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 얼큰한 추어탕, 압도적인 고추장맛, 그것은 어머니의 손맛
강릉 시내 근처의 동네인 옥천동은 강릉이 많은 현대화를 거친 이후에도 아직까지 많은 옛 강릉의 가옥들이 남아있는 동네이다, 그래서 크고 작으며 구불구불한 골목들에 아직 현대화의 바람을 맞지 않은 식당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지자체의 사업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옥천동의 길거리를 걸어서 조금만 가면 과거로 시간여행이라도 한 듯, 나이 지긋하신 여 사장님께서 자식들을 맞이하는 어머니와 같은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감나무집 추어탕'이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올려놓은 푸른 기와에 나무와 시멘트,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이 식당인데 그 앞에는 커다란 마당과 성인이 4명은 거뜬히 올라가서 식사를 할 수 있을만한 평상, 그리고 간단하게 꾸며진 정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옛 한옥의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라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방과 주방이 완전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러 온 나와 직장의 동료분들은 들어가며 외친다.
"선생님~ 여기 추어탕이랑 오리 불고기요"
주방에서 일을 하시다가 사장님께서 잠시 나오셔서 인사를 하시고는 웃으며 주문을 받는다.
"네~ 저 안쪽 방에 들어가 계셔요~"
4명 정도가 딱 들어가면 알맞은 작은 안쪽 방에 자리를 잡고 음식들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옅은 상아색의 벽에 세월이 묻어있는 시계와 가구들, 그리고 바깥 기다란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종편 채널의 뉴스가 점잖은 어조로 국외와 국내 정세를 논하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주말에 할머니댁에 놀러 와서 점심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손자가 된 기분이다. 이윽고 음식들이 하나둘씩 상 위에 차려진다.
다들 배가 고팠던 차라 반찬들이 상 위에 차려지자마자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밥도 금방 나왔는데 영동 지방의 한식집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감자밥이다, 샛노란 감자의 조각이 마치 달콤한 고구마인 것처럼 밥의 한가운데에 앉아있다.
그리고 반찬 중에서도 모두가 좋아해서 사소한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한 장 한 장씩 떼어놓을 정도로 맛이 좋은 반찬이 있으니, 감나무집 추어탕의 깻잎절임. 어쩜 그리 맛있는 간장과 고춧가루를 쓰셨는지 깊게 짭짤하면서 살짝 매콤하며 달착지근한 끝맛, 밥을 싸 먹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맛이니 가능한 맛이 밥에 싸 먹는다.
쌈채소로 함께 나온 커다란 오이고추를 들어서 옆에 있던 짙은 색의 고추장에 듬뿍 찍어 먹는다. '아삭'하는 시원한 소리, 사각거리는 소리 사이로 청량감 넘치는 고추맛이 처음 혀에 닿더니 압도적으로 묵직하고 달콤하게까지 느껴지는 고추장의 맛이 입안을 덮는다. 고추장과 오이고추를 씹으며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압도적인 고추장의 깊은 단맛, 시판되는 고추장에서 맛보던 적당히 매콤하고 짭짤한 그 맛과는 다르게 매콤한 맛은 크게 없지만 맛의 깊이가 매우 다르다. 그야말로 입안을 압도한다. 이렇게 맛있는 장을 먹어본 것은 몇 년 전 보은의 약선요리마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이다.
'이 고추장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직접 담그신 거라면 바로 사고 싶은 맛인데.'
나는 눈이 번쩍 뜨이면서 오이고추를 하나 더 들어서 고추장을 푹 찍고 순식간에 오이고추를 해치운다. 장에 고추를 찍어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고추장을 맛보고 나니 멈출 수가 없다. 아직 주물럭과 추어탕이 남았으니까.
'주물럭은 금방 나올 텐데?'
아니나 다를까, 손님 상에 오르기 전에 따뜻하게 덥혀야 하는 추어탕과는 다르게 신속하게 손님상에 올라올 수 있는 오리주물럭을 사장님께서 갖고 오신다. 새빨갛게 양념에 절여진 오리고기와 각종 채소들이 먹음직스럽게 불판에 올라가서 구워진다. 분명히 방금 오이고추를 찍어먹었던 그 고추장으로 만든 주물럭일 것이다. 주물럭에 대한 기대가 200프로 상승한다.
불판 위에 종이포일을 살짝 덮고 주물럭을 넓게 펼쳐서 빠르게 익혀낸다. 아마 고추장을 맛보지 않았다면 '그냥 주물럭이네'라는 생각으로 주물럭이 다 익기를 기다렸겠지만 방금 먹은 '그 고추장'으로 맛을 낸 주물럭이라서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다.
오리 살점을 커다랗게 손질해 주셔서 마치 돼지고기 주물럭과도 같은 모습이다. 부추와 양파, 버섯이 함께 들어가서 시각적으로도 다채로우니 보기가 좋다. 다 익으니 육즙과 고추장 소스가 함께 우러나와서 자작하게 지글거리니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리가 아니라 기름이 잘 박힌 돼지 앞다리살을 씹는 듯한 식감이다. 치아 사이에서 두툼한 오리가 으적거리면서 그 안의 고소한 오리의 기름맛과 육즙에, 압도적으로 달착지근하며 약간의 매콤함의 고추장 맛과 섞여서 달콤함과 짭짤함이 극강의 감칠맛을 이루어내는 맛이다. 일반적인 제육볶음보다 더 고소하며 깔끔하고 달착지근한 맛, 중독적인 맛이다.
