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카페 이진리 (EASILY), 강릉

커피는 쉽고, 후추는 맛있다

by 김고로

나와 이쁜 여자는 결혼을 하기 전에도 제법 커피 맛이 좋은 카페라거나 식당들을 찾아다니는 데이트를 하고는 했다. 당시에는 안정적인 고수익 알바..... 같은 것은 영원히 세상에 없고, 안정적인 정규직 회사원도 아니었기 때문에 지갑 사정이 지금만큼은 좋지 않아서, 지금처럼 이런저런 집들을 식도락 다니는 데이트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잔잔한 분위기와 커피맛, 디저트 맛이 좋아서 이쁜 여자와 곧잘 가는 단골 카페가 하나 있었다.


'카페 이진리', 강릉의 이명 고개에 자리 잡은 지하실과 1층, 옥상까지 있는 옛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과거의 감성을 가게의 인테리어에 녹여낸 편안한 공기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분위기의 카페다. 입구에는 커다랗게 'EASILY'와 '이진리'라고 쓰인 작은 입간판이 자리를 지키고, 꼭 벨을 누르고는 도망가고 싶게 생긴 아담한 대문에 울타리가 있는 시멘트 마당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느 동네에 있을법한 단독주택에 사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 집에 놀러 간 듯한 카페의 풍경이 펼쳐진다. 짙은 유광이 말끔하게 마감 처리된 나무 천장에 장의자, 라디오, 샹들리에, 오르간, 화장대에 석유보일러, 명이 고개의 가로수길과 골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통유리벽, 거기에 더해지는 재즈의 흥겨움. 예전에는 지금만큼 손님이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친절한 바리스타님들. 덕분에 나와 이쁜 여자는 결혼 전에도 여기서 많은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결혼 1주년 기념사진도 이곳에서 찍었으며, 지금까지도 나와 이쁜 여자의 소중한 추억들을 이곳에 담았다.


결혼을 한 후에는 집 근처에 다른 단골 카페가 생겨 'comma의 단골카페'라고는 부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강릉에 괜찮은 카페가 있나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의심의 여지없이, 확신을 가득 담아 자신 있게 추천을 해줄 수 있는 카페가 바로 '카페 이진리'이다. 나는 분위기 있는 카페나, SNS용의 사진을 찍기 좋은 이쁘고 특이한 메뉴가 있는 카페는 가지 않는 편이다. 나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카페를 간다, 설탕의 달달함이나 크림의 부드러움이 가미된 음료들 보다는 커피 원두의 품질과 바리스타의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맛있는 음료들이 입맛에 맞는 카페를 간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은 바닷가나 관광지 주변보다는 도심에 있는 곳이 많은데 카페 이진리도 그러하다. 카페들과 공방, 갤러리숍들이 모여있는 이명고개에서 교동사거리로 곧게 뻗은 거리의 맨 위에 카페 이진리가 있다.


카페 이진리는 '카페'이기 때문에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와 비카페인 음료를 포함해서 다양한 메뉴들과 디저트들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료들을 소개하고 싶다.


