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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pr 30. 2022

[픽션] 극락식당

2-3


"엄마 밥이 먹고 싶어요, 특히 따뜻한 밥에 멸치볶음이 올라간... 달콤 짭짤한 그 맛이요."


사자가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영력을 잠시 뽐냈을 뿐이지만 효과는 매우 빨랐다. 곧 지선의 '영'에 담겨있고 각인되어 있던 과거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생전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제일 맛있게 먹었고 지금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떠올랐다.


"엄마의 멸치볶음이요? 재밌는 손님이네. 어머니께서 손맛이 좋았나 봐요, 후후."


"네, 우리 엄마는 저 어릴 적부터 손맛이라면 어디가서도 뒤쳐지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반가운 사람의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자 그녀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사자는 그녀의 옆에 앉아 이제 막 셰프의 바에서 제공된 커다란 얼음 구슬이 담긴 토닉을 홀짝거리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있던 커다란 냉장고 안에는 어머니께서 때마다 놓치지 않고 시장에서 사 오신 재료들에 손맛과 정성을 담아 저장해 놓은 밑반찬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어쩔 수 없이 그 수가 줄어들었었지만 그래도 그 밑반찬들이 사라지는 법은 없었거든요.. 헤헤..."


지금껏 짧은 문장으로만 대화를 이어가던 그녀는 더 웃음이 많아진 얼굴로 재잘재잘 이른 아침 시간의 참새들처럼 하이톤으로 떠들었다. 사자는 무표정으로, 마스터는 지선을 엷은 웃음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환영했다.


"특히나 우리 엄마의 멸치볶음은 동네 아주머니들도 반찬집 개업하라고 성화 일정도로 맛이 좋았어요. 달콤 짭짤했는데 잘게 썰어놓은 청양고추가 매콤해서 질리지 않았거든요. 크지 않은 잔멸치를 바삭하게 굽듯이 볶는 것이 우리 엄마 멸치볶음이었는데... 히잉... 엄마 보고 싶어요..."


그녀가 다시 우울한 기분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마스터는 이제 막 착즙을 마친 상큼한 오렌지주스가 담긴 유리병에 작은 우산과 오렌지 한쪽을 썰어 꽂아주며 황급히 건넸다. 지선의 작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구였다.


"지선 씨, 주스 마시면서 얘기해요."


"앗, 네.... 하아, 맛있어요!"


"그렇죠? 나도 음식이라면 한 손맛 하거든요, 후훗"


"역시 달달한 거 먹으니까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서요 우리 엄마는요..."





검은 상복을 입고 밝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영정 사진, 그리고 그 앞에서 하늘이 떠나가고 땅이 꺼질 듯이 곡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지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얌전히 공부를 하던 중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손을 잡고 데려온 장례식장,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아버지의 장례식장. 그녀가 장례식장 안의 빈소로 들어오니 몇 주전 아버지와 함께 얼큰하고 기쁘게 취한 얼굴로 집에 놀러 오셨던 영태 아저씨가 그녀를 안으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하다... 미안해.... 회사에 불이 났는데... 너희 아빠가 다른 사람들 대피시키다가 정작 자기는 못 나오고....!"


그 누구도 지선에게 '너희 아빠는 죽었다'라던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미 깨닫고 알만한 나이였던 그녀는 처음으로 그녀의 마음에 와닿는 '죽음'의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아빠 쪽도, 엄마 쪽도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안 계셨기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 이거니 하고 쉽게 받아들인 그녀였지만 이미 밝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 앞에 쓰러져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이제 막 시작된 아버지의 부재는 그녀의 눈물방울로 실현되었다.


회사의 높은 자리에 있는 듯한 아저씨들과 동료 아저씨들, 친구들, 친지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며칠간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빠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도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퇴근하고 돌아온 그녀의 아버지가 웃으며 그녀를 안아줄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남은 것은 장례식을 치르고 부조금을 받으며 남은 약간의 돈과 전셋집, 어머니와 어린 지선. 어머니의 헌신적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경제사정은 빠르게 무너져갔고 지선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눈앞에는 반지하방 천장 가까이 뚫린 미닫이 창문과 방범용 철창.


"엄마...."


"응? 왜 지선아?"


