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벨라쿠치나, 속초

라자냐와 깔조네, 감히 누가 이탈리아를 가볍다고 하였는가

by 김고로

속초에서 달고 진한 육수로 유명한 쌀국숫집, 매자식당을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쇠고기의 진하고 감칠맛 나는 육수를 입술이 반들반들해지도록 흡수하고 오가는 길에, 매자식당을 오가는 작은 언덕 아래에 '이탈리아 가정식' '손수 반죽하는 도우와 파스타'라는 흑판으로 만들어진 입간판을 앞에 내걸고 영업을 하는 이탈리아 식당이 눈에 들어왔었다.

당시에는 매자식당의 쌀국수를 목적으로 하고 왔었기 때문에 (매자식당이 지금만큼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벨라쿠치나'라는 부부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 크지 않은 이 이탈리안 식당을 가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하나 이 식당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내가 매우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깔조네(반으로 접어서 굽는 커다란 만두처럼 생긴 이탈리아 피자, 이탈리아어로 '커다란 양말'을 뜻한다)와 라자냐를 메인 메뉴로 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몇 년이 흘러도 속초에 가더라도 이 식당의 휴일인 월, 화요일에 방문하게 되어서 가보지 못했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강릉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고향인 고양시 일산구로 돌아가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곰군'이 잠시 강릉에 놀러 온 것이다. 곰군이 강릉에 있을 때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나는 '속초 커피투어'를 하고 싶었던 나는 차를 빌려 곰군과 속초로 향했다. 아침에 강릉의 '펌킨오울'에서 미트파이에 수프, 에스프레소로 식사를 하고 가고 싶었지만 갑작스럽게 '펌킨오울'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군침을 머금고 사이폰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홍제맨션'에 들려 사이폰 커피에 블루베리잼을 곁들인 토스트로 아침을 먹고 커피투어를 시작했다.


"형, 근데 우리 오늘 어디 가요?"


"벨라쿠치나. 라자냐랑 깔조네 먹으러."


"깔조네가 뭐예요?"


"어... 깔조네가 뭐냐면..."





2006년, 중국, 동완시.


내가 살던 중국의 남부지방, 삼국지에서는 손권의 오나라가 통치를 하던 지역. 우리나라의 경기도만 한 크기의 동관시에서 거주를 했었는데, 대한민국의 기업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기업들의 임원과 가족들이 살고 있던 동네에 나는 살았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일본 음식점을 포함해서 여러 나라의 음식점들이 즐비했는데 그중에 내가 좋아했던 음식점 중 하나가 수염 거뭇거뭇한, 이탈리아 아저씨가 운영하시던 이탈리아 식당이었다.


나로 하여금 인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토마토라구와 이탈리아 피자를 경험하게 해 준 곳이었다. 토마토와 살라미, 다진고기와 소프리토가 가득 담긴 토마토 라구가 놀라운 맛을 뽐내던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메뉴는 깔조네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 친하게 지내던 미국-독일 혼혈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집에 곧잘 놀러 가고는 했다. 그날도 주말에 이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마침 저녁 시간이 겹쳤다.


"야, 우리 깔조네 먹을래?"


"응? 깔조네가 뭔데."


당시에는 처음 듣는 음식의 이름이었기에, 내가 깔조네가 뭐냐고 묻자 그 친구는 씨익 웃으면서,


"엄청 큰 만두같이 생긴 피자, "


그리고


"Fxxing Awesome 하게 맛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동네의 그 이탈리아 아저씨의 피자집에서 깔조네를 배달시켜 주었는데, 피자박스를 열어보니 정말로, 그야말로, 나의 팔뚝만 한 커다란 만두가 뜨끈뜨끈한 김을 내뿜으며 누워있었다. 친구는 큰 칼을 가져와서,


"형이 이거 어떻게 먹는지 보여줄게."


큰 만두를 반 잘라서 한 손에 들고 그 속을 보여주었다.


"이거 보여? It's fxxing good, bro."


