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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Nov 24. 2024

[미식일기] 국이네 낙지볶음, 부산

모든 악령을 퇴마 할 진득한 마늘맛이 가득, 감칠맛 터지는 영혼, 낙지

밤늦게까지 H군과 동방미식에서 매콤하고 바삭한 3차 식사를 마친 김고로는 다음 날 제법 일찍 일어났다. 해운대구의 재송동이라는, 어느 산동네 중턱에 자리 잡은 어머니댁인 아파트 꼭대기 층.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 아침 햇살과 공기가 섞인 거실에서 저 멀리 부산의 전경을 감상하며, 사이버대학교의 강의를 듣는 동시에 아침 식사인 빵을 뜯어먹는 그는, 부지런히 어머니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민폐를 끼치는 불속성 효자의 의무를 톡톡히 다한다.


"어머니, 오늘도 '사 오신' 빵이 맛있습니다."


"그래, 많이 '처'먹으렴."


"어머니의 덕담은 나이가 들어도 물이 오른 미모만큼이나 아름답군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래, 잘 먹고 공부 잘하고, 일 잘하면 되었지. 이쁜 아가(김고로의 아내, 이쁜 그녀)는 잘 있니?"

"네, 바쁘긴 해도 잘 있어요."


나이가 들어도 피부가 탱탱하시고 고와 40대 중반으로 오해를 받는 어머니와, 실제 나이보다는 조금 더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는 유부남 아들의 평소 대화는 부산 사람들의 정만큼이나 살갑다.


김고로는 대학교 강의를 다 듣고 나서는 어머니를 모시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모자간의 데이트인지라 육고기보다는 해물을 더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취향을 생각하여 낙지볶음을 메뉴로 정했다.


수영구에 본점을 둔 '국이네 낙지볶음'이라는 부산에서는 이름난 낙지볶음 전문점이다. H군에게 추천을 받은 음식점인데, 본점에서 하던 낙지볶음은 맛에 대한 소문과 낙곱새 선호의 순풍을 타고 부산의 많은 식도락가들을 이 집으로 이끌었다.


부산 낚지 요리의 강자인 조방낙지, 개미집만큼의 전통은 없지만 조용하게 확장에 리모델링을 거듭하여 전국 택배까지 하고 있는 낙지볶음 전문점으로 성장했다.


연휴 기간 동안에나 수영시장 근처에 와봤었지, 평일 낮에 어머니와 함께 나온 수영은 부산 말로 거의 '도떼기시장'만큼이나 정신없다. 빠르게 지나다니는 차들과 자전거, 사거리와 큰 대로에 몰려있는 사람들, 노점상들과 교회에서 포교를 위해 나온 교인들 등 이런저런 사람들이 섞여, 어머니의 말로는 '정신이 사나울' 정도였다.


수영구의 큰 사거리에서 내려 어두운 갈색 외관에 '국이네'라는 궁서체에 '낙지볶음'이라는 돋움체가 하얀색으로 빛나는 식당이다. 성인 허리쯤 오는 갈색 벽 위로 통유리가 넓게 포진되어 식당 안에서 뜨겁고 매콤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 사이로 다니는 종업원들의 바쁜 몸을 보이고 그 위로 반구의 형광등이 간격을 두고 나열되어 저녁에는 이 식당을 밝게 비출 준비를 하고 있다.


김고로와 그의 어머니가 국이네 낙지볶음에 들어간 시간은 점심시간의 막바지인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그래도 국이네 낙지볶음의 음식들은 회전율이 빠른 음식이고, 이곳의 매콤한 낚지에 밥을 비벼 먹는 형식이라 먹는 속도도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빈자리는 다시 새로운 손님이 채우고, 나가면서 택배까지 부탁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 인기 많은 집이라고 H군이 얘기해 줬는데, 그 말대로 진짜 사람 많네요."


"그래, 내가 지나갈 때 보면 사람이 바글바글 하더구나."