집이 넓지 않기에 둘 수 없는 물건들을 다 처분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는 이삿짐 상자들을 정리하던 지선의 어머니였다.


"아빠는 이제 못 보는 거지? 아빠는 이제 다시 집에 안 오는 거지?"


"............."


지선의 어머니는 말없이 지선에게 다가와 지선의 어깨가 축축이 젖도록 말없이 그저 울기만 했다. 그때까지 그래도 꾹 잘 참아온 사랑하던 이에 대한 그리움이 폭포처럼 터져 나왔다고 지선은 회상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주변에서 이런저런 도움도 받고 대출도 받으셔서 동네에 작은 반찬가게를 여셨어요."


"와, 어머니께서 솜씨가 좋으셨나 보다. 나는 지금도 반찬 맛있게 하는 것이 제일 어렵던데."


"헤헷, 우리 엄마 반찬은 누구나 맛보면 다시 사러 올 정도로 잘하셨어요. 그게 입소문이 많이 나서 지금도 어머니는 계속 그 자리에서 반찬가게를 하고 계세요. 제가 좋아하는 멸치볶음도 거기 인기상품이고요."


사자는 그 옆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귀는 쫑긋 세우고 지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그도 마스터도 아닌, 오직 지선만이 그녀 어머니의 멸치볶음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고 그 요리법을 찾아와야 할 사람은 사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마스터도 지선과의 '멸치볶음'과 어머니에 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정말 유명한 반찬가게겠어요, 가게 이름이 뭔데요?"


"서울 OO동의 '엄마손맛'이요! XX슈퍼마켓이랑 OO아파트 근처에 바로 보여요."


사자는 내적 환호를 하며 변치 않는 무표정의 얼굴로 토닉을 한모급 더 마시며 입을 열었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겠군."


"네, 네.. 맞아요.."


마스터와는 달리 인류 친화적이지 않은 사자의 목소리에 다시 원래대로 소심하게 돌아온 지선의 목소리였지만 어머니의 반찬가게의 용이한 접근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 최근에도 계속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으며 지냈었어요?"


"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마음도 안 좋고 피로도 많이 쌓이니까 속이 안 좋아서요, 요즘은 많이 못 먹었었어요. 거기다 그 멸치볶음은 매운 고추가 들어가니까, 잘못 먹으면 속이 조금 아프거든요."


"저런... 그럼 최근에는 뭘 많이 못 먹었겠네요. 안타까워라."


"네... 물이나 차, 커피 같은 거랑 죽이나, 쌀밥 정도요."


"에구에구... 잘 챙겨 먹고 다녀야 되는데."


"그러게요, 저는 독립하고 나서 혼자 자취를 하며 살아서요, 더 자신을 잘 챙겨야 하는데 그게 의외로 잘 안 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사자는 마저 남아있던 토닉을 얼음까지 와그작 씹어먹으며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자신과 마스터가 이 '어른이' 영혼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계획을 세워두었다.


"어.. 어디.. 가세요?"


"잠깐 나갔다 오겠다. 그런데 너, 조금 쉬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나?"


"네, 맞아요.... 요새 통 못 쉬었어서요."


"여기 있는 여자와 나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잠시 있도록, 곧 올 것이다."


"아.. 네..."


무언가를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범접하거나 엄습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사자의 말에 감히 지선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여자'라는 말에 식당 바테이블의 건너편에 생글생글 웃으면서 서 있던 마스터의 눈이 동그랗게 열렸다. 그녀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 나도요? 굳이? 왜요?"


사자는 마스터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기 하나 없이 말했다.


"데이트니까."


사자의 거친 발언과 그것을 들은 마스터의 불안한 눈빛과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선 사이에 형용할 수 없는 고요와 정적의 분위기가 잠시 흐르고 어색한 공기를 감당할 수 없는 마스터는 잠시 상기되었던 얼굴을 흰 손바닥으로 가린 채,


"아하하하핫! 사자님, 농담도 할 줄 아시는구나! 아하하하!"

라며 인위적으로 조작된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비해 사자는 아무런 반응 없이,


"농담이 아니다, 따라 나오도록."이라는 말을 남길뿐이었다.


지선은 검은 복장의 사자와 그를 따라가는 흰 요리사 복장의 여자, '마스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사와 악마가 있다면 실제로는 저런 모습이 아닐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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