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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Nov 28. 2019

당신의 24시간을 우리에게 온전히 맡길 수 있나요?

<세시에서 세시, 네시에서 네시> 공연 관람기

여러분은 하루 몇 번 시간을 확인하세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출근 후 커피가 당길 때? 오후의 나른함을 느낄 즈음? 업무 마감이 임박했을 땐 수시로? 그런 당신에게 어느날 시간을 확인할 수 없는, 심지어 공간과 사람, 낮과 밤도 분간키 어려운 어둠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떤 일상을 보내실 건가요?


11월 15일부터 24일까지 서울혁신파크 연수동 소셜스티치에서는 새로운 시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장소성’, ‘관객 참여’, ‘커뮤니티’에 중심을 두고 실험적 공연을 지속해온 ‘코끼리들이 웃는다’ 팀이 신작 <세시에서 세시, 네시에서 네시>를 선보이며 관객과 만난 것인데요. 칠흑 같은 어둠 속, 관객이 경험한 신비한 24시간을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자, 떠날 준비되셨나요?




예술은 어렵습니다. 고등학생 때로 치자면 '물리Ⅱ' 급의 넘사벽이랄까요? 여차여차의 경험들로 제게 예술은 일상과 동떨어진, 조금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런 예술문외한에게 어느날 연수동 소셜스티치사회혁신가들을 위한 커뮤니티 호스텔가 공연팀 '코끼리들이 웃는다(이하 '코웃다')'와 함께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D-20
시간을 인지하는 레이더는 모두가 다른 것 같아요.


공연의 단서로 추정되는 문장들이 ‘코웃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어디선가 보고 들은 공연에 관한 단서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늘어납니다. “24시간 이어지는 공연.", "큰 도전에 함께 할 관객을 찾는 중", "휴대폰을 포함한 전자기기 사용 제한.", “시각장애인과 함께 관람하는”... 별 생각 없이 공연 예매를 해둔 상황에서 늘 그렇듯 때 늦은 걱정과 후회가 밀려옵니다. '답답하진 않을까? 화장실은 제때 갈 수 있나? 포기하면 집에 보내줄까? 어쩌자고 덜컥 발을 들여놓았나...'



공연 당일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시간은 2시 45분입니다.” 그 시각, 저는 낯선 부스 안에 멀뚱히 서 있게 됩니다. 부스 앞쪽엔 초록빛 광택이 나는 솔들이 바람에 나부껴 사그락사그락 간지러운 소리를 냅니다.



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 당신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건너편에 선 낯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홀린 듯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까지 넘겨주고 나니 미뤄둔 잡무며 집에 두고 온 강아지가 동시에 생각났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앞으로 더듬더듬 손을 내밀어 낯선 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당신의 24시간을 우리에게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연수동 내부는 암실이나 다름없습니다. 눈을 감아도 떠도 매한가지인 어둠이랄까요? 본능적으로 눈을 최대한 부릅떠 내부 구조를 파악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두통만 심해집니다. 연수동 안으로 들어온 관객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 듯했습니다. 그 무리가 짧은 기차가 되어 관객들 모두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앞을 향해 걸어갑니다. 한없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지만, 동선이 제멋대로 꼬여 붙잡은 어깨도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계단을 오를 땐 울퉁불퉁한 건물 벽을 짚어가며 계단의 시작과 끝을 가늠해봅니다. 도착한 방문 앞에는 오톨도톨한 원형 물건이 달려 있었는데요. 그제야 어둠 속에서 들었던 문장 하나가 떠오릅니다. “당신의 방은 돌멩이 방입니다.”



맨 얼굴로 만나다


참여자들은 네 개 조로 나뉘었습니다. 제가 속한 조의 이름은 ‘동’조였고, 기운 센 ‘팔팔이’, 용솟음치는 ‘드래곤’, 목소리가 고운 ‘클래식’, '규규' 알림 소리를 내는 ‘마스터’까지 모두 네 사람입니다. ‘코웃다’ 팀 가운데 한 분일 ‘스타킹’ 님이 ‘동~ 동~ 동~ 동~’ 높은음을 내며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오오~ 오오~ ’, ‘으으음’, ‘만!만!만!’ 네 명의 길잡이가 각기 다름 음과 박자로 소리 내며 서로의 위치를 알리고 확인합니다. 어둠에 조금 적응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상황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였을까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끼리 킥킥 거리며 웃고 소란한 감정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한치의 배려 없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몇 개의 방들을 옮겨 다녔습니다. 각 방에선 다양한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덕분에 초면인 분들과 함께 정수리를 맞대고 막춤을 추고, 상상 속 푸른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옷자락에 차를 엎지르고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우아하게 차의 향을 음미했습니다. 중력처럼 자신을 잡아끄는 일상의 짐들도 토하듯 뱉어냈습니다. 무례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궁금하지 않아서였는지, 누구도 서로를 깊이 알기 위한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순간순간의 안녕을 확인하고 농담을 주고받으면 그뿐.



