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식 생활을 충족시켜줄 집을 찾아다니면서 즐거운 것 중 하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장이나 골목 등의 오래되어 보이는 노포에서 미식의 가치가 있는 집을 찾아냈을 때이다. 각 도시마다 오래된 집들이나 가게들이 모여있는 시골이나 시장들이 있는데 사실 해당 도시에 거주한 지 오래되지 않았거나, 처음 오는 경우에는 노포의 맛집들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각 도시를 세세한 지도로 보고 다닐 만큼 지리를 아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각 지역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힘들게 골목골목 걸어 다니고 뛰어다녀도 결국에는 '편하게 시내에서 햄버거에 커피나 사 먹지'라는 생각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릉에서 알게 된 여러 인간관계의 소중한 인연분들께 감사드린다, 미식이나 음식점, 카페 등의 이러쿵저러쿵한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가 되었든지 주변에서 사람의 입과 귀로 전달되는 '미식 전설'만큼 따라가기 흥미롭고 재미있는 정보의 시발점은 없기 때문에.
블로그, SNS, 검색엔진, 플랫폼 등등 결국 사람이 주관적으로 경험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그 말이 진짜인가?'라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은 다를 것이 없다. 결국 내가 신뢰하는 것은 나의 오감이다, 눈, 코 그리고 혀, 그것이 미식 경험을 함에 있어서 내가 신뢰하는 전부이다.
나에게 미식 경험에 대한 정보나 소문들을 적극적으로 전해주시는 구커피의 사장님께서 오래전에 나에게 추천을 해주셨던 중국집이 있다, 그 이름하야 '원성식당'. 그 근처 명주동의 어느 카페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실 때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방문했던 집인데 독특한 점이 하나 있었다.
여러분들은 한국에 있는 '중국요리'라고 하면 으레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짜장면, 짬뽕 그리고 탕수육, 조금 더 가면 볶음밥 정도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전국에는 수타 짜장이나 유명 짬뽕집이 즐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중국집 이름 같지 않은 이름을 가진 원성식당의 주요 메뉴는 바로 잡채밥과 짬뽕밥이다. 짜장면이 아니라 잡채요, 짬뽕이 아니라 짬뽕밥이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적지 않게 놀란 것이 사실이다. 잡채밥이 유명한 중국집이라.... 흥미롭다, 잡채가 얼마나 맛있으면 그럴까.
그리고 원성식당을 방문하기 전, 구커피의 구사장님은 이러한 조언을 나에게 남기셨다.
"원성 식당은 그날 그날 주방에서 웍을 잡는 사람이 달라요. 나이가 좀 있으신 어르신께서 웍을 잡으시면 잡채밥을 시키시고요, 비교적 젊으시고 덩치가 크신 분께서 웍을 잡으면 짬뽕밥을 시키세요. 그러면 문제없을 거예요."라고.
원성식당으로의 나의 첫 방문은, 이미 대학생 시절부터 강릉에 거주하며 원성식당을 몇 번 방문을 했던 나의 이쁜 여자와 함께였다. 그녀도 역시나
"원성식당 짬뽕밥이랑 잡채밥 맛있어'라고 하면서 구사장님의 미식증언에 말을 보태었다. 호오... 그렇다면 그 정보에는 신뢰가 더욱 쌓인다. 슬슬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던 봄에 나는 이쁜 여자와 원성식당에 이른 저녁을 먹으러 향했고 그날은 마침 어르신께서 웍을 잡고 계셨다. 머릿속에
'어르신은 잡채밥'이라는 말이 울려 퍼졌고 우리는 잡채밥을 2개 주문했다. 무심하지만 챙겨줄 것은 다 친절하게 챙겨주시는 홀의 직원분의
"홀에 잡채밥 둘!"이라는 말에 따라 옛날 건물이라 홀과 방에 따로 환기시설이 잘 되어있지는 않아서 그런지, 주방의 고화력과 웍에서 익어 올라오는 유증기와 매캐한 불향이 우리가 앉아있던 밝은 홀을 스멀스멀 채우기 시작했다. 이것도 수십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전통 한국식 중국 요릿집의 특색일까, 나에게는 그저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간으로만 느껴졌다. 우리가 저녁 장사의 첫 손님이라 주방의 화구를 켜고 웍을 덥히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재빠르게 달그락거리면서 웍을 돌리는 소리와 재료들이 볶아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눈앞에는 잡채밥이 짬뽕 국물과 함께 나타났다.
