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택

복성댁의 쌍팔년도

by 게으른 산책가

집 모양이 모두 비슷한 마을이 있다. 88 올림픽 때 설계되었으며, 그 당시의 표준 부잣집을 모델링하여 지어졌다. 이웃 동네에 비하여 눈에 띄게 부자 동네처럼 지어진 이유는 88 고속도로를 곁에 둔 덕분이다. 혹시라도 외국인이 이 마을을 봤다면, 개발도상국 중에 최고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 자동차는 휙휙 지나가니까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다. 그들이 매와 같은 9.0의 시력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마천떡, 빨래를 이렇게 널면 어떡햐?”

“뭔디. 쫙쫙 펴서 널면 장땡이제.”

“윗도리를 널 때, 목덜미가 아래로 내려오게 널면 안 된댜아. 더군다나 가장 것을 고로코롬 널면 안 되제.”

“그려?”

반듯한 상의 아랫단을 빨랫줄에 널기가 편해서 쫙쫙 펴서 널었건만, 어디서 들었는지 옆집 복성댁은 그러다간 빨래에 널린 모양처럼 옷의 주인이 비명횡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났을 것이다. 냇가에서는 빨랫방망이질 소리가 한 차례 요란하게 들렸으니까. 그리고 집집마다 빨랫줄에 널린 가장들의 젖은 옷은 어깨춤을 추고 있다. 빨래터에서 울려 퍼진 방망이질 소리는 동네에 가끔 들어오는 약 파는 악단만큼이나 선동질에 능통했다.

복성댁은 중학교 선생들을 상대로 하숙을 치고 있었다. 5일장을 빠뜨리지 않고 가지만 고기는 잘 사지 않는 편이다. 굳이 고기가 아니어도 그녀의 요리 실력은 훌륭한데, 비싼 고기를 사서 하숙생들의 입맛을 육식으로 부추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운동회에 가면 아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었다. 맨 앞자리에 있는 아들은 언제나 눈에 쉽게 띄었으니까.

“돼지고기 앞다리 살로 한 근 주쇼.”

하숙생들이 설레발치지 못하도록 그들의 근무 시간에 복성댁은 고기를 볶아서 아들을 불러 이른 저녁을 먹였다. 아들은 오랜만인 고기가 두부인양 먹어댔다. 몇 번 씹지 않고 꿀꺽꿀꺽 삼켜댔고, 밤이 되어서는 우웩 우웩 마중물이 우물물을 끌어올리듯 토해냈다. 고기를 먹기 전보다 더 퀭해진 아들을 보니, 복성댁은 속이 쓰렸다. 아침이 되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버스를 탔다. 체하면 으레 가는 곳이 있다. 마을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손을 직접 넣어서 체한 고기를 꺼내어 치료를 해주는 민간요법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찍 나서지 않으면 아들은 오후 수업도 못 받을 수 있다. 역시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앞사람은 치료를 받고서 감탄을 자아낸다.

“햐, 속이 뻥 뚫린 거 같고마잉. 참 신기해. 고기는 며칠 전에 먹었는데 고기가 나왔다네. 아주 신통혀.”

여전히 그 마을은 다른 형태로 모두를 따라 하고 있다. 선택이란, 이미 검증된 것을 따라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 마을. 쌍팔년도에 지어진 그 마을은 지금도 여전하다.



*저희 마을에서는 ‘댁’을 ‘떡’이라고 부릅니다. 떡집에 가서 마천떡 찾지 마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녀의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