아무런 배경 정보 없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일은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원으로 둘러앉아 도미노 게임을 할 때부터 옆에 앉았던 슈퍼맨 님은 “제가 너무 겁이 많아서요.”를 연발하며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제 옷자락을 잡아 끌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전국 도보 여행을 다닌다는 마스터 님은 실없는 농담의 일인자로 등극했습니다. 시각장애인 분들이 관객으로 함께 참여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들은 바 있었지만 공연이 끝날 때까지 누가 장애를 가졌는지 알 방법은 없었습니다. 알 필요도 없었고요.

공연이 끝난 뒤 함께 한 사람들은 명함 속 직함이나 이름, 나이가 아닌 잊을 수 없는 수식어로 남았습니다. 듬직한, 소극적인, 침착한, 친절한, 호방한, 귀여운, 겁이 많은, 당찬, 정다운, 재밌는, 믿음직스러운, 고마운...



쏜살같지 않은 하루


어둠 속에서 가장 답답했던 순간은 시각을 알 수 없을 때였습니다. 반납하지 않은 디지털카메라가 외투 속에 있었지만 꺼내 볼 강단도 없었죠. 시간은 조금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시간이 더디게 가듯 말이지요. 연이어 나오는 하품, 적막을 깬 새벽의 버스 엔진 소리, 때마다 허기진 배로 다만 시각은 추측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고 일어나 비몽사몽 아침을 먹을 땐 여기저기서 의심병이 돌았습니다. “아까 내려온 시각이 여덟 시 정도니까...” 라고 누군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덟 시인 걸 어떻게 알았어요?” 날 선 반응을 보이거나 “다들 보이죠? 나만 안 보이지?” 우는 소리를 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듯했습니다. 걸을 땐 내 어깨를 잡은 뒷사람의 속도에 발을 맞췄습니다. 혹여 그가 내 어깨를 놓쳐 넘어지거나 길을 잃을까봐요.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시간은 그리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일상에서 나를 쫓던 시간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요?


어둠은 끝이 아닌, 우주다



연수동 공간은 처음 만난 듯 다르게 읽혔습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층간 계단 수를 외워야 했고, 철제 침대에 이를 박은 뒤론 허공에 손을 뻗어 반드시 앞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둠 속 출처를 알 수 없는 빛이 스며들어 만든 현상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저는 아이슬란드에서나 볼 법한 오로라를, 유영하는 반딧불이를 보았습니다.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우주를 떠돌던 소설 속 주인공이 겹쳐 떠오르기도 하고요. 문득, 어둠은 끝이 아닌 무한한 우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주 안에서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은 역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공연 이튿날엔 손만 잡아도 그가 떡볶이 님인지, 아이유 님인지, 팔팔이 님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안대를 한 채 차를 타고 이동해 야외로 나갔을 땐 정오로 추정되는 따뜻한 햇살이며, 비에 젖은 풀 내음,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로 시공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민해진 감각으로 그려낸 길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습니다. 상상 속 풍경은 세밀했고, 생각보다 무척 즐거웠습니다.






약속했던 24시간이 다 되어, 바깥으로 나갔을 때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눈이 깨질듯 아팠습니다. 공연의 여운은 오래 이어졌습니다. 지하철에서는 휴대폰을 보는 대신 일부러 땅을 보거나 눈을 감은 채 귀를 쫑긋거리며 걷는 모험을 일삼았습니다.


<코웃다> 팀의 이진엽 연출가를 만난 것은 공연이 끝나고 나흘이 지난 뒤였습니다. 다시 들어선 연수동 어딜 둘러보아도 제가 본 우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코웃다> 팀은 연수동 소셜스티치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공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고 합니다. 거리에서 시민과 함께 실험적 공연을 이어온 <코웃다> 팀에게도 24시간 공연은 모험이었다고요.


“우리가 상상한 것을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해준 파트너를 만났다는 사실이 감사해요. 연수동에서 이번 공연을 한 것은 '신의 한수' 였어요."


<코웃다>의 이진엽 연출가는 공연이 끝나기 직전 관객이 그렸던 그림들을 아무 말 없이 제 앞에 내밀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연출가의 의도’를 포함한 일체의 공연 정보를 묻지 않기로 마음 먹었죠. 이제, 예술은 '어렵다'는 말만으로는 정의하기가 조금 어렵게 됐습니다. 예술은 다만 우리를 다른 시공간으로 안내할 뿐이죠. 나의 24시간을 당신이 책임져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친구들도, 안녕.




글 ㅣ 서울혁신파크 기획전략실 홍보문화팀 나무

사진ㅣ 나무, 사진작가 박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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