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교장의 흔한 의성어
나는 돌봄 교사다. 대부분의 업종에서는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 비록 최저시급이었고, 정규직 전환에 맞물린 대가처럼 교장선생님의 눈총도 받아야 했지만, 미숙한 러너처럼 굴지 않기로 했다. 러너들은 말하곤 한다.
“초반 한계치를 넘고 나면 숨이 편안해져. 그걸 견뎌내야 해.”
오늘도 교장 선생님은 머리 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웬만해선 그녀와 마주치기 힘든 동선인데, 정규직 돌봄 교사가 된 뒤로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출근할 때, 현관 앞에서 매일 마주치고 있다. 3분 정도 지각했던 날이었다. 거의 정시에 왔다, 고 생각할 뻔했는데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자신의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나도 시간을 확인한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출근해야 할 12시 30분부터 그 자리에 서있었을 것이다. 3분 동안 그녀는 주차장을 바라봤겠지. 지각한 주제에 뛰어오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다. 덜 익은 감을 씹은 듯한 그녀의 표정을 박제하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커서 누군가를 사귈 때, 약속 시간에 늦게 간다면 이런 표정을 연인에게서 보고 말 거야.’
몇 년 전에 개그콘서트에서 남자 개그맨이 여장하여 ‘희숙대리’라는 역할을 한 적이 있다. 희숙대리.. 히스테리, 그렇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단기계약 강사에서 무기계약 돌봄 교사가 된 것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중이었다.
“어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인 나에 비해서 그녀는 고개만 5도 정도 돌릴 뿐이다. 시선을 마주치고자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선생님, 식사하셨어요?”
“흠, 네.”
‘네’라고 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재잘대는 바람에 안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불길한 ‘흠’은 뭐지.
잠시 후에 내가 근무하는 돌봄실에 누군가 노크를 한다.
“아, 교감 선생님? 어서 오세요.”
“어, 선생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앞으로 출근 시간을 잘 지켜주시고요. 교장 선생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면 안 돼요. 아셨죠?”
“네?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요? 그럼 뭐라 불러요?”
“그러니깐 ‘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셔야 한다고요.”
그 뒤로 멀리 교장 선생님이 보이면, 혼자 연습을 했다.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 별거 아닌 단어였는데 별스러워졌다. 다정하게 ‘아빠’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으면 집에서 내쫓을 거라는 경고를 들은 것만 같았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흠, 네.”
이번엔 확실히 ‘네’가 들렸지만, 흠은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한 박자를 ‘흠’으로 쉬고 들어갔다. 더군다나 그녀의 시선은 자신의 발등을 바라보고 있다. 교무실 안에서 보통의 선생님과 갓 무기 계약직이 된 나를, 그녀는 차별하는 ‘중’이라고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제부터 취중 글쓰기>
그녀의 퇴근 시간이다. 학교에서 신청한 우유는 먹지 않고 가방에 챙겼다. 그녀는 딸이 둘 있는데 큰딸은 일본에 유학을 갔고, 둘째는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교직에서 퇴직한 남편은 뒤늦게 알게 된 이자카야에 반하여 저녁마다 전주 시내에 있는 ‘이자카야 도장 깨기’를 하고 있을 테다. 46평인 그녀의 아파트에서 자신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입도 뻥긋할 필요가 없다. 샤워를 하고 나니, 정성껏 세운 앞머리는 이마에 딱 붙고 흑채로 가린 이마는 시원하게 드러났다.
“아차차, 고구마를 안 사 왔네.”
그녀는 아침대용으로 우유와 호박 고구마를 먹는다. 별 수없이 카디건을 걸치고 고구마를 사기 위해 동네 슈퍼에 간다. 고구마 사는 것을 깜빡 잊지 않았다면 옷을 갈아입기 전에 백화점으로 나섰을 거다. 축 처진 앞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그녀는 웃는 모습보다 팔짱 낀 채 근엄한 표정이 어울리는 (혹은 희숙대리) 교장 선생님이었다.
“흠, 저기요.”
“네, 손님. 어서 오세요.”
“흠, 밤고구마 말고 호박 고구마로 중 사이즈 3000원어치 주세요.”
“직접 담으시면 됩니다.”
“흠, 사장님께서 제가 말한 대로 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사장은 알바생을 불렀다. 그리고 사장은 알바생에게 귓속말을 했다.
“호박 고구마 중에서 흠이 가장 많이 난 걸로 골라서 저 손님에게 줘라.”
이 글은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술 마시고 쓴 부분은 소소한 복수심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유치할 수도 있고 시시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