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딸부자막국수, 강릉

달콤한 동치미와 청량감 터지는 양념, 겨울 찐만두도 살살 녹는다

by 김고로

"고로야, 오늘은 조금 더 일찍 볼까."


"그럴까요? 할 일이 꽤 있잖아요."


주말마다 만나서 일을 잠시 도와드리는 L형님, 관동대 근처에서 분식집을 오랫동안 운영하시던 도중에 맛있는 떡볶이를 인연으로 알게 된 지는 꽤 되었고, 지금은 그 분식집이 없어진 지 조금 되었지만 아직까지 L형님과는 연을 이어오고 있다.


형님보다는 컴퓨터를 조금 더 잘 다루는 김고로가, 형님께서 어려워하시는 업무 등을 도와드리면 형님께서 아시는 식당을 데려가서 밥을 사주시고 하는, 서로 물물교환의 형태로 친분 관계를 갖는 형태다.


"날도 추우니 손만둣국 먹으러 가자. 저어기 조금 가야 돼, 정동진 근처 안인에."


"안인이요?"


'안인'은 강릉에서도 화력발전소가 있을 만큼 외곽이고 거기서 조금 더 남쪽으로 가면 정동진이다. 안인의 근처에는 커다란 호텔들과 조각공원들이 있어서 강릉에서도 이름난 관광지 중 하나. 다만, 대중교통으로는 가기가 어려워서 차량이 있어야 왕래가 편하다.


그렇게 해서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는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논밭과 양봉장 등이 가득한 모전리를 지나 안인의 어느 막국수 집. '딸부자막국수'라는 상호가 어느 정도 익숙하더니, 동해에도 같은 상호의 유명한 막국수 집이 있지만, 상호명만 같을 뿐 다른 집이다.


"내가 여기를, 94년도부터 왔었어. 그때는 거의 허물어져 가는 허름한 집이었는데 점점 가게가 크고 좋아지더라고. 강릉에 무장공비가 왔을 때도 여기서 밥 먹었는데 말이야."


"상당히 오래된 집이네요, 그러면?"


김고로가 궁금해서 검색해 본 결과 92년부터 사업자 등록을 하셨던 것으로 보아, 아마 그때부터 영업을 하셨을 거라 추정했다. 물론 사장님께 직접 물어본 답이 아니니 틀릴 수는 있지만, 여하튼 강릉에서는 상당히 오래된 막국수 집에 속하는 곳이다.


지금은 낡은 초가집은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홀을 가진 단층 건물과 신축으로 지어 올린듯한 검은색의 건물이 별관처럼 우뚝 서있다. 별관은 사람이 많은 때만 여는 곳이라, 회백색의 칠을한 큰 홀 건물로 들어갔다. 성수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거의 100명 이상은 너끈히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식당이다. 건물의 외관으로 봐서는 옛날부터 이 크기를 유지하셨나 보다.


가벼운 알루미늄과 유리로 만들어진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바로 계산대와 식당의 창업자의 따님들 중 한 분으로 보이는 직원분이 앉아 계신다. 우측으로 쭉 들어가면 반쯤 열린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보이는 형광등 아래의 부엌이 보인다. 가게 입구의 정면에는 딸부자 막국수의 창업자님의 사진이 걸려 있고, 입구 좌측에는 옛적 지자체에서 인정하는 식당에 주던 '모범식당' 명패가 걸렸다.


김고로는 형님을 따라서 딸부자 막국수의 겨울 한정 메뉴인 손만둣국을 주문하고는 함께 따라 나오는 섞박지와 배추김치를 맛본다. 큼직하고 둥글둥글하게 썰어놓은 무조각과 굵은 고춧가루에 버무려진 배추가 먹음직스럽다.


섞박지와 배추김치, 요물들이다

와자작


우적우적


시원한 섞박지의 맛이 적당히 말랑말랑하게 익은 무조각의 달콤함과 함께 씹히니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먹었던 김고로의 눈이 번쩍 뜨인다.


"우와, 이 섞박지 뭔가요. 엄청 시원한데요?"


"맛있지? 허허,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오지."


아주 은은한 매콤함에 잘 익은 무에서 우러나온 단맛과 상쾌함이 입을 놀라움으로 얼얼하게 울린다. 김고로는 다시 메뉴판을 쳐다본다. 이 집은 원래 막국수 집이라, 일반 막국수와 명태식해를 넣은 회막국수가 있으니 당연히 회막국수를 시켜본다.


"형님, 혹시 막국수 시켜도 되나요? 여기 차 없으면 오기 힘든 곳이기도 하고, 언제 또 오겠어요."


"야, 만둣국도 많아서 다 못 먹을 텐데?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다 먹을게요. 하나만 시켜서 나눠드시죠."


"그래, 그래."


"선생님, 여기 회비빔으로 하나요!"


김고로와 형님이 점심 장사의 첫 손님으로 들어옴을 시작으로 그 뒤로 동네에서 사시는 분들이 홀로 식사를 하러 들어오시거나 강릉분들로 보이시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그리고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주문은 모두 차가운 막국수.


그리고 육수와 만두를 끓여서 조리하는 시간보다, 면만 삶아서 양념과 육수를 곁들이면 금방 나오는 막국수가 먼저 주문한 만둣국보다 빨리 나온다.



깨와 얇게 채친 무, 오이, 그 아래에 시뻘건 명태회와 양념, 마지막으로 얇게 뽑아진 메밀국수가 담긴 스테인리스 사발 옆으로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 사이다 혹은 배즙처럼 보이는 뽀얀 살얼음이 낀 동치미 육수. 김고로는 동치미 육수의 맛이 너무 궁금해서 그릇째로 들어서 살짝 맛본다.


