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달구지 수육국밥, 경주

구수함과 달콤한, 국밥 교향곡(?) 국밥 실내악(?)의 즐거움

by 김고로

경주에서 1박 2일 동안 사랑하는 지인 겸 동생들과 떠들썩한 밤과 새벽, 김치찌개의 후끈함의 열기로 덮은 아침식사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는 그들은 경주 시내로 다시 나왔다.


전날에 구매하지 못했던 황남빵도 사고 폐역이 된 경주역 근처의 지금은 많이 조용해진 골목들을 다니면서 아기자기하고 이쁜 카페와 편집샵들도 다니면서 경주에서의 일정 막바지를 즐겼다.


그리고 이제는 점심을 한 끼 하고서는 경주역을 통해 각자의 처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경주시내에서 경주역으로 가는 길목에는 (외관상으로는 초등학교로 보이는) 신경주대학교가 있는데 그 근처에는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묘와 아파트들, 초등학교들이 모여 있어 자연스럽게 식당가가 형성이 된 모습이었다.


"어, 여기 벌써 재료소진으로 점심 장사가 끝났네요?"


우리를 경주역에 데려다주고 전라도 광주로 돌아가기 위해 동행한 JH군이, 친구에게 소개를 받았다면서 함께 가기로 한 한식집을 가려고 했었다. 어느 케이블 방송의 맛집 프로를 통해 유명해진 집이라, 김고로도 한 번쯤은 맛을 보고 싶어 살짝 기대를 했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김고로다, 식도락을 다니면서 계획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서 틀어지는 경험은 여러 번 겪었다.


김고로는 빠르게 스마트폰을 꺼내서 지도 어플로 근처의 밥집들을 하나하나 살펴나간다, 초록색 지도로 밥집들의 상호와 위치를 확인하고 노란색 지도로 각 밥집들에 대한 방문객들의 솔직한 평가를 읽어보고 함께한 동행자들을 이끈다. 일요일 오전이라 생각보다 열려있는 곳은 없거나, 폐업한 곳도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아직 점심 영업이 끝나지 않은 국밥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김치찌개로 거하게 먹은 덕분에, 고기를 먹지 않는 친구가 자신은 점심을 거르겠다고 하여 주재료가 고기인 돼지국밥 집을 갈 수 있었다 (먹성 좋은 남정네들을 위한 배려 고맙다, J양).


나무와 비슷한 자재로 된 계단과 덱을 통해서 살짝 올라가면 아래부터 반이 시트지로 덮인 통창의 자동문을 통해서 들어간다. 희고 활달한 글씨체로 '달구지 수육국밥'이라고 쓰여있어서 소고기를 기반으로 한 국밥집인가 싶지만, '수육국밥'이라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돼지고기 국밥집이다.


경상도에서는 돼지국밥뿐만 아니라, 고기와 육수, 백반, 쌈채소를 따로 놓고서, 수육은 쟁반 아래의 고체 연료로 뜨끈하게 데우면서 밥과 육수를 곁들여 먹는 '수육백반'이라는 메뉴도 있기에 '수육국밥'이라고 하면 '수육백반'과 '돼지국밥'을 하는 집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자동문을 통해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미 3, 4팀 정도가 식사를 하고 있었고 가게 내부는 상패와 중앙 정부의 유명 기관장의 방문 사진 등등이 빛바랜 것들부터 최근의 받아 번쩍이는 물품들도 있으니 식당이 생각보다는 꽤 오래되었다고 김고로는 생각했다.


내부는 회색의 매끄러운 장판에 은은한 주광색 불빛이 가게를 비추고 원목의 빛깔이 나는 벽과 천장, 가구들이 따뜻한 공기를 내쉬었다.


뚝배기를 하나씩 놓고 먹는 손님들마다 식탁 중간에 양은냄비가 시뻘건 고깃 조각들을 담아내고 있었는데, 국밥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이드메뉴인 매운 갈비찜임을 알 수 있었다.


'기차 시간까지 조금 더 넉넉했으면 저것도 먹어봤을 텐데.'


잘 먹는 청년들과 함께 한지라 다 먹을 수 있었을 테지만, 여유롭지 않게 남은 시간이라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 집에 왔다는 느낌이라 김고로는 곧 나올 국밥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돼지국밥 집의 찬이 나오고, 부산에서 보는 국밥집의 찬과 같은 음식들이 나오기에 김고로는 내심 반가웠다. 굵은 고춧가루에 버무린 부추, 통마늘과 청고추, 깍두기, 쌈장과 새우젓 그리고 마지막 화룡정점인 소면 한 똬리.



"이야, 여기 소면에 부추를 주네? 제대로 된 돼지국밥 집이구만. 요즘은 부산에서도 소면을 주는 국밥집이 없는 곳도 있거든."


