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문화식당, 강릉

김치만두와 다진 양념의 폭죽놀이, 폭발하는 즐거움

by 김고로

김치는 한국의 전통음식이다, 하지만 모든 한국 사람들이 김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듯이 나도 그러하다. 김치와 밥만 있어도 밥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치 없이 매일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 나는 김치팬클럽에 가입되어 있지는 않다. 외국 유학시절에도 김치를 자주 먹지 못해도 아주 잘 먹고 잘 살았지만 가끔 김치를 보면 반가운 정도였을 뿐이다.

대한민국으로 다시 귀국해서 산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내가 김치를 그리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집에는 처가나 다른 이웃으로부터 받은 김치들이 많이 소비되지 않고 잘 숙성되어가고 있다. 내가 김치를 자주 먹지 않는다는 뜻은 내가 김치를 활용한 요리도 자주 즐기지는 않는다는 뜻이며, 김치만두도 내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음식은 아니다.


"문화식당 떡만둣국 먹었는데, 거기는 김치만두를 쓰더라."


"저번에 구커피 사장님이 추천해준 곳 얘기구나."


"생각보다 양이 많았어, 만두를 8, 9개 넣어주더라고."


단골 카페의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강릉에서 오래된 식당 중에 하나인, 용강동 서부시장의 '문화식당'을 다녀온 이쁜 여자는 자신의 문화식당 떡만둣국에 대한 경험을 나에게도 전해주었다.


"김치만두가 살짝 매콤한데 간이 세지 않고 슴슴해. 나는 맛있더라고."


"김치만두를 넣은 만둣국이라... 흥미롭네."


나는 김치만두보다는 고기만두를 더 좋아한다. 매콤함이나 알싸함 없이 진득하고 고소한 육수가 흘러나오는 속에 부추나 쪽파 등 아삭거리는 채소가 들어간 단순하고 큼직한 고기만두. 교자만두도 좋지만 주먹만큼 커다란 왕만두를 더 선호한다. '만두를 먹는 데 있어서 굳이 매콤하고 알싸한 자극적인 맛이 필요한가?'라는 것이 나의 취향이다. 하지만 김치만두가 '맛있다'라고 한 이쁜 여자의 말을 들은 시점부터 그 김치만두가 들어간 떡만둣국의 맛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주변인으로부터 맛이 좋다고 추천을 받은 것도 있으니 그 말을 내 입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마침 다음 날이 연차라서 나는 운동 후에 점심도 해결할 겸 자전거를 타고서 집에서 멀지 않은 용강동 서부시장으로 향했다. 서부시장은 전통시장이 있었던 곳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낙후되어가고 있었는데, 내가 이전에 글을 쓰기도 했던 짬뽕순두부를 잘 끓이는 '금정식당'이나 맛있는 드립을 내리는 '즈므 로스터리' 등도 생기고, 지역 행사에도 참여하고, 어느 기업체에서 주관하는 여러 행사들을 열기도 하면서 그나마 이전보다는 생기를 띠고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상권이 활성화된 곳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문화식당을 방문하려고 갔던 그날도 서부시장에는 고요함만이 흘렀다.


몇 달 전 새로 생긴 포카치아와 음료 등을 파는 '바우어마켓'의 맞은편에 서부시장의 터줏대감인 '문화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굉장히 노후한 건물에 있는 노포이지만, 노포는 옛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매력 아니겠는가. '드르륵'소리가 나는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이 없는 서부시장의 길거리와는 다르게, 10자리 정도 되는 테이블에 사람이 가득하다. 자전거 헬멧과 변색렌즈, 붉은 패딩, 검은 마스크를 쓴 나에게 손님들이 시선이 잠시 쏠리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선생님, 여기 떡만둣국 하나요!"


"예에~"


주방에 계시던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께 당당히 외친다. 따님으로 보이시는 홀의 직원분께서 재빨리 김치와 깍두기를 넓은 사각 쟁반에 올려놓으며 준비를 하신다. 주변에 앉아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 중에는 관광객분들도 계시고 지역에 사시는 어르신분들, 근처 은행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보이시는 분들도 보였다.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식당이구나 싶다. 나도 이 식당을 사랑하게 될지는, 잠시 후에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윽고 큼직하고 울긋불긋한 김치만두가 두터운 플라스틱 국그릇을 가득 채울 정도로 담긴 떡만둣국이 등장한다. 반찬은 배추김치, 깍두기 그리고 새빨간 다짐(다진 양념). 후추가 아니라 다짐이 조미료로 나오는 게 재밌다. 빨간 다짐, 너 뭐 돼?



고깃국물이라는 향이 나는 옅은 색의 국물을 수저로 떠서 맛본다.


후룩


가볍고 고소한 고기맛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진하게 우려낸 육수는 아니다, 다른 것 없이 소의 뼈로 우려낸 사골 국물이 아닌가 유추해 본다. 진하지 않고 옅은 고기의 맛이 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 이제는 만두의 차례다.


'처음에는 만두를 앞접시에 담아서 따로 썰어서 먹어봐.'