가게 안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보이는 커다랗고 넓은 주방과 음식 준비를 위한 넓은 공간, 그리고 왼쪽에는 최소한 100명은 앉아서 다 먹을 수 있을만한 나무와 철제로 된 식탁과 의자들이 수영구 거리의 배경 아래에서 바둑판 위 돌들처럼 나열되어 있고 왼쪽과 오른쪽 사이 중간 공간은 손님들의 셀프바와 종업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손님이 많은 만큼 식당의 종업원분들도 평일 낮이라 해도 족히 20명은 넘어 보였다. 셀프바에 와서 콩나물국과 부추, 김치, 밥 등을 더 넉넉히 퍼가는 사람들, 각자 자리에 앉아 1인 1 낙지볶음 냄비를 잡고는 밥과 낙지볶음을 맛나게 비벼먹으며 코를 훔치고, 열심히 입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텔레비전의 뉴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들 식사의 배경음악이 될 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김고로는 메뉴 선정을 두고 잠시 고민했다. '낙지볶음' 하나로 유명해진 국이네 낙지볶음이기에 낙지가 주재료로 들어간 '낙지볶음'을 먹을까, 아니면 새우와 곱창이 같이 들어간 '낙곱새'를 먹을까, 아니면 곱창이나 새우를 더 넣을지 말지 선택하여 먹을까.


'맛은 낙곱새가 조금 더 기름지고 달콤하겠지만, 나는 이 집 잠재력의 근원인...'


"낙지볶음 먹을게요."


"응, 나도 그걸로 먹을게."


국이네 낙지볶음의 장점은 음식이, 정말 금방 금방 나온다. 손님이 확, 몰리는 시간대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종업원들에게서 왠지 모를 여유가 보이는 점심시간이 거의 끝으로 달리는 오후 2시 이후여서인지는 몰라도, 거의 대부분 주문한 지 10분 혹은 그보다 더 빨리 음식이 나와서 이미 손님 앞에서 끓는다.


식탁 가운데에, 이미 식탁 속에 설치된 가스레인지 위에 음식을 주문한 인원수에 비례한 크기의 냄비에 그만한 양의 낙지볶음이 담겨 나온다. 1인 손님인 경우 1인에 알맞은 크기의 냄비와 낙지볶음이 나온다. 한 테이블에서 두 가지 이상의 메뉴를 주문했을 때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한 김고로였다. 물론 주변에서 그렇게 주문한 팀을 보기는 했지만, 김고로는 자기 음식에 집중하느라 신경도 안 썼다.


"음식 나왔습니다, 뜨겁습니데이. 한 소금 더 끓이고 드세요."


2인을 위한 크기의 전골냄비 안에 이미 한번 '초벌'이 된 낙지볶음이 각종 채소와 함께 담겨 나왔다.

밀키트처럼 한번 조리가 되어서 나온 낙지볶음을, 손님이 한번 더 덥혀먹으면 된다, 뜨겁고 얼큰하게. 


"이미 한번 조리가 돼서 나왔네요, 진짜로 한 번만 끓이면 되겠어요."


"그래, 한번 끓으면 먹자."


손질된 낚지, 양파, 대파, 당면, 그리고 이미 코끝에서부터 알싸한 향기가 올라오듯 어마어마한 양의 다진 마늘이 낙지볶음에 들어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국이네 낙지볶음에는 항상 밥과 부추, 살짝 싱겁게 간이 된 콩나물무침과 김치가 콩나물국과 함께 나온다. 밥에 낙지볶음, 부추, 콩나물을 넣어서 비벼먹으라는 국이네 낙지볶음의 간접적인 추천이다.


밥 위에 얼큰하게 국물 머금은 양파와 낚지볶음 한 조각

"이제 먹어볼까요, 저는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맛있게 먹으렴."


뜨끈하고 촉촉한 국물과 양파가 달콤하게 씹히고 탱글탱글한 낙지가 쫄깃하게, 어금니까지 들어와 씹힌다. 혀에서 느껴지는 이 맛은 마늘의 진한 향과 육수의 달콤함, 그리고 대파와 사각거림과 약간의 매콤함이다. 일부러 밥을 비비지 않은 상태의 낙지볶음을 먹는 김고로.


"와, 마늘향이 강하기는 한데 얼큰한 국물에 달콤한 낚지!"


"맛있네."


어머니는 낙지볶음이 마음에 드셨는지 이미 낙지볶음을 밥에 넣고 콩나물과 부추를 넣고는 '슦고' 계신다. 낙지볶음이 맛있음을 경험한 김고로도 어머니를 따라서 낙지볶음 비빔밥을 만든다. 부추, 콩나물을 수북하게 넣고 국자와 숟가락으로 낙지볶음의 국물과 각종 채소, 당면도 함께 싸악 잡아 올려서 밥 위로 올리고는 수저로 밥을 '스까'먹기 시작한다.


다른 반찬들과 함께 나온 채 썬 조미김, 흰 콩나물에 파릇파릇한 부추 그리고 붉은 낙지볶음을 큰 '스뎅' 그릇에 차곡차곡 담아 그릇 위로 쌓아 올려진 낙지볶음 비빔산이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슥슥 가르고 쪼개서 섞는다. 낙지볶음의 맛을 충분히 즐기고 싶은 김고로는 전골냄비에서 국물을 잔뜩 퍼서 더 덜 어담고 비빈다.