다진 쇠고기와 살라미, 토마토, 양파, 마늘, 모짜렐라 치즈 그리고 진득한 육수가 가득한 속이 영글거렸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의 눈이 돌았다. 그대로 한 손으로 뜨거운 깔조네를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짭짤하고 진하고 고소하며 감칠맛이 넘치는 쇠고기와 살라미, 토마토의 맛, 그리고 입에서 쭈욱 늘어나는 모짜렐라, 그리고 바질의 풍미, 나의 입안과 뇌 속은 빨간색, 초록색, 흰색의 폭죽이 뻥뻥 터지며 '게 부오나!'를 외쳤다. 홀린 듯이 두툼했던 깔조네의 부분을 먹어치우고 가장자리에 넘실거리며 고여있던 깔조네의 속들이 만들어낸 육즙을 후룩 들이마시고는 나머지 도우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 여름, 중국, 깔조네였다.






2022년. 12월. 강릉. 속초로 달리는 차 안.


"....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그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네... 그 이후로 제대로 된 깔조네를 내가 먹어본 적이 없어. 멜버른의 이탈리아 거리에서도 못 먹어봤어."


"와... 그래요? 좋아요, 가요! 내가 살게요."


"그래, 대신에 오늘 렌트비랑 유류비는 내가 다 낼 거야. 나 밥이랑 커피만 사줘."


"네~"


곰군과 나는 각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커피투어에서의 타협점을 찾아서 협의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7번 국도를 따라 곧 속초의 중앙초등학교 근처 주차장에 도착했다. 워낙 좁은 골목길에, 주차할 곳이 없는 동네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옆에 매자식당이 있어서 사람이 몰리는터라 나는 일부러 넓은 주차장이 있는 중앙초등학교 근처에 차를 세웠다. 벨라쿠치나에 2인을 미리 예약했었기에, 준비가 된 식탁에 앉아서 라자냐, 깔조네, 해물토마토파스타를 주문했다. 수제로 반죽한 파스타면의 맛이 어떨지 궁금했기에 파스타도 당연히 우리의 목표에 포함되었다.


짙은 고동색의 사워도우의 맛이 나는 빵과 올리브유, 발사믹이 식전 메뉴로 나오고 곧 이어서 깔조네, 라자냐, 해물토마토파스타가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오오오!! 깔조네!! 그래, 이거지!!"



다진 고기와 육즙으로 속이 가득한, 여러 조각으로 썰린 깔조네의 모습을 보며 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일까. 못 본 지 오래된 친구를 20년 만에 만나는 느낌이려나. 하지만 흥분과 기대는 아직, 금물이다, 아직 나는 음식들을 맛보지 않았으니까. 라자냐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라자냐를 덮은 토마토소스를 한 숟갈 살며시 떠서 맛본다. 입안에서 천천히 음미한다. 무겁지 않고 적당히 가벼운 질감과 토마토의 새콤한 감칠맛, 그리고 약간의 매콤함, 오히려 짠맛이 거의 없는 이 매콤한 토마토소스가 치즈와 고기, 라자냐면으로 이루어진 라자냐와 균형이 잘 맞겠다 싶었다. 나이프와 포크로 슬금슬금 라자냐를 썰어본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이 라자냐탑이 와르르 무너지지 않도록.



치즈나 소스가 덮인 것 없이 오븐에서 구워진 라자냐의 바삭하고 단단함이 입안에서 바사삭거리면서 씹히고 이어서 가볍고 매콤하며 새콤한 토마토소스, 그리고 진득한 치즈와 짭짤하고 진한 쇠고기의 고슬 거리는 식감으로 서론-본론-결론으로 맛이 이어지는 훌륭한 맛이다. 나도 집에서 1년에 1,2번 정도 라자냐를 직접 만들어서 먹는 편인데, 소프리토, 토마토, 고기 3종류 등을 넣어 매우 무거운 라구소스와 데친 시금치, 리코타 치즈를 넣어서 속을 채우고 모짜렐라 소스로 위를 덮는 라자냐를 만드는 나와는 다르게 벨라쿠치나의 라자냐는 맛의 균형이 매우 깔끔하며 식재료의 식감과 풍미가 향긋하게 살아있는 맛이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라자냐를 고소하고 달콤하며 쌉쌀하게 덮어주는 파마산 치즈의 눈송이들이 라자냐의 깔끔한 마무리를 더 도왔다.


