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산책가 Dec 11. 2023

1. 우산 편


“토도독, 토도독, 톡톡톡, 쏴아”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는 빠르게 베란다로 향했다.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보도블록 젖은 냄새가 내 방안으로 쏙 들어왔다. 엄마가 뛰는 이유를 알지만 나는 자는 척하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아이고, 내 시키.”

엄마는 다육이를 ‘내 시키’라고 불렀다. 어쩌면 다육이는 내 동생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바로 지금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이다.

“이 새끼야, 어서 안 일어나? 학교 안 갈 거야?”

다육이나 나나 엄마에겐 ‘시키’이고 ‘새끼’이기 때문에 다육이나 나는 엄마의 자식이다. 어쩌다 내 동생은 비도 피하지 못하는 다육이가 되었을까. 빗소리는 더 거세졌다. 창문에 흐르는 물줄기 때문에 바깥 풍경이 일그러졌다. 아빠 돋보기로 보는 것처럼 세상은 어지러웠고, 어항 속 수초처럼 세상은 물속에 갇힐 것만 같았다.

 

“아빠, 나 학교에 데려다주면 안 돼?”

“아들, 10분밖에 안 걸리는 데 걸어가야지.”

“밖에 비 오잖아. 보통 비도 아니고 폭우야. 옷 다 젖는다고.”

“아들, 엄마가 들으면 우리 둘 다 혼나는 거야. 어서 학교 가.”


 

우리 엄마는 지독한 갱년기다. 유성이 엄마는 아직 사십도 안 되어서 그런가, 체험 학습 도시락 안에 캐릭터를 담아 오기도 하고, 유성이 아빠는 울퉁불퉁한 팔뚝을 드러내는 민소매 옷을 입고 다닌다. 난 엄마, 아빠의 사십 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도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긴 하다. 다만 아빠는 옷으로 숨기려고 하는 ‘울퉁불퉁’인데 더 이상 숨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 뱃살부터 붙는다고 아빠는 누누이 강조했다. 말하자면 낡은 3인용 자전거에 겨우 기름칠을 하고서 나를 태운 모양이 바로 우리 가족인 거다. 참, 자전거 장바구니에는 푹신한 신문지를 깔고 다육이를 태우겠지. 보통 늦둥이로 태어나면 아이가 원하는 거 다 들어주지 않나?


 

우산을 몸 가까이로 바짝 내렸다. 바람이 우산 안으로 들어오면 뒤집어질 수 있다. 항상 한 치수 크게 산 덕분에 작년에 신던 장화는 이제야 딱 맞다. 내게 사춘기가 오지 않는 이상, 엄마를 이길 수가 없다. 아빠도 엄마를 당해낼 수가 없다. 교문 근처에 유성이가 보인다. 역시나 아직 마흔도 안 된 유성이 엄마는 열 살이나 된 유성이를 데려다주는 중이었다. 엄마의 너른 우산에서 자기 우산을 펼쳐서 옮겨갔다.


 

“유성아, 같이 가자.”

“응, 영빈아. 너 우산 안 무거워?”

“비가 많이 오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 옷이 덜 젖지.”

“그래서 나는 엄마가 큰 우산으로 같이 쓰고 와줬어.”

‘흥, 그러면 뭐 해. 옷은 어차피 너나 나나 젖은 건 마찬가지라고.’


 

우산을 접자, 빗물은 또르르 굴러서 한참을 흘러내렸다. 우산 손잡이에는 ‘ㅇㅇ새마을금고’라고 써졌다. 레인보우 프렌즈 캐릭터가 그려진 유성이 우산에 비하면 무거워서 비가 오는 날은 아침부터 어깨가 아프다. 다행인 점은 이 우산을 누구도 가져가지 않았다. 탐 내지 않는 내 검정 우산, 이상하게도 난 이 우산이 마음에 든다.


 

하교 시간이 되었는데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유성이와 나는 같은 미술 학원을 다닌다. 보통은 하교 시간에 맞춰서 유성이 엄마는 유성이를 데리러 학교로 오는데, 오늘은 유성이가 분주하다. 레인보우 프렌즈 우산을 쫙 펼쳐든 채 나를 보고 외친다.

“야, 영빈아. 빨리 와.”

“어? 어, 그래.”

“치, 엄마가 외할머니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못 온다는 거 있지.”

“아, 할머니 아프셔?”

“그래도 나부터 챙겨줘야지. 진짜 엄마 너무해. 난 겨우 열 살인데.”

‘겨우 열 살? 난 집에 가면 다육이 동생도 챙겨야 하고, 수건은 당연히 내가 개야 하고, 아빠가 허리를 꾹 눌러놓은 치약을 엄마가 보기 전에 보기 좋게 해놓아야 하고, 물고기 밥도 내가 줘야 한다고.’


 

바람이 분다. 몸 가까이로 우산을 내렸다. 유성이 우산은 발라당 뒤집힌다. 바람이 더 세게 분다. 유성이는 우산을 놓치고 만다. ‘ㅇㅇ새마을금고’가 찍힌 큼직한 우산 안으로 유성이가 들어온다. 우산을 놓치지 않으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집에 가면 욕실 거울로 달려가서 넓어진 내 어깨를 감상해 볼까? 먼저 욕실에 걸린 수건은 반듯한 지부터 확인하고 말이다.



난 보통 열 살이 아니다. 갱년기 엄마 아래서 살아남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