쫄깃하고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낚지 사이로 아삭거리고 사각거리는 콩나물과 부추의 속삭임이 사람들의 귀에 대고서 '더 먹자, 조금 더 씹자, 맛있잖아'라고 속삭이는 기분이다. 중간중간 짭짤한 맛을 더하는 조미김과 달콤한 양파의 맛, 거기에 어우러지는 매콤하고 알싸한 마늘이 보이지 않는 손처럼 감칠맛을 더하며 구미를 더 당긴다.


"처음에는 마늘맛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 끌리네요."


"엄마도 여기 낙지볶음 맛있네."


"예전에 우리 수원 영통 살 때 낙지볶음 집 자주 갔었는데, 기억해요?"


"응, 매운 낙지볶음 많이 먹었잖니."


"당시에, 수원에 서린낚지랑 유정 낙지 분점이 있었죠. 둘 다 엄청 시뻘겋고 매운 낙지볶음으로 유명했어요, 메밀을 넣고서 부쳐주는 메밀낙지전도 참 맛있었는데. 아직도 그때 먹던 그 낙지볶음들이 기억나요. 어린 나이에 먹기에 매워서 땀 뻘뻘 흘리면서 먹었지만, 참 좋았어요, 그 맛이."


"나는 낙지볶음 먹었던 기억만 있는데, 너는 별 걸 다 기억하는구나."


"먹는 음식 하나는 기억 잘하잖아요, 제가."


김고로는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동네 식당들을 다니며, 식도락을 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바깥으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맛있는 음식이 있는 식당들 다니기를 좋아하시던 어머니 덕분에 김고로는 식도락의 취미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이 계속 먹게 되는 마성의 낚지볶음

낙지볶음에 채소들을 섞어서 먹는 단순한 음식이지만 낙지볶음에 사용되는 양념장이 이곳, 국이네 낙지볶음을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중요한 요소다. 물론 신선한 낚지와 좋은 재료들이 뒷받침이 되기도 하지만, 그 재료들의 맛을 또 다른 차원의 수준으로 올려주는 양념장은 식당의 실력을 보여준다. 서양권으로 따지면 '소스'에 해당되는 건데, 백종원 선생님도 T방송사의 모 대량급식을 만드는 프로그램에서 '미슐랭 요리사들은 특히나 소스를 잘 만들어'라고 말하면 '소스'를 만드는 실력이 어떤 의미인지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 찬사를 지금, 국이네 낙지볶음에 돌린다.


마늘이 가득한 양념장이라, 개인 취향의 차이가 크게 있을 수는 있으나, 적어도 마늘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최고의 양념장이라고 극찬할 수 있다, 충분히.


그리고 국이네 낙지볶음에서는, 손님마다 밥의 양을 다르게 주시기도 한다. 김고로에게는 거의 한 공기 반의 밥을 주셨는데, 어머니께는 딱 한 공기 정도의 밥을 주셨다. 그렇다고 하여, 손님을 차별해서 밥을 갖다주냐....라고 얘기하기는 힘들다, 그 이유는 셀프바에서 밥과 반찬을 마음껏 가져다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종업원분께서 나를 과소평가하셨군'라고 생각하신다면 셀프바로 당차게 걸어가서 당당하게 먹고 싶은 만큼 밥과 반찬을 수북하게 더 담으면 된다. 선입견과 편견은 깨지라고 있는 법이니까.


먹다 보니 낙지볶음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쫄깃한 낚지와 아삭하고 바삭한 콩나물, 부추와 고추, 마늘의 알싸함이 더해지고 양파와 쌀밥의 단맛에 매콤 달콤한 양념장의 조화, 그리고 조미김 가루로 화룡점정을 찍는 국이네 낙지볶음. 빠르고, 간편하게, 가능하면 얼큰하고 시원한 메뉴를 먹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거의 완벽한 메뉴라고 할 수 있다. 김고로라도, 국이네 낙지볶음이 직장이나 집 근처라면 자주 오겠다.


'출출한데 뭐 먹을까? 빠르고 맛있는 낙지볶음이나 먹어야겠군'이라는 생각이 쉽게 들게 하는 만족스러운 밥집이 국이네 낙지볶음이다.


빠르고 맛있는 낙지볶음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김고로와 그의 어머니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수영시장의 인파 속으로 섞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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