돼지국밥이 뚝배기에서 펄펄 끓어오를 때, 통마늘과 부추를 넣어 알싸함과 매콤함을 더하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며 작은 소면 묶음을 풀어 넣어 육수를 따끈하게 머금은 별미를 '호록'하며 흡입하는 즐거움. 밀가루 값과 더불어 식자재 값이 껑충 뛰어버린 탓에 부산에서도 몇몇 돼지국밥집은 더 이상 소면을 무료로 주지 않는 곳도 있어 아쉬웠는데, 경주에서 이런 곳을 보니 반가운 김고로.


그리고 곧 3개의 거대한 뚝배기들이 이제 막 폭발할듯한 열기로 부글거리면서 그들의 흰 식탁 위에 내려온다. 특 '섞어'국밥을 주문한 김고로의 뚝배기 안에는 맑고 뽀얀 육수에 피와 당면이 섞인 굵직한 순대, 머릿고기, 내장 등이 가득했다. 다진 파들 사이로 노란 소면 묶음을 던져서 부드럽게 풀어준다.


후루룹


국물 음식이 나오면 국물의 맛이 어떤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김고로가 숟가락으로 육수부터 맛을 본다.



'아아... 달콤하군.'


맑고 뜨거운 국물이 혓바닥에 닿으면서 잠자고 있던 미뢰세포들이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따뜻한 물로 세수하는 느낌이다. 살코기에서 우러나온 달콤한 육수와 뼈에서 스며 나온 뽀얗고 진한 맛이 섞이며 달콤함과 구수함의 진한 '고깃물'이 균형 잡힌 맛이다. 김고로가 한, 두 숟가락의 육수를 더 먹으면서 진득함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잠시 드니 함께 국밥을 먹는 친구들의 얼굴에도 만족함이 가득하다.


"오늘도 잘 찾았네, 다행히."


"그러게요, 맛있어요."


김고로는 이어서 큼직한 순대를 국물과 함께 퍼올려서 입안이 데어서 홀랑 벗겨질까 '후후' 불어서 식히고는 한입에 털어 넣는다.



우적우적


말랑말랑한 순대의 겉이 튼튼하게 씹히지만 앞뒤로 열려있는 순대에서 피와 당면이 고깃결처럼 찢어지며 재미있는 식감을 준다. 순대의 속 사이에 스며든 달콤한 육수가 짭짤하며 쫄깃한 순대와 함께 으스러지며 입안에 충만함을 선사한다.


'순대도 괜찮네, 역시 속이 꽉 찬 순대가 맛이 좋지.'



김고로는 열탕 육수에 어느 정도 익은 통마늘과 부추, 거기에 비계가 두툼하게 살코기와 나란히 이웃한 돼지고기와 쫄깃한 내장을 한꺼번에 올려서 씹어본다. 한 그릇 안에서 모두 해결되는 국밥이지만, 이렇게 여러 재료를 한 뚝배기 안에서 녹여내면, 이만한 코스요리도 없다.


튕기듯이 씹히며 진한 고기맛을 뿜는 내장과 부드럽게 말랑거리는 돼지고기의 대조되는 식감, 거기에 알알이 사각거리며 알싸함을 미더덕처럼 '팍'하고 내뿜는 통마늘이 중간에서 진부함을 제거하고 쫄깃함과 아삭 거림 그 중간의 식감을 부추가 곁들이며 모든 재료들의 식감과 맛을 중재한다.



'여러 식감들과 재료들의 맛이 어우러지면서 심심하고 지루할 틈이 없지, 국밥이란 게. 비빔밥처럼 말이야.'


그리고 다시 투명한 육수에 흰 골수가 풀어헤쳐진 듯한 국물을 들이켜는 김고로, 달달하며 구수한 액체가 강처럼 그의 식도를 타고 흐르며 차가운 강풍이 날리는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김고로에게 따뜻한 '강 같은 평화'를 부어준다.


육수로 몸을 덥히면 다시 국밥 안에 있는 고기와 채소들에게로 돌아가서 치아 사이에 고깃결과 채소들의 식감으로 즐거운 노래의 식감을 쌓는다. 어금니 사이에서 마늘이 단단하게 터지고 부추가 사각거리며 고기와 부속 재료들의 부드러움이 씹히면, 입안 쪽의 소리가 고막에 울리면서 맛있는 음악으로 작곡이 된다. 이 음악을 뭐라고 해야 할까, 서너 가지 재료로 구성되어 있고, 맛 좋은 국밥 집이라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으니 '국밥 교향곡' 혹은 '국밥 실내악'이라고 불러야 할까? 정답은 없다, 맛있게 먹는 식도락가의 마음대로다.


식사가 마무리되며, 그들은 깨끗하게 비워져 밑바닥의 광택만 형광등에 비춰 반짝거리는 뚝배기를 남기고 경주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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