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 인생의 주파수, 가을 방학과 함께
다 해진 옷처럼 나는 아침마다 늘어졌다. 늘어진 오전은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었고, 내 몸은 그것을 원하고 있으니 필요한 만큼 채워줬다. 나의 과거 병력은 나를 게으름 속으로 들여놓아도 된다며, 게으름을 풀지 못할 단단한 잠금장치가 된 채 그렇게 쭉 살아왔다.
그렇다면 지난해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난 ‘게으른 산책가’라며 외치고, 걷고 쓰는 삶으로 바뀌었을까. 블로그 이웃 글 때문이었고 그날은 2월 29일이었다. 돌봄 교사로서 2월 29일은 나에겐 누군가의 연말이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결심하기 좋은 신학기에 그 글을 읽은 건 ‘잠금장치’를 풀어줄 열쇠였다. 허리 통증이 사라졌으며 갱년기 증상도 완화된다는 이웃님의 글은 20년간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던 신랑보다 강력했다. 한달에 일주일 정도 겪는 허리 통증과 몇 년 남지 않은 예비 갱년기 여성으로서 드디어 운동화를 운동화답게 쓸 일이 시작된 것이다.
하필 3월이기‘도’ 했다. 아직은 메마른 황량함에 코끝이 발개지고 귀가 시린, 봄이 왔다는 단서는 탐정처럼 돋보기라도 가져와야 할 판. 황량한 산책길이지만 그렇게 꾸역꾸역 견뎌냈다. 내가 얼마나 운동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힘차게 오가는 산책하는 사람들과 달리 난 ‘꾸역꾸역’ 걸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걷기를 즐기는 때가 왔다. 그렇게 소리없이 온 것은 불면증이 사라지다 못해 나도 모르게 자 버리는 일이 늘었다. 어느 날은 침을 흘리도록 맛있게 자는 일, 남들이 말하는 똑 떨어져 자는 것을 나도 하고 있다니. 스르륵 잠들고, 알람보다 일찍 깨는 새로운 고리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고리를 얻기 위해서는 그 ‘꾸역꾸역’이 한몫 했으리라.
걷다가도 쉬고 싶은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오르막길은 당연히 쉬어가야 했다. 하지만 나날이 내 몸은 변하고 있었다. 작은 성취 경험은 습관을 유지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잘 자고, 버리고 싶은 고민은 내보냈다.
가을쯤이었나?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닐 때, 플레이 리스트를 검색했다. 십년 전 가을날 발매한 노래, <가을방학>의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는 그대로 가을을 흡수할 것만 같았다. 경쾌한 음악이 시키는 데로 걸음도 경쾌해져서 오르막길도 거뜬히 올랐다. 두 번째 성취 경험이었다. 윗몸 일으키기도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겨우 하던 나로선 대단한 일이었다.
자꾸만 나의 계획은 커져만 간다. 오르막이 싫어서 등산을 끔찍이 싫어했다. 이제는 자꾸만 걷고 싶다. 걷던 길도 사랑하지만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고 싶은 욕심이 늘어났다. 42kg의 체중은 쉽게 방전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충전은 쉬는 게 최선? 절대 아니다. 꾸준히 걸어보면 안다. 내 마음은 코팅돼서 쉬이 상처나지 않으며, 단단한 다리는 한계를 궁금하게 만든다.
나만 알아채는 변화에도 즐거웠다. 조금 더 일찍 할걸, 이런 후회는 필요 없다. 지금 한다는 게 중요하다.
‘내 맘속에서 살아있는 내 인생의 색깔은 제 몫의 명찰이 없어’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어딘가 있어’
내 기쁨의 명찰을 선명하게 구분하지 않을 것이다. 샛노랑, 새빨강처럼 분명하지 않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 기쁨은 주황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