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 눈에 띄지 않을래
면소재지를 관통하는 길은 아직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았다. 버스는 지나갈 때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른 먼지를 일으킨다. 버스를 타고 인근 소도시로 나갈 때는 검정 봉지를 주머니에 넣고서 여차하면 꺼내야 할 주머니에 손을 대기한다. 운전기사 또한 핸들을 꽉 잡아야 하는 흙길, 수평을 맞추어도 지반의 성질을 모두 꿰뚫을 수 없다. 다시 울퉁불퉁, 비가 오면 두어 바가지는 부은 듯한 물 웅덩이가 생기고, 웅덩이와 버스 바퀴와 딱 맞아떨어져서 두어 바가지 물은 저만치 어슬렁 거리던 발바리에게 날아갔다.
“왈왈왈….”
운동장 조회가 있는 월요일,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마이크를 동원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아침부터 따가운 볕에 학생들은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지구가 돈다, 돌아. 픽’
월요일마다 벌어지는 지구력 테스트, 오 학년이 된 영이는 덕분에 깡마른 체구에도 꽤 단단해졌다. 하지만 달리기는 여전히 꼴등이다. 딱 중간만 하고 싶었다. 일등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뜯어봤다. 턱은 아래로 당기고 눈은 결승선을 바라보다가, 탕 소리가 나자마자 오른발을 멀리 내빼고 달린다. 버스가 지나갈 때처럼 먼지를 달고서 달리는 아이들, 먼지구름은 요란하게 다다다 움직였다.
영이가 꼴등을 피하고 싶은 이유는 하나다. 일등 못지않게 사람들 눈에 띄는 게 싫었다. 조용히 살고 싶은 영이는 그래서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하는 것도 눈에 띄지 않도록 하교 시간에 맞췄다.
“엄마, 나 우유 마실래.”
“왜? 우유가 맛있어?”
“그건 모르겠고, 고기를 안 먹어서 달리기를 못하는 거 같아서. 우유라도 먹으면 좀 낫겠지.”
그리고 5월부터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삐쩍 마른 영이는 우유를 마시고 나면 뱃속에 바람을 넣은 것처럼 팽팽해졌다. 어젯밤 엄마는 바지에 검정고무줄을 새로 끼어 넣더니만 고무줄은 팽팽한 영이 배를 눌러대니 자꾸만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이내 뱃속에서는 시냇물 소리가 난다. 졸졸졸…
‘엄마 때문이야. 고무줄을 하나만 넣지, 두 개나 넣어서는 ….’
영이는 우유가 안 맞는 줄 몰랐다. 늦게 우유를 마시고, 친구들과 앵두를 따먹으러 가던 날. 배는 팽팽해졌다. 고무줄은 처음과 달리 늘어났는데 배가 뒤틀렸다. 집을 향해 달렸다. 머릿속엔 오로지 화장실만 그린 채, 자갈돌에 발이 끼지 않도록 주의하며 달리는 영이를 본 친구들은 훗날 ‘김도사’라는 별명을 불러줬다.
앵두를 먹으러 간 며칠 동안 영이는 반복하여 화장실행 달리기를 했으니, 일부러 연습한 결과보다 월등한 실력이 쌓이고 있었다.
가을 운동회가 있을 때쯤, 영이의 달리기 실력은 ‘중간만 하자’는 소망을 이룰 수 없었다.
일등이라니…. 또 눈에 띄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