'와, 고추장으로 양념을 했던 구운 고기 음식 중에 여태까지는 제일 맛있는 음식이야. 고추장이 이 식탁을 지배하는구나.'
옆에서도 주물럭이 너무나 맛있다며 탄성을 내지르고 있다, 촉촉하게 바닥을 적시는 육즙과 고추장 소스를 흥건하게 숟가락에 올려 입에 밀어 넣는다. 오리기름의 깔끔한 고소함에 달착지근하고 깊은 고추장의 조화, 입안이 감칠맛의 영광을 합창한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맛이다. 왜 여태까지 이 맛을 모르고 살았나 싶다.
"추어탕 준비해 드릴게요~"
사장님께서 커다란 뚝배기들과 튀긴 음식으로 보이는 반찬을 하나 더 가득 들고서 방으로 들어오신다.
"야, 이거 못 참지. 추어튀김, 이거!"
노릇노릇, 바삭하게 튀겨진 작은 물고기들이 추어탕과 함께 등장하자 함께 주물럭의 환희를 즐기고 있던 균의 입가에 또다시 화색이 돈다.
미꾸라지 튀김을 서비스로 주시다니, 후한 인심에 다시 웃음이 나온다. 튀겨진 미꾸라지 한 조각을 잡아서 입안에 통째로 넣는다. 겉은 바삭하고 부드러운 튀김옷에, 뼈까지 없는 것처럼 씹히는 식감이다. 굉장히 촉촉하고 솜털처럼 씹히는 맛이며 비린내도 없고 고소한 맛이다. 입으로 잘린 미꾸라지의 단면이 보기는 좋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한입에 드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옆에서 뜨끈하게 김을 뿜으며 시식을 기다리고 있는 추어탕으로 눈을 돌린다. 눈으로 보기에는 색이 옅은 육개장처럼 보인다, 알싸하고 매콤한 파, 고추, 마늘 등의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추어탕은 기본적으로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는 서울식과 뼈까지 갈아서 넣는 호남식이 있는데 감나무집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서 넣는 호남식의 추어탕을 대접한다.
사장님의 배려로 미리 소분이 되어 뚝배기에 담겨 나온 추어탕을 한입 맛본다.
얼큰하다. 고추장은 달착지근함과 깊은 맛의 감칠맛으로 입안을 압도하더니, 추어탕은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얼큰함과 시원함이 나를 놀라게 한다. 산초가루를 살짝 넣어서 상큼함과 알싸함을 추가한다, 추어탕에서 미꾸라지 비린맛이 나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이다.
'여기는 추어탕 맛도 특출 나는구나. 이 정도면 사장님의 손맛이 어마어마하다고 밖에 얘기를 못하겠어.'
다시 한번 숟가락을 들어서 채소 건더기들과 함께 국물을 가득 입으로 넣는다, 입안부터 가슴까지 얼큰하고 매콤한 국물맛이 뜨겁게 나의 몸을 덥혀준다. 국물도 진하고 미꾸라지의 농도가 진하지만 향신료와 양념장으로 워낙 잡내를 잘 잡아놓으셔서 '이거 추어탕이야'라고 말하지 않으면 추어탕인지도 모를 정도다.
'이전에 다른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었을 때에도 시원하거나 얼큰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나?'
나는 속으로 이전에 먹었던 추어탕들의 맛을 생각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추어탕을 즐겨 먹지는 않아서 아무리 많아도 추어탕을 먹었던 적은 대여섯 번 정도이지만 그중에서도 감나무집 추어탕의 추어탕처럼 국물이 시원하다고 느꼈던 곳은 없었다.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에 건더기 밑 수제비가 쫀득하니 두배로 반갑다.
식사를 거의 마칠 때가 되자 조상님들께서 식사 후에 즐겨드셨다는 후식인 숭늉과 누룽지를 사장님께서 들고 오신다. 이렇게까지 챙겨주신다니, 배가 부른다고 해도 먹지 않으면 슬픈 일이다. 겉은 바삭바삭한데 노릇하게 익지 않은 쌀알들은 사이가 쫀득하게 씹히는 식감이다, 바삭하며 쫄깃한 누룽지라니, 일반적인 마트에서는 사 먹을 수도 없는 품질의 누룽지다. 나도 집에서 프라이팬에 쌀밥을 얇게 구우면 이런 맛이 나올 수 있을까, 만들어보고는 싶지만 사장님의 손맛을 맛보고 나니 자신이 없어진다.
잠시 우리 테이블에 오신 사장님은 강릉 병산동 근처의 텃밭에 고구마와 배추가 풍년이었다는 자랑에 딸자식 자랑, 큰 사위 자랑을 하시며 잠시 식사를 마무리 짓고 있던 우리와 담소를 나누시고 가신다. 여기가 정말로 강릉 시내 옥천동인가 생각할 정도로 정겨운 모습의 식당과 사장님.
숭늉과 누룽지에는 남아있던 주물럭의 고추장 소스를 곁들여서 더 맛있게 먹는다. 달달하고 살짝 매콤한 맛에 누룽지가 만나니 두배로 맛있다. 그렇게 나는 제일 마지막에 수저를 놓고 식사를 마쳤다.
나로서는 이전에는 경험해 본 적이 없던 한식 장인의 손맛에 조금 더 일찍 와서 맛볼 것을 후회하게 되는 식당이었다. 그래도, 직장이 근처이니 앞으로는 자주 올 생각에 기분이 좋다. 이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장사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