이진리18.jpg 이진리에는 여러 드립용 기구가 있지만, 주로 이용되는 것은 칼리타이다.
이진리17.jpg 드립커피와 화이트초콜릿마카다미아 쿠키

싱글 오리진 핸드드립: 내가 자주 가는 카페들의 특징은 싱글 오리진 원두를 매장에 구비해두고, 핸드드립 커피를 하며, 그 핸드드립 커피들의 맛이 상당히 좋다는 것이다 (혹은 에스프레소가 맛이 좋거나). 이전에 나의 집 근처에 있는 어느 단골카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 싱글 오리진 원두가 가진 맛을 제대로 드립커피 한잔에 담아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그것을 잘하는 바리스타가 훌륭한 바리스타고, 그 맛을 담고 있는 드립커피는 맛있는 커피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 주관으로 정한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카페 이진리는 향과 맛이 둘 다 훌륭한 드립 커피를 내린다. 원두들은 서울이나 부산 등 전국 각지의 로스터리의 원두들을 사용하고 주기마다 다른 원두들을 들여와서 제공하기 때문에 때마다 다른 원두를 맛보는 즐거움도 있다. 커다란 드립잔에 가득 담아주기 때문에 드립의 풍미를 즐기기도 전에 커피가 사라지는 슬픈 일은 없으니 마음 놓고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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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커피: 카페 이진리에서 개업할 때부터 자신 있게 탄생시킨 이진리의 간판 시그니처 음료이다. 이진리에서는 싱글 오리진 드립커피를 제외하고는 프릿츠커피의 블렌딩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블렌딩을 사용한 이진리의 라테는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거기에 부드럽고 달콤한 하얀색 크림을 얹고 캄보디아에서 수입해온 최고품질의 후추인 캄폿 후추를 갈아 올려 마신다. 달콤한 크림에 고소한 라테의 맛이 입안에 가득 들어오는구나 싶을 때에 향긋하고 살짝 매콤함, 훈연향을 가진 후추의 풍미가 혀와 울대를 살짝 치며 들어온다. 통후추가 커피에 어울리는 맛이라고?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있었고, 고객들을 설득하기 위한 오랜 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 이진리에서 제일 유명하고 간판이 될만한 음료로 고객들에게 인정받으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후추, 크림, 라테를 분리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크림과 라테를 꿀꺽하면서 후추의 풍미가 깔끔하게 달콤고소한 커피맛을 마무리해주는 느낌이 좋아서 나도 한동안 이 음료만 마신적도 있다. 가끔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피곤한 날에는 퇴근길에 지친 몸으로 자전거를 끌고 이진리에 와서 시원한 후추커피를 주문해서 한두 입 크게 목으로 넘겨 빨리 마시고는 카페에 온 지 5분도 안되어 자리에는 앉지도 않고 바 근처에서 커피를 다 마시고 집에 오는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옆에서 내가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릴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진리 사장님이나 바리스타분의 시선을 느끼지만, 이렇게 확 달콤한 것이 당기는 날에 '쭈-욱'하고 들이킬 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매콤한 맛이 매력적인 커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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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 시나몬슈가: 프릿츠 블렌딩으로 내린 아메리카노에 계피와 설탕을 더해서 마시는 달콤하지만 가벼운 커피이다. 별명으로는 계피설탕과 커피가 만난 맛이 꼭 쌍화탕과도 같다고 하여 '쌍화리카노'라고도 불린다. 일반적인 아메리카노의 맛에 싫증이 나거나, 달콤하면서 가벼운 커피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설탕을 넣어서 달콤하면서도, 계피에 의해서 깊고 묵직한 풍미가 은은하게 코와 입안에 감돈다. 달콤한 커피를 원하지만 크림이나 우유가 들어간 무거운 커피는 싫으신 분들, '쌍화리카노' 한잔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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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카라멜라떼: 아이스만 되는 커피이다. 커피를 잘 못 마시지만 그래도 카페인이나 커피맛이 들어간 음료를 원하시는 분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고 싶지만 씁쓸한 맛이나 복잡한 풍미는 꺼려지시는 분들, 단순하게 달달하고 부드럽게 맛있는 커피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커피이다. 실제로 내가 이진리에 커피를 잘 모르는 친구나 처음 오는 친구와 함께 오면 추천해주는 커피이기도 하다, 달콤하고 부드러우니 꿀렁거리면서 식도로 쭉쭉 들어가는 맛이다. 캐러멜이 들어간 진하고 끈적한 달콤함이 함유된 이진리 카페라테에 매 주문마다 직접 부드럽게 쳐낸 신선한 크림과 함께 섞여 들어오면 '와!' 하면서 그 달달함에 눈이 번쩍 뜨인다. 카페인의 약간의 씁쓸한 맛과 신선한 크림의 맛 덕분에, 커피가 무겁고 묵직하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접근성이 높고 커피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메뉴이다. 크림이 많다 싶으면 크림을 먼저 쭈욱 들이키는 것도 괜찮지만, 아래에 있는 카라멜라떼와 크림을 한꺼번에 마시는 것이 부드럽고 달콤하니 더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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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리 카페쓰어다: 베트남의 국민 커피이자 세계적으로도 '베트남 커피'하면 음료이다. 이진리에서는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로부스타와 큰 캔에 담긴 진한 베트남 연유를 직접 수입해와서 실제 베트남에서 먹는 카페쓰어다를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이야기 한 이유는, 실제 베트남에서 먹는 것처럼 잘게 갈린 얼음을 넣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진리의 카페쓰어다는 개인적으로 매우 맛있어서 내가 카페인을 많이 마시면 잠을 못 자는 것만 없었다면 계속 마시고 싶은 맛이다. 이진리에서 내린 진한 로부스타의 특징은 커피에서 참기름 맛이 난다, 그렇다 '열려라 참깨!'의 그 참깨에서 진하게 내린 참기름 맛, 끝까지 엄청나게 고소한 맛이 커피에서 난다. 카페 이진리의 이진리 바리스타님의 추천으로 마셔본 이진리 카페쓰어다를 첫 모금 마셨을 때 '와!' 하는 소리를 내며 '무슨 커피가 이렇게 고소하냐'라는 생각뿐이었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로부스타는 이 정도로 고소한 맛인건가'하며 카페쓰어다가 괜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료가 아니구나 싶었다. 거기에 끈적하고 진하며 혀가 녹을 듯 달콤한 연유가 유지방의 풍부한 맛과 함께 커피와 섞이니 '백종원 선생님이 베트남의 카페쓰어다를 괜히 언급하신 게 아니었군'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소함과 쌉쌀함, 달콤함과 부드러운 유지방의 풍미가 맛의 균형을 완벽하게 잡아주며 하나의 완벽한 커피를 만들어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 맛있는 커피를 자신들만 먹고 있었단 말인가, 꽤나 억울한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제는 나도 좀 같이 먹어야겠다.


카페 이진리에는 위와 소개해드린 음료들뿐만 아니라 과일차나, 에이드류의 비카페인 음료도 다양하며 사장님이 매일 직접 마스카포네크림을 만들어 올리는 티라미수, 사랑받는 에그타르트와 달콤한 쿠키도 함께 판매하고 있으니 놓치지 말고 커피와 함께 즐겨보시길.


카페 이진리가 강릉에서 오래오래 커피를 내려주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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