'라자냐에 이러한 토마토소스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군.... 라자냐를 오븐에서 바삭하게 구워내는 식감은 언제 먹어도 좋아. 누가 먹어도 고기와 치즈, 토마토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어서 느끼하다는 말은 한 개도 할 수 없을 거야.'


나는 바리스타 곰군이 두툼하고 큼직한 새우, 홍합, 오징어를 뒤적이며 먹고 있는 해물토마토 파스타도 궁금했다. 내가 그에게 메뉴 맞교환을 하기 위해 라자냐를 작은 접시에 덜기 시작하니 그도 마침 나를 위해 해물토마토파스타를 덜고 있었다. 손으로 반죽한 파스타면이 탱글, 덜렁거리면서 '나 좀 먹어봐'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해물토마토 파스타, 이것도 역시나 토마토소스의 맛이 궁금했다. 한 숟가락 가득 소스를 퍼서 입안에 머금는다. 해물에서 우러나온 바다의 맛이 가볍게 느껴지면서, 라자냐에 끼얹어진 토마토소스와는 다르게 조금 더 무겁고 진득한 맛에, 토마토의 풍미는 조금 더 옅은 맛이었다. 새콤한 감칠맛이 적절하게 남아있었고 면에도 아주 잘 묻어서 살아있었다.



'그렇지... 토마토의 풍미가 너무 강해져 버리면 '해물토마토'라는 이름이 무색해져 버릴 거야, 해물과의 맛 균형이 안 맞을 테니까. 라자냐의 토마토소스와는 맛이 분명히 달라, 토마토의 질감이 더 굵고 조금 더 살아있어.'


탱글거리는 면을 입안에서 잘근거리면서 씹어본다, 일반적으로 사 먹던 건면만큼 윤기가 번지르르하고 매끈거리는 느낌은 없지만 특유의 씹는 맛과 찰랑거리는 식감이 재밌다. 혀와 치아 사이에서 수제 파스타가 입안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오히려, 반질거리지 않는 덕분에 토마토소스가 면에 더 잘 묻어 나와서 더 맛있다. 소스가 잘 묻어 나오는 식감 살아있는 파스타면, 무조건 합격이다.


"자... 이제 깔조네를 먹어볼까."


밀도 높은 갈린 쇠고기와 다진 마늘, 치즈와 그 사이로 육즙을 흘리고 있는 두툼한 깔조네 조각을 하나 들어서 반을 베어 물었다.



단단하고 얇아서 바삭거리는 도우의 풋풋하고 구수한 향이 화악 올라오면서, 진하고 고기로 꽉 찬 감칠맛과 진한 맛에 군데군데, 불꽃처럼 터지는 토마토의 맛. 입안에 가득 차는 구수한 도우, 진한 고기, 치즈, 토마토가 한 곳에 어우러져서 그 풍미가 나의 후각세포까지 모두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 중국에서 먹었던 이탈리아 아저씨의 깔조네 맛이 생각나며, 나의 깔조네를 갈망하던 영혼은 성불했다. 무겁다! 무거워! 그리웠던 이탈리아의 그 속이 가득하고 무거운 이 맛!



거의 20년 만에 제대로 된 깔조네를 먹음에, 나의 안구는 습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와.... 정말... 감격이다."


"그렇게 맛있어요?"


"제대로 된 깔조네를 속초에서 먹는구나. 거의 20년 만에."


그렇게 나와 곰군은 라자냐, 깔조네, 해물토마토파스타를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웠다. 식사를 다 하고 나서 나는 주방으로 달려가 식전 빵을 준비하고 있던 남사장님께 거의 20년 만에 제대로 된 깔조네를 맛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열렬한 인사를 드렸다.


벨라쿠치나 사장님들, 오래오래 장사하시기를. 깔조네와 라자냐가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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