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로 May 24. 2022

단팥죽과 호박죽

따뜻했지만 식은, 쉬워져 버린 것들에 대하여.


예닐곱 먹은 꼬마 아이였던 그 시절, 어머니는 동네에서 장을 보러 가실 때면 항상 나를 데리고 가셨다. 한창 사고뭉치였던 시절이라 집에 혼자 있으면 집안의 물건이 남아나지 않을 때이기도 했고, 그런 주제에 또 겁은 많아서 엄마가 장을 보러 갔다가 늦게 오시는 날이면 집이 떠나가도록 엉엉 울기도 했었으니까. 어머니께서 항상 가셨던 곳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동네의 커다란 아파트 단지 내의 복합 상가. 2층, 1층과 지하상가까지 합쳐 있던 총 3층짜리의 커다란 건물로 지하상가에는 현대식의 마트와 재래시장처럼 점포에서 물건을 앞에 내놓고 파시는 나이 지긋한 상인분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지나가기 싫어하는 부근이 있었는데  퉁퉁하고 나이가 많아 주름이 자글자글하셨던 어느 할머니께서 하던 반찬집이었다. 당시만 해도 LED는 무슨, 형광등이나 주광색 백열전구로 이루어진 상가들이었어서 야간 시장과도 같은 불빛 아래에 대용량으로 젓갈을 담그는 기름 드럼통만 한 푸른색의 통에 담긴 이런저런 젓갈과 반찬들에서 비릿하거나 짠내가 스멀스멀 콧속으로 올라와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숨을 잠시 참고 지나가고는 했다.


푸른색 플라스틱 드럼통에 담긴 연한 풀색을 머금은 짜고 시큼하고 물 냄새가 나는 오이지, 진한 바다내음이 기어 나올 것 같은 젓갈통과 넓고 투명한 유리 미닫이문 안에 칸칸이 담겨있던 장아찌들이 형형색색의 모습에 시선을 뿌리치기는 어려웠지만 나의 후각에게 그 음식들은 기피의 대상이었다. 나는 짠내나 비린 냄새들을 어릴 적부터 싫어했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더 신기하게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으니 젓갈이나 오이지가 담긴 통들만큼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은색 스테인리스 냄비에 담긴 팥죽과 호박죽이었다. 팥죽에는 희고 매끈거리는 새알(찹쌀떡)들과 붉은 바다들 사이로 촘촘히 떠서 박혀있는 밥알들, 호박죽에는 엄지손톱만큼 커다란 붉은 콩들과 사이사이로 인체 신경계처럼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는 호박의 섬유 줄기들.


항상 뜨끈뜨끈해 보이고 단내와 찹쌀의 끈적한 냄새가 올라오는 죽들이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어머니께 사달라고 말해서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었다. 작은 컵라면이 담길만한 플라스틱 용기에 듬뿍 담아서 랩을 여러 번 씌워 가져온 팥죽과 호박죽. 어릴 적 처음 먹어보았던 팥죽의 맛은 그리 괜찮지 않았다, 달달할 거라고 생각한 팥죽은 짭짤하고 팥들이 텁텁한데 그 사이에 둥둥 떠서 그나마 맛있는 쫄깃한 새알은 생각보다 수가 적었고 쌀알이 너무 많아서 밥에 팥고물을 얹어먹고 있는지 팥죽을 먹고 있는지 모르겠는 맛. 호박죽은 호박의 섬유 줄기들이 오렌지 씨알들처럼 입안에서 걸리적거리고 (나는 오렌지 펄프가 들어간 주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죽 자체는 너무 끈적한 맛.


그렇다, 죽에 대한 처음 경험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죽에 대한 나의 인식은 O사나 C사와 같은 대중적인 입맛을 자랑하는 대기업들의 식품으로 점점 개선이 되었다. 겉모습만 보기에는 그리 맛있어 보이지 않고 실제로 어린 나에게는 맛이 있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그것들에 대한 나의 인식이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내가 감기에 자주 걸려 고열에 시달렸을 때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은 더워서 스스로에게 잔뜩 신경질이 나고 화가 나는 그런 날, 가마솥에서 막 쪄서 나온 고슬고슬한 밥알도 입에서는 강릉 해수욕장의 모래알을 씹는 맛과도 같은 그런 날이 오면 밥이 아니라 죽을 찾게 된다, 그런 날에는 죽만큼 진수성찬인 것이 없다.


