 피곤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가 독 같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러닝 코스가 잘 갖춰진 집 앞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 방 천장에 가려졌던 아침 하늘은 생각보다 파랗고 높았다. 청량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 앞으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러닝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내가 늦잠 자고 멍하니 있던 시간에 이들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구나. 나이키 러닝 앱을 켜고 뛰기 시작했다. “3… 2… 1… 시작!” 러닝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괜히 나왔다는 후회는 숨과 함께 빠져나갔고, 땀이 흐르기 시작하자 점점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웠다.
하지만 직장 다닐 때 운동은커녕 퇴사 후엔 집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던 내게 3km는 무리였다. 1km도 못 가 숨이 찼다. 뛰기싫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 정도면 됐지, 그냥 돌아갈까?’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스스로에게 지는 느낌이었다. 퇴사 후 쇼츠나 보며 시간을 보내던 내가 떠올랐다. 더는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이기고 싶었다. 속도는 걷는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결국 목표였던 3km 지점을 넘었다.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토할 것 같았다. 턱 밑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첫 러닝 기록은 구간당 7분 후반대로 형편없었다. 하지만 땀에 젖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뚜렷한 승리감을 느꼈다. 더 자고 싶은 나를 이기고 일어나 뛰었다는 사실 하나로, 내가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날 짓눌렀던 불안과 걱정이 사라졌다. 집에 돌아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아침 러닝을 계속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때부터 무너졌던 내 생활 패턴은 아침 러닝에 맞춰 바뀌기 시작했다. 트렌드를 리서치한다는 핑계로 밤늦게까지 쇼츠와 릴스를 보던 습관을 끊고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아침엔 눈을 뜨자마자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켜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처음엔 일주일만 해 보자고 시작한 아침 러닝은 한 달을 넘기고 50일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뚜렷한 변화를 느꼈다.
첫 번째는 자존감이었다. 50일 넘게 내 의지로 일어나 뛰고, 에너지를 얻는 과정을 반복하며 알게 됐다. 자존감은 동기부여 영상 몇 개 본다고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은 내가 세운 작은 목표를 하나씩 해냈을 때 쌓이는 성취감에서 나왔다.
두 번째는 체력이었다. 1km도 못 뛰던 내가 이제 3km 정도는 가뿐히 뛸 수 있게 됐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체력이 좋던 20대에도 3km를 쉬지 않고 뛴 적은 없었다. 퇴사 후엔 더 심해졌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만들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지만, 10시간만 넘기면 다음 날에는 몸살로 앓아누웠다. 흡사 유리 몸 같았다. 하지만 50일 넘게 매일 3km를 뛰다 보니 13시간 이상 작업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체력이 올라갔다. 체력이 받쳐주자 끈기가 생겼다.
세 번째는 생산성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속도 수입도 없는 백수 상태라면 더욱 부정적인 에너지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런데 50일간 아침 러닝을 하며 알게 된 것은 러닝이 뇌 운동이라는 점이었다.
10분만 뛰어도 숨이 차고 땀이 나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과 조금만 더 해 보자는 생각이 맞붙는다. 온전히 러닝에 집중하는 그 순간, 불안이나 콘텐츠에 대한 걱정이 끊어진다. 마치 컴퓨터 디스크 조각 모음처럼 머릿속이 정리된다. 꼬인 생각을 정리한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콘텐츠를 구상하게 되고 작업 효율도 높아졌다. 그렇게 얻은 에너지는 콘텐츠 제작에 온전히 쏟아부었다.
불안은 1인 사업가라면 누구나 느끼는 기본값이다. 어떤 계획을 세워두었든 현실은 뿌옇고 불확실하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나 근거 없는 위로가 아니라 작은 목표를 달성하면서 자존감을 지켜내는 것이다. 자존감을 지키려면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체력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만약 지금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나에게 맞는 루틴을 찾아보자. 내 리듬을 찾고 페이스를 지켜야 비로소 여유가 생기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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