이쁜 여자가 나에게 문화식당의 떡만둣국을 먹는 법에 대해서 조언해준 것을 그대로 따른다, 나는 착한 어른이니까. 커다란 만두를 앞접시에 따로 담아 반으로 쪼개어 후후 불면서 육수에 살짝 적셔서 입으로 가져간다.



두툼하고 촉촉한 만두피가 처음 치아에 닿으면서 사각거리는 김치, 그리고 말캉한 두부와 당면, 거기에 입안을 간지럽히는 돼지고기의 식감이 느껴진다. 전형적인 한국의 김치만두다, 설에 할머니댁에 내려가면 가끔 먹을 수 있었던 김치, 두부, 당면, 돼지고기를 잘 으깨어서 두툼한 피로 빚어낸 김치만두. 간이 심심한 두부와 당면, 살며시 짭짤한 맛이 느껴지는 돼지고기, 매콤하며 알싸한 김치의 맛과 그 식감이 즐겁고 뒤이어 따라오는 고소한 사골 육수의 맛으로 균형을 잡는다.


'간간하고 깔끔한 육수와 심심한 만두의 맛이 잘 어울리지만 그래도 무언가 부족한데'


그제야 나의 눈에 들어오는 배추김치, 얌전히 있던 잎사귀를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입에 넣는다.


아삭아삭


'시원하고 청량한 이 맛! 제대로 익은 배추김치야. 간이 부족한 떡만둣국에 완벽한 맛을 더해주는군. 훌륭하다.'


적당하게 발효가 되어 아삭아삭한 식감에 짭짤하고 매콤하며 시원한 맛을 뽐내는 김치가 무언가 살짝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떡만둣국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역시, 맛있는 식당은 음식들의 균형을 잘 잡아주지. 반찬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각 메뉴들의 맛과 간에는 이유가 있어. 좋은 팀워크야.'



김치가 들어간 음식에 또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이렇게 재료가 중복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문화식당의 떡만둣국만은 예외다. 김치만두에 또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이 이렇게 맛이 좋다니, 놀랍다.


촉촉한 만두피, 심심하고 매콤한 만두의 김칫소, 간간하고 깔끔한 육수, 시원한 김치의 맛으로 마무리, 이것만으로도 식사를 맛있게 마무리할 수 있지만 함께 곁들여 나와서 아직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다짐의 맛이 정말 궁금해졌다.


'전반전을 잘 보냈으니, 이제 다진 양념으로 후반전을 시작해 볼까. 다짐이 나온 이유가 있겠지.'


혹시나 모르니 숟가락으로 다진양념을 조금 떠서 국물에 살살 다독이듯이 풀어본다. 그리고 맛을 본다.



후루룩


'이 맛은....!'


머릿속에 느낌표가 떠오르면서 백열전구가 환하게 켜지는 맛이다. 이제는 의심 없이 다짐을 더 떠서 떡만둣국의 국물이 붉은 노을빛이 되도록 풀어본다. 그리고 다시 국물을 맛본다.


후룩


'감칠맛이 입에서 폭발하는군, 고춧가루를 하늘에 쏘아 올려 폭죽놀이를 하는 맛이야.'



아주 약간의 매콤함이 더해졌지만, 이 다진 양념의 핵심은 감칠맛과 짭짤함의 긴 여운과 중독성이다. 다진 양념의 감칠맛이 혀와 닿는 곳마다 폭발적인 감칠맛이 펑펑 터지며 나의 손은 더욱더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먹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감칠맛과 짭짤함이 좋다는 뜻은...'


나는 국물 안에 담겨있던 김치만두를 쪼개서 붉은 국물과 함께 퍼올려 입으로 넣는다. 짭짤함, 감칠맛, 슴슴하고 아삭한 식감이 혼재된 나의 입안이 황홀하다. 눈을 감고 천천히 턱의 저작운동을 반복한다.


'끝내주는 떡만둣국이군. 후반전에 다진 양념을 국물에 풀어넣길 잘했어.'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맛 좋은 식사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리고 아직 폭죽놀이가 진행 중인 국물에 담겨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는 떡을 허겁지겁 퍼먹으며 그 쫄깃함의 식감을 내 입안에서 열리고 있는 축제에 더한다. 국물, 만두, 떡으로 이어지는 떡만둣국 놀이공원 카퍼레이드가 완성되었다. 그 놀이를 정신없이 감상하고 있다 보니 떡만둣국의 축제는 이미 빈 그릇으로 끝나고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축제를 금방 끝낼 수밖에 없다니... 이 요망한 다진 양념이 나를 홀린 것이 분명해.'


나는 시원한 맛을 아직 붙들고 축제의 기운을 즐기고 있는 배추김치로 식사를 마무리하며 다시 입맛을 다셨다, 더 먹고 싶지만 이미 배도 부르고 일어나야 할 때이다. 슬픈 시간에도 끝이 있듯이, 기쁜 시간에도 끝이 있는 법이니까.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게 밖으로 나선다.


"잘 먹었습니다, 또 올게요!"


"안녕히 가세요~"


떡만둣국 한 그릇과 다진 양념으로 즐겼던 축제를 잊을 수가 없다, 서부시장에는 조금 더 자주 오게 되지 않을까, 문화식당의 떡만둣국이 계속 존재하는 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