원성식당 잡채밥
겉으로 보아도 살짝살짝 강하게 익은 야채들의 색깔과 냄새, 그리고 살짝 탱글 거리기도 탄탄하게도 느껴지는 당면, 당면은 집에서 곧잘 먹는 얇은 당면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2배 정도 굵은, 상당히 굵은 당면이었다. 거기에 채썰린 애호박, 당근, 양파, 버섯, 짭짤하게 타오른 간장과 화끈거리는 후추의 향미 두텁게 쌓아져 올린 당면과 밥의 언덕. 마지막은 웍으로 강하게 익혀낸 반숙 혹은 완숙 달걀.
코털 사이사이로 고소한 기름 냄새와 간장 냄새, 후추 냄새가 기어올라오는 그 맛에 우리는 홀린 듯이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아삭아삭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당근, 양파, 애호박의 달큰함과 고소함 가득한 기름과 불의 풍미에 심심한 밥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뒤늦게 밀려들어오는 당면의 매끄러움과 쫄깃함.
당면의 한 가닥, 한 가닥을 씹을 때마다 쫄깃하며 탱글 거리는 계속 씹고 싶은 그 식감과 '호로록'하면 입술을 훑으며 입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만족스러운 소스. 그 덕분에 입술이 광택 윤활제를 바른 것처럼 번들거렸지만 나는 이미 한 숟가락을 더 들고 당면을 최대한 많이 밥 위에 얹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원성식당은 잡채밥이 정말 맛있어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었네요'라고 말씀하시던 구사장님의 말이 귀를 스쳐 지나간다. 코로 들어오는 웍의 불맛과 감칠맛 넘치는 짭짤한 소스, 기름의 맛, 그리고 당면들이 어우러져 양이 많았지만 양이 많다고 느껴지지 않는 그런 맛. 정신을 차리고 한쪽 벽의 메뉴판을 보니 강릉에 있는 중국집에서는 잘 못 보는 메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텐푸라]
한국의 미식가들에게는 중국집에 대한 이러한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중국집에 '텐푸라'라는 메뉴가 걸려있는 것을 본다면 무조건 탕수육을 주문해라. 튀김에 자신이 없는 중국집은 '텐푸라'를 메뉴에 내걸 수 없다."
중국집의 '텐푸라'는 무엇인가? 일식집에서 사용하는 '텐푸라'라는 말과는 다르게 중국집의 텐푸라는 소스를 끼얹지 않은,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해서 간장에 살짝 찍어먹는 순수한 고기튀김을 뜻한다. 즉, 중국집에서 '텐푸라'를 한다? 튀김을 주문하는 것은 필연적인 순서이다. 하지만 이미 배가 많이 불러 더 먹지 못할 것을 직감했기에 나는,
"원성식당에 재방문을 한다면, 반드시 텐푸라를 먹으리라'라는 굳은 결심과 함께 추후 방문을 마음속으로 기약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이어진 어느 더운 여름, 하늘이 오늘처럼 뿌옇던 날, 강릉의 새 회사 사무실의 개소를 도우러 서울에서 오신 K이사님과 함께 나는, 강릉에서도 함께 일하는 H팀장님, 균 그리고 K이사님과 함께 강릉 사무실을 도와주러 온 U주임님과 함께 원성식당을 갈 수 있었다. 그 전날 다 같이 회식을 하면서, 회식을 하던 갈빗집 근처가 마침 원성식당이라 이러쿵저러쿵 말씀을 드린 것이 시작이었다.
마침 시장과 골목의 노포 식당을 좋아하시는 K이사님께는 안성맞춤인 식당이었고 다음날 점심 메뉴로 낙찰이 되었던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한창인 시간이라 우리가 방으로 들어서자 곧이어 방과 홀이 사람으로 가득 찼고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 날도 마침 어르신께서 웍을 잡고 계셨던 터라 다들 잡채밥을 주로 시키고 짜장면, 그리고 텐푸라를 주문할 수 있었다.
