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도나모닝 Apr 05. 2022

30대 딩크족에게 부모님이 지어준 한약의 상징적 의미란

개인주의자 삼십 대 딩크 여성의 시선에서

본가에 갔다.

부모님은 방문한 것에 대해 굉장히 반가워하며

안그래도 최근에 나와 남편 한약을 지었다고 말한다.

한약 짓는 김에 겸사겸사 우리 거까지 함께 지었다는 것이다.


부엌 한편에는 이미 한약 6박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거는 내일 받으러 간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녹아있는 나와 남편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을 한다.

특히 나는 잘 챙겨 먹지 않은 편이며,

일상을 살아가는 내게 필요한 한약은 카페인이 진하게 들어간 커피이다.

그걸 아는 부모님은 건강을 위해 먹으라며 한약을 지으러 간 것이다.


한약에는 장어, 도라지 등 몸에 좋은 음식은 다 들어갔으므로 꼭 챙겨 먹으라는 말과 함께

한약의 배송 소식을 알렸다.




이때 나는 곧바로 작은 의구심이 들었다.

부엌 한편에 이미 한약 6박스가 있는데, 왜 내 한약은 다음날 오는 것인가?

내가 받게 될 한약이 건강 증진을 위한 한약이라면,

이미 부엌에 있는 한약과 같은 재료로 함께 달였을 것이며

이미 내 손으로 들어왔어야 했다.

왜 특별히 다음날 오는 것인가.

퀘스천 마크가 붙었다.


그래서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추후에 검색을 하기 위해 질문을 했다.

내가 마실 한약에는 어떤 것이 들어갔느냐고.

추후에 들어간 재료를 검색하면 그것이 진정 건강 증진을 위한 한약인지

다른 효능이 있는 한약인지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혹여나 부모님이 소위 착상탕이라 불리는,

자궁을 건강하게 만들어 임신이 잘 될 수 있는 한약을 달여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뇌리에 빠르게 스친 것이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더더욱 부모님이 지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추후 검색을 위해 질문을 한 것에 비해 너무나 광범위한 대답이었다.

장어와 도라지 등 좋은 뿌리 재료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러면 알 길이 없다.

다시 질문해야 한다.


다시 한번 본심을 숨기고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같이 달였을 텐데 내건 아직 안 왔느냐고.


부모님과 우리의 신체적 나이가 다르므로 다른 재료를 써서 다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역시나 애매한 답변이다.




집을 나오자 작은 의구심이 증폭되기 시작하였고

실제 건강 증진일지도 모르는 그 한약을 받기도 전에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의구심을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와서,

한약에 대해 이야기하자마자

남편도 아까 그 상황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 합리적 의심이었다.

특히 부모님은 아이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음을 알고 있으므로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받지도 않은 한약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의 주도 아래 이야기가 이어졌다.


검색창에

'임신 잘 되는 한약', '임신 한약', '임신 한약 재료' 등을 검색하였으며,

임신 잘 되는 한약이란 소위 착상탕이라 불리며

착상탕이라 불리는 한약은 자궁을 튼튼하게 하는 효능을 지녔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임신을 원하여 착상탕을 지어먹는 사람이 있으며,

나처럼 부모님에게 받고 싶지 않지만 받아 버릴 위기에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임신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임신을 하게 될 경우 아름다운 상황이 펼쳐지지 않는데

왜 부모님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인가.

출산하여 아이가 있는 상황까지 상상되며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일단 한약을 받고 며칠 뒤에

부모님에게 효과가 좋다며 어디에서 다렸는지 물어보고

그곳에 전화해서 효능에 대해 직접 물어볼 것인가라는 치밀한 생각에 이르렀다.


아, 만성 편두통 환자인 나는 작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편두통 신호가 왔다.


뒤이어 착상탕인지 건강증진 한약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받지도 않은 한약의 처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착상탕에 대한 효능과 복용 방법, 시기 등에 대해 정독을 하며

착상탕의 늪에서 헤엄치다 뭐하는 짓인가 싶어 생각을 바꾸었다.


결국 찾아보니

착상탕이란 것은 결국 인공수정과 같은 수술이 아니며

그저 여자의 자궁을 튼튼하게 해 줄 뿐이라고.


건강이 갈수록 하강 곡선을 그리는 나에게

자궁이라도 튼튼해서 나쁠 게 없다고.


마음을 바꾸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먹지 뭐.




그리고 다음 날

결국 궁금함을 참을 수 없는 나는

내가 받으러 갈 한약이 나와 남편분이 따로 있는 것이냐고 부모님에게 물어보았다.


구분 없이 두 박스이니 함께 먹으면 되며,

피곤할 때는 두 봉지 먹으라는 답변을 받았다.


착상탕은 복용 기간이 있으며 다소 일정해야 하는데?


결국 물었다.

"혹시 그 한약 임신 잘되는 효능을 지닌 건 아니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황당한 듯한 답변이었다.

황당한 듯이 웃으며 그랬다면 너 것만 지었겠지라는 답변을 덧붙이며.




결국 받아온 두 박스는

건강 증진을 위한 한약이었으며,

별개로 임신 잘 되는 한약을 소위 착상탕이라 불린다는 지식을 얻은 셈이었다.




부모님과 별개로 한약을 따로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한약의 효능이 '건강 증진인 것인가' 아니면 '임신이 잘 되는 효능인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해프닝은

딩크를 희망하며 현재 지향하는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나일지라도

임신에 대한 압박이 드는 문화에 놓였으며,

그 상황에 부담감을 느낀다는 점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이 지어준 한약'은 단순히 건강 증진을 위한 것었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출산에 대한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으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마치 30대 기혼 여성인 나에게

부모님이 지어준 한약이란

슬슬 출산에 대하여 생각을 하고 준비를 시작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딩크'를 생각하고 왜 그런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부터

출산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아직은 이른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슬슬 주변에서 결혼 소식을 알리는 횟수가 늘어났으며

2-3년 내로는 출산 생각도 있다는 친구가 더러 생기고 있고

이미 출산을 한 지인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출산 계획이 없다.

앞으로 5년은 없을 것이며, 사실 평생 없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내 가치관과 감정이 변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아이 갖는 계획을 이야기할 경우 주변 이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묻지 않지만,

딩크에 대하여 주장하기 위해서는 왜 딩크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항상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다.

그 과정이 마치 변명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저 딩크인 이유는 아직은 단순히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이며

아이를 낳는 이유와 동일할 뿐이다.


오히려 아이와의 경험이 세상에 비할 바 없는 특별한 경험이라고도 느끼면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며 내 삶의 지향점이 중요한 나에게

나를 제외한 누군가를 돌본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낯설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결혼하니 어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