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에 볕이 모이듯
“엄마, 이번 주말에 숙제할 게 있는데 너무 어려워.”
“뭔데?”
“동시 쓰기야.”
엄마는 고개를 두어 번 까딱까딱했다. 그리고 ‘내새끼’라고 부르는 내 동생 다육이에게 걸어간다. 엊그제, 아니 지난달처럼 다육이는 여전히 오밀조밀 그대로다. 사람처럼 쓰다듬을 수는 없지만, 따뜻한 오월이 되면 엄마는 손길 대신 화분을 돌려가며 골고루 볕을 쬐어준다.
베란다로 나간 엄마는 딱 태양을 막아선 자리에 서 있었다. 저녁놀은 아주 붉어서 후줄근한 옷과 꽉 묶은 머리를 한 엄마는 까만 그림자처럼 보였다. 내가 저녁놀에 정신이 팔린 사이, 엄마가 뒤돌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앞모습인지 뒷모습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날씨가 초여름에 가까워질수록 저녁 베란다는 붉어져갔다.
“영빈아, 내일 올림픽 공원에 숙제하러 가자.”
“잉? 숙제하러 그곳까지 가야해?”
“동시를 쓰려면 경험이 필요해. 책보다 네가 직접 느끼는 게 훨씬 낫다는 엄마의 깊은 뜻을 모르겄냐?”
엄마는 무심한 편이다. 하지만 고개를 두어 번 까딱까딱하고 나면 나름의 해결책이 나온다. 그 이상은 없다. 내가 알아서 해내야한다.
“엄마, 내일 공원 갈 때 쓸 내 가방 하나만 챙겨줘!”
“어쭈구리, 제법이네? 자, 여기 있어.”
“‘어쭈구리’ 이런 말 좀 쓰지 마. 나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쓰게 되잖아. 애들이 무슨 뜻이냐고 한단 말이야.”
“어쭈구리! 누가 따라하래? 어딜 감히 엄마 말을 따라해?”
어휴, 말을 말자. 한쪽 입꼬리를 올린 얼굴로 엄마는 가방을 꺼내줬다. 야구 모자, 돋보기, 연필, 지우개, 수첩 그리고 휴대용 휴지를 가방에 넣었다.
“영빈아, 아빠랑 내일 공원에서 먹을 간식거리 사러 마트 다녀올게!”
“엄마, 그냥 근처에서 햄버거 사먹으면 안 돼? 또 당근 몽땅 넣은 김밥 먹고 싶지 않다고!”
“짜샤, 주는 대로 먹으라고.”
우리 엄마는 ‘김정은’ 같다. 내 의견은 받아주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당근 몽땅’에 엄마는 마음이 까슬까슬해져서 당근은 조금만 넣고 대신 맛살을 넣어줄 거라는 것을.
이번 주 토요일에도 늦잠은 물 건너 갔다. 이런 식으로 숙제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엄마는 김밥을 싸고 있었다. 아빠도 아침잠이 줄어서는 거실과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는 알람처럼 시끄러웠다. 정말 내 숙제 때문에 올림픽 공원에 가는 걸까, 의심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의 흥얼대는 노랫소리에 결국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올림픽 공원은 9경으로 볼만한 곳이 아홉 곳으로 나누어 있다. 그중에서 ‘나홀로나무’가 눈에 띄었다.
“엄마, 나 저기로 가볼래. 뭔가 생각이 떠오를 거 같아.”
“그래, 근처에 88호수도 있으니 엄마랑 아빠는 거기에 있을게.”
‘거 봐. 내 숙제 때문에 온 게 아니라니깐!’
가방에서 돋보기를 꺼냈다. 햇살이 회오리처럼 돋보기로 빨려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나홀로나무와 사진을 찍고 다시 들여다보느라 분주했다. 점점 해는 머리 꼭대기로 올라섰다. 그때쯤에서야 나무와 단둘이가 되었다. 돋보기로 나무 기둥을 살펴봤다. 몇 아름은 될 것 같다. 옆으로 옮겨가며 돋보기로 나무껍질을 관찰했다. 홈이 파인 데로 개미로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걸 관찰한다고 동시가 써질까. 돋보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옆으로 계속 걸어갔다.
꽈당. 별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나무 반대편에 누군가 있었나보다. 나와 키가 비슷했는지 제대로 박치기를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야아! 너어, 돌대가리냐? 아으, 진짜 아파.”
‘나만 실수한 것도 아닌데, 얘 왜 이래?’
그리고 얼굴을 바라봤다. 여자아이의 눈과 딱 마주쳤다.
“많이 아파? 미..미안해.”
아이의 동그란 갈색 눈을 바라보니 얼굴이 화끈거려서 영빈이는 ‘88호수’쪽으로 달려갔다. 엄마와 아빠는 나만 없으면 더 다정하다. 깍지까지 끼고 호수 주변을 걷고 있었다.
“엄마, 나 드디어 시상이 떠올랐어.”
나홀로 나무
넓은 잔디밭에 나무 한 그루
나홀로 나무래
혼자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가갔어
돋보기로 나무를 들여다봤어
개미떼가 줄지어 오르더라
어디까지 오르는지 올려보니 어지러워
꽝!
머리에 호박이 떨어진 줄 알았어
돋보기로 볕이 쑤욱 들어오듯
네 눈 안에 내가 보여
돋보기에 들어온 볕처럼 내 얼굴에도 볕이 들어왔나 봐
얼굴이 뜨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