"텐푸라가 뭔지 아시는 거죠?"
홀을 보시는 직원분께서 우리에게 텐푸라에 대해 재차 확인했다. 탕수육과는 확연히 다른, 소스가 없는 튀김이라는 것을 알고 있냐는 확인이었다. 우리가 확실하게 '네'라고 대답하자 직원은 다시 홀로 돌아갔다.
우리 앞에 주문이 여럿 밀려있어서 우리의 음식은 조금 늦었지만 불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맛있는 음식이란 그런 것이니까.
겉은 바삭바삭하고 튀김의 속은 부드러웠다, 고기는 쫄깃하고 잘 익은 고기의 육즙이 구수하다. 간장에 식초를 약간 섞어 초간장을 찍어 먹으니 고소한 고기튀김의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원성식당 고기튀김
고기튀김의 꽉찬 단면
"옛날에는 중국집이, 대만에서 온 화교분들이 많이 열어서 '텐푸라' 혹은 '대만식 고기튀김'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고기튀김을 많이 팔았어, 그런데 중국이랑 수교를 한 이후로 대만 화교분들이 대한민국을 많이 떠나면서 중국집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
나 만큼이나 미식을 좋아하시는 K이사님께서 텐푸라에 간장을 살짝 찍어 말씀하신다. '고기튀김'이라는 말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나머지 사람들도 이제는 음식이 맛있어 크게 떠진 눈으로 '후 하 후 하' 뜨거운 고기를 불어먹으며 식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맛을 한번 보고 싶었던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잡채밥이 익숙지 않았던 어느 분께서 주문을 했었던 것인데, 달착지근하고 묵직한 맛이 다른 중국집에 비교해서 아쉬운 점이 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잡채밥과 짬뽕이 워낙 맛이 좋기에 짜장면이나 다른 메뉴들의 맛이 드러날 수 없는 곳이 원성식당이었던 것이다.
잡채밥과 함께, 짜장면
짜장면이 찰지다
이전에 이쁜 여자와 와서 함께 먹을 때처럼 잡채밥은 나 외에도 다른 이들에게도 고소하고 짭짤한, 탱글 거리면서 매끄러운 만족감을 허락했다. 잡채밥이라는 음식이 다른 중국집에서는 거의 주문할 일도, 먹어볼 일도 없는 음식이기에 비교적 더 새로운 맛을 선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잡채밥을 주문하면 국물로 약간 맛을 볼 수 있는 짬뽕은 기본적으로 매콤하고 진한 맛이다, 해물과 건더기가 가득하고 매운 고춧가루의 알싸함이 눅진한 해물과 야채 육수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소주나 맥주가 끌리는 그 맛.
다만, 원성식당은 기본적으로 음식의 양이 워낙 많은 편이라 다들 음식을 깨끗하게 먹는 것은 쉽지 않았을 뿐.
우리 주변을 보아하니 대부분 식사에 탕수육을 곁들여 먹는 식탁, 굳이 소스가 없는 텐푸라를 주문해서 먹는 곳은 없었다. 중국집 텐푸라는 인지도가 잘 없기도 하거니와 탕수 소스를 끼얹어서 먹는 것이 훨씬 화려하고 익숙한 맛이니까. 텐푸라는 식사보다는 안주로 더 안성맞춤인 맛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셨던 직장인 혹은 언론인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에게 식탁을 내어드리고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향했다. 맛있는 음식을 잘 얻어먹었으면, 일을 해야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짭짤하고 바삭한 고기튀김에 시원한 맥주 한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원성식당의 텐푸라와 잡채밥을 맛보면 당연한 것이려나.
그래, 다음에 또 가면 지금 했던 이 생각 '텐푸라와 맥주 한잔', 잊지 않고 꼭 실천해야겠다. 이쁜 여자와 함께라면 더 즐겁겠지. 배고프면 어쩌지..? 잡채밥 한 그릇 나눠먹으면 되겠지, 원성식당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