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때기랑 해물육수만 들어간 해장국이 왜 맛있는지 심각하게 의문이다
김고로는 20대 초반 시절, 지금은 많이 저물어버린 'D' 포털사이트의 웹 커뮤니티를 운영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좋아했던 시절이라, 김고로가 카페의 주인장을 했고, 10대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을 취미로 가지던 십 대들이 해당 커뮤니티에서 비대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대 초반이었던 김고로는 유부남이 되고 10대였던 그들은 30대 초중반의 훌륭한 나라의 청년들이 되어버린 그런 모임을, 김고로는 아직 유지 중이다.
올해 용인에서 있었던 모임의 어느 친구의 결혼식을 계기로, '우리 쟤 신혼여행 보내고 펜션 잡아서 우리끼리 놀자'라는 우연한 말 한마디에 반기 1회의 오프라인 모임이 시작된 것은 참 반가운 일. 경기도 광주의 모 펜션에서 처음 모임을 갖고, 후반기에는 경주와 울산에 사는 친구들이 있기에 경주에서 펜션을 빌려 1박 2일로 놀기로 하여 김고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경주로 향했다.
강릉에서 가는 김고로 외에도 서울, 서산, 전라도 광주, 순천 등지에서 경주로 모여오는 친구들이 있는데, 강릉의 김고로와 서울에서 오는 친구를 경주역에서 태워서 이동하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서 오는 친구는 우리의 도착시간보다 먼저 와 있는 상태였다.
어차피, 펜션에 집합해서 장을 간단히 보고 바비큐를 굽는 시간까지는 꽤 남았기에 그들은 경주 시내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많은 식도락가들과 여행가들의 진리에 따라 그들은 김고로가 가고 싶다고 한 '경주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지금과 같은 신 경주역이 생기기 전, 이제는 폐역이 된 옛 경주역 근처 팔각정 삼거리에는 경주식 콩나물해장국 집이 많았지만 이제는 노부부분들과 그 아드님이 운영하시는 경주콩나물 집만이 홀로 '콩나물해장국 거리'를 지키고 있다.
모임의 어느 친구는 '형, 무슨 풀때기만 들어간 국밥을 그 돈을 주고 먹어요'라고 할 정도였지만, 김고로에게는 10, 11살 시절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왔던 곳에서 맛있게 먹었던 추억의 음식이다. 그때는 어느 작은 국밥집에서 할머니가 홀로 운영하고 계셨는데, 콩나물국밥 위에 메밀묵이 올라갔던 장면과 그 맛이 생생하다.
경주역에서 일행들을 만나서 팔우정 삼거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즈음이었는데, 대릉원과 금관총, 천마총과 황리단길 거리는 이미 벌떼와 같은 관광객들의 행렬로 가득한 반면, 팔우정 삼거리 근처는 한적하니 김고로의 마음이 편안했다.
2층 붉은 벽돌로 외관을 꾸민 건물에, 1층에 녹색과 황색의 궁서체 활자로 쓰인 '경주해장국' 간판 아래 상하가 알루미늄 그리고 중간은 통유리로 된 미닫이 문들로 나열된 문들에 오색으로 꾸며진 화려한 문들.
드르르륵
김고로와 친구들이 들어가자 텔레비전을 보면서 잠시 쉬고 계시던, 노부부의 아드님으로 생각되는 셰프님께서 일어나 손님들을 맞이한다. 밝은 원목색의 식탁과 의자들이 입구에서 왼쪽과 정면에 배치가 되어 있고 우측에는 국밥을 끓이고 식사를 준비하는 열린 주방이 활짝 손님들을 반긴다. 메뉴는 간단하다, 콩나물해장국 아니면 선지해장국. 같이 간 친구 중 한 명이 고기를 못 먹는 친구라, 김고로는 이곳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콩나물해장국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마른 해물과 버섯으로만 육수를 내리고 고명은 콩나물과 모자반, 메밀묵과 김치가 전부다.
김고로의 기억으로는 현재 경주해장국이 있는 거리가 아닌, 폐 경주역의 앞이 콩나물해장국 거리인 줄 알아서 그 얘기를 떠들고 있으니, 잠시 반찬을 갖다 주시러 온 셰프님께서 지금 있는 곳이 콩나물해장국 거리라고 정정을 해주신다. 지방에서 온 사람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떠벌리고 있으니, 아마 고쳐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셨을 수도 있겠다. 김고로는 올바른 정보를 주심에 감사하다며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정확한 사실을 알아가야지.
경주해장국의 반찬은 화려하지 않다. 깍두기, 멸치, 미역줄기, 콩장이 놋그릇에 정갈하게 등장하고 그에 이어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콩나물해장국이 등장한다.
콩나물, 모자반, 김치가 맑고 누르스름한 빛 속에서 자신들의 원색을 반짝인다. 해물육수와 모자반의 구수하면서 상쾌한 바다향이 뜨끈하게 콧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뜨끈한 육수의 맛이 궁금한 김고로는 숟가락으로 육수부터 먼저 맛을 본다.
후루루룩
후룹
김고로와 동시에 함께 앉아있던 친구들도 육수를 들이켜거나 숟가락으로 마셔본다. 그리고 동시에 터지는,
"아..!"
"와!"
"이야!"