꿀꺽


사각사각


청량감이 넘치는 탄산의 기포가 터지는 짜릿함과 무의 달콤함이 혀와 입천장을 훑고 지나가며 김고로의 가슴에서 온몸으로 뻗어 나간다. 달콤한 동치미는 또 이런 맛이 있다, 탄산음료가 줄 수 없는 상쾌함.


"우와, 동치미가 엄청난데요."


김고로는 망설임 없이 동치미를 막국수에 그대로 전부 붓는다. 이런 집의 막국수에는 굳이 설탕이 필요 없고, 겨자나 식초나 추가적인 양념도 굳이 넣을 이유가 없음을 주장하는 김고로다.



동치미 육수가 막국수 그릇 안에 촉촉하게 차오르고, 살얼음들이 양념장과 무, 메밀국수 사이에 소복하게 내려 여름날 먹는 시원한 막국수보다 더 김고로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막국수는 원래 겨울날 먹는 차가운 음식이다, 여름에 먹으면 몸을 시원하게 하니 좋지만, 사실 겨울에 '이냉치냉'으로 먹으면 온몸이 짜릿하여 잊을 수 없다.


김고로는 큼직한 명태회를 집어서 메밀면에 말아서 흡입한다. 붉고 질척거리는 양념의 매콤 달콤한 냄새가 미리 콧속으로 기어들어온다.


우적우적


잘 익은 명태포의 육질이 쫄깃하게 어금니 사이에서 씹히며 결대로 찢긴다, 그 사이에서 고춧가루와 식초가 만나 입과 콧속으로 시큼하고 매콤하게 올라오며 매력적으로 혀 여기저기를 찔러댄다. 명태포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산미와 거기에 어우러지는 달콤함이 계속 구미를 당긴다.


후루룩


거기에 얇은 메밀국수 사이로 그물처럼 뻗은 매콤 달콤한 양념에 동치미가 섞이니 탄산의 폭발이 입천장과 혀를 간지럽히고 달콤함과 상쾌함이 식재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터진다.


아삭아삭



메밀면들 사이에 숨어 들어온 사각거리는 무생채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쫄깃한 메밀면, 명태식해와는 다른 식감을 뽐내며 큰 소리를 낸다. 무채가 메밀면과 함께 씹힐 때마다 귀에서는 식재료들의 소리들이 화음처럼 섞여 들린다. 여러 재료들이 자신의 매력을 떨칠 때, 음식은 비로소 완성이 된다. 사람 사는 세상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김고로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만둣국도 금방 직원분의 식당 카트 위로 드르륵 거리면서 등장한다. 김고로의 주먹보다 조금 더 작아 보이지만 속이 꽉 찬 만두들이 6, 7개 들었다. 보통 4, 5개 들어있는 일반적인 만둣국에 비하면 꽤 양이 많다. 다진 파와 맛김 가루가 수북하고, 달걀이 한 그릇에 두어 개는 풀어진 모습이다.


"와, 양이 많은데요. 괜찮아요, 저는 다 먹습니다."


"나는 배가 불러 죽겠는데? 잘 먹네, 고로."


"고기만두가 가득하네요? 메뉴판을 보니 김치만두도 만드시나 봐요."


"응. 여기 원래 만둣국에 김치만두를 줬는데, 이제는 고기만두인가 봐."



김치든, 만두든 뭐 어떠랴, 커다란 만두면 그만이지. 김고로는 직원분께서 뜨거우니 덜어먹으라고 챙겨주신 플라스틱 앞접시에 돌처럼 큼직한 만두를 두어 개 담아 반으로 갈라 본다.


푹 익은 양파와 고기, 파와 탱글거리는 당면이 얇은 피 안에 가득 들었다. 돼지고기의 살코기와 지방이 잘 섞여서 식감도 텁텁하거나 뻑뻑하지 않고 얇은 피만 쪼개서 들어가면 부드럽고 입에서 녹는 달콤한 양파와 기름진 고기의 눅진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김고로는 잠시 눈을 감고 만두소의 식재료들을 탐미해 본다.



기름이 섞인 살코기가 고기의 진한 맛을 퍼뜨리며, 그 사이로 양파의 채수와 달콤함, 그리고 당면의 쫀득한 부드러움이 튕기듯이 씹힌다. 만두들이 담긴 맑은 육수는 모나지 않고 티나지도 않는 맛인지만, 깔끔하며 은은하다. 고소한 맛으로 미루어 보아, 쇠고기 육수라고 생각이 들었다. 진하지 않은 은은한 고기 육수가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 오히려 먹는 사람이 만두 본연의 맛에 집중하도록 격려하는 육수다. 고기만두의 따뜻한 고기맛을 더 뜨끈하고 진하게 먹을 수 있도록 주인장의 배려가 담긴 국물이다.



김고로는 만두와 떡국떡, 그리고 달걀과 부재료 들을 그릇 가득 담아서 한꺼번에 퍼먹는다. 쫀뜩거리는 떡과 만두피, 달걀이 은은한 쇠고기 육수에 충분히 적셔져 부들부들한 식감으로 몸을 떨면, 김고로는 곧 만두의 속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시원함을 전파하는 막국수와는 다르게, 묵직한 따뜻함이 김고로의 입과 코부터 시작하여 온몸을 천천히 덥힌다. 포만감도 점점 차오르며 김고로는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다.


"와, 오늘 여기 막국수 안 먹었으면 나중에 와서 한참 후회할 뻔했네요."


"그 정도야? 허허허."


자신이 데려온 식당에서 김고로가 맛있다며 기뻐하자 뿌듯하신지 웃으시는 L형님. 그들은 안인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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