뜨거워서 먹기 힘들었던 죽의 온도는 속을 덥혀주는 온도가 되고, 식으면 식은 대로 먹기가 쉽다. 끈적끈적하고 질척이는 그 식감이라도, 그래도 밥알들보다는 먹기도 쉽고 씹기도 쉬워져서 아픔으로 기력이 없는 날이면 죽만큼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어딘가에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우리는 몸이 다 낫고 나면 더 이상 죽을 찾지는 않는다, 볼 일 다 봤으니 이제 쓸모없다는 태도로 돌변해버린다.


죽이라는 것은 그저 간식, 아니면 정 아프거나 속이 안 좋을 때만 찾는 그런 음식. 정말로 맛이 좋아서 계속 생각나는 그런 식재료가 들어간 죽이 아니라면 보통은 다 그런 취급이다. 동짓날과 같은 민속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과 행사 때에 본인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만 찾기도 하고. 그래서 보통 죽은 '식은 죽'과도 같은 '쉬운 사람' 대접을 받는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본인 혹은 가족들의 의지로 보살핌을 의뢰받아 요양원(양로원이 아니다)에 입소하신 '어르신'들의 많은 모습을 보아왔다. 그들은 대부분 그렇게 불편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해져 더 이상은 가족 내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였으며, 어머니였고, 가족을 유지하는 버팀목이었으며,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존재였을 터이다. 어떤 분들은 시설에 입소한 후에도 지속되는 가족의 관심과 사랑, 지원을 받지만 그러한 분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다, '식은 죽'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우리들이 위로와 따뜻함과 같은 정서적인 지원, 가끔은 '용돈'이나 '세뱃돈'이라는 이름 아래의 재정적인 지원이나 그들의 노동력과 물질적인 소득 등등... 가족이기에 당연히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우리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이 말을 더 따뜻하고 친절한 단어와 어투로 서술할 수 있지만 냉정하게 이 '식은 죽'이 되어버린 상황을 얘기하고 싶다.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 혹은 사회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시설에 계셨던 입소자분들을 나의 시각 안에 있던 예로 들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사회 혹은 가족의 구성원들이, 정말로 그들은 '죽'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함께 하던 사람들의 필요로 인해서 그 따뜻함과 포만감, 불편함의 해소를 다 제공하고 시간이 다 되어서 식은 죽이 되어버리면, 다시 따뜻해진 이후에도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단팥죽과 호박죽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누군가에게 몸을 바쳐 '쉬운 사람'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 후에는 그 '누군가'들에게 도리어 '쉬운 사람' 대접을 받게 되어 버리는 온기가 식어버린 서늘한 현실. 민주주의라는 오늘날의 집단적 행동 형태 속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나 처지는 외면받기 쉽다, 이미 다 식어버려서 소외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주변에는 '식은 죽'과도 같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없는지 먼 나라, 먼 지역이 아니라 주변과 이웃부터 천천히 돌아보자. 그들은 '식은 죽'과 같은 쉬운 사람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오히려 따뜻한 죽을 함께 나눠먹고 서로의 온기를 공유하고, 받아야 하는 우리 가족 혹은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다. 물론 '식은 죽'들도 스스로 몸을 덥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불이 따뜻해도 본인의 의자가 없으면 되지 않으니, 요즘의 전통적인 죽들도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춰 변하고 있는 것처럼. 다만, 그들이 스스로 몸을 덥힐 수 있도록 불을 넣어주고 공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죽은 따뜻해야 맛있다. 서로에게 따뜻한 죽 한 사발을 내어주는 우리가 되자. 서로를 식은 죽으로 만들지 않는 우리가 되자, 더 이상 우리 주변의 온기가 식지 않도록.



작가의 이전글 [픽션] 극락식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