맑고 가벼우면서 깊은 바다의 맛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시원한 맛, 뜨끈하지만 시원한 맛. 무겁거나 끈적이는 맛은 없다, 다만 맑은 힘으로 막힌 마음을 정화시키는 상쾌함이 있는 육수다. 거기다 해물과 버섯, 모자반의 조화로 위벽과 심장을 철썩이는 파도처럼 속을 풀어주는 맛.
"아, 이거지."
"시원하게 맛있네요."
"이게 진짜... 고기가 안 들어갔는데."
분명 경주해장국의 메뉴판을 보면 콩나물해장국에는 고기가 들어가 있지 않기에 믿을 수밖에. 해물육수의 장점은 끊임없는 감칠맛과 그 감칠맛에서 터져 나오는, 고기육수와는 다른 질감의 달콤함에 있다. 해물을 원재료로 한 과자들이, 이유도 모르게 계속 속이 가고 입에 집어넣게 되는 마법이 있듯, 깊게 우려진 해물육수의 매력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칠맛에 있다.
아삭아삭
거기에 숨이 아직도 붙어있어서 다시 시루에 꽂으면 파릇하게 자라날 수도 있을 듯, 뜨거운 육수에 있으면서도 사각거리는 식감을 잊지 않은 콩나물. 콩나물도 너무 두껍고 크거나, 너무 익어서 흐물 해져 버리면 매력이 반감되는데 이 식감을 대부분 살려서 조리하는 기술도 이 집의 비법이라면 비법이겠다.
"저는 해장국에 메밀묵 넣은 집을 처음 봐요."
"나도 메밀묵 넣은 해장국은 경주에서 밖에는 본 적이 없어, 물론 전국에 있는 모든 해장국 집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메밀묵은 내가 있는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먹는데, 그래도 뜨거운 해장국에 넣지는 않거든."
경주해장국 집에 와서 콩나물해장국을 처음 보는 손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광경, 해장국의 절반을 길게 채 썬 메밀묵이 차지한 모습이다. 강원도에서도 해장국에 메밀묵을 넣지는 않는데, 경주에서 메밀묵을 이렇게 사용하다니, 놀라울만하다. 하지만, 아마도 이 메밀묵에 두 번 놀라게 될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후루룹
살아 움직이는 미꾸라지처럼, 미끌거리면서 탱글거리는 메밀묵을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올려 입술로 흡입한다.
말캉말캉
쫄깃쫄깃
주의를 기울여 숟가락에 올리지 않으면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리는 메밀묵이지만, 그거 뭐 어떠랴, 입안에 들여보내고 씹으면 그만이다. 묵을 만드는 공장이나, 새벽시장에 나가서 직접 사 와야 느낄 수 있는 갓 나온 묵의 쫄깃함과 메밀의 구수한 풍미가 코로 올라온다. 완전한 쫄깃함도 아니요, 툭툭 끊어지는 메밀의 식감도 아닌 그 어딘가의 중간에서 만날 수 있는 말랑함과 툭툭 끊어지는 메밀묵은 콩나물의 아삭함과는 대조적인 식감으로 씹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메밀묵이 쫄깃해요, 나 이런 묵 처음 먹어봐."
"이렇게 신선한 맛의 묵은 먹기 쉽지 않아. 나도 강릉에서 묵 공장 가거나, 새벽시장 가야 돼."
묵을 먹었는데, 쫄깃하고 탱글거린다면 그날 아침에 생산되어 나온 묵이 거의 90% 이상이다. 기존의 마트에서 사 먹는 것과는 다르게, 시장의 묵만 파시는 분들이나 공장에서 갓 나온 묵들은 누가 먹어도 바로 '무언가 다르다'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인상 깊고 파괴적인 묵, 그 자체의 맛을 혀와 입안에 휘두르니까.
숟가락에서 메밀묵이 떨어져서 첨벙거릴까, 입술을 모아 '휘리릭'하면서 시원하고 진한 해물 육수와 메밀묵과 콩나물을 입안에 던져 넣는다. 말랑 말캉한 메밀묵의 구수함과 상쾌한 사각거림의 콩나물이 씹히고 개운한 바다맛의 모자반이 그 위에서 바다향을 일렁인다. 김고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식감을 천천히 음미한다.
'파도가 철썩이는 해안가가 상상이 되는 해장국, 전국에 얼마나 있을까.'
손님 없는 시간에 온 손님들이라, 쉬고 계시던 사장님께 민폐가 될까 싶어, 잔반을 남기지 않게 반찬까지 싹 다 긁어먹는 김고로와 일행들. 가게를 나가면서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손님들의 안부를 물으신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정말로 맛있는 식사를 한 김고로와 일행이 웃으면서 대화를 틔워나간다.
"네, 초등학교 3, 4학년 시절에 마지막에 먹고서 생각이 나서 다시 왔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메밀묵이 인상적인데, 매일 가져오시나요?"
"네, 이거 매일 아침마다 가져오는 묵입니다. 최근에 옛날에 어머니께서 하시던 조리법으로 다시 바꿨는데, 괜찮으셨나 봐요."
"그럼요,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부모님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셰프님과 맛있는 콩나물해장국에 기분이 한껏 좋은 김고로는 서로 미소로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김고로는 일행들과 함께 대릉원 방향을 향해 걸었다. 서울에서 온 친구가 황리단길의 어느 유명한 브랜드 편집샵으로 우리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