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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Aug 26. 2021

헤어진 1주일 후,

굴레가 편한 때가 있었다. -회사-, 때때로 오랜 친구 만나기.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귀찮은 때가 있었다. 그런데  굴레에서 자꾸만 나를 끌어내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나를 내버려 둬요, 제발.’


그 때문에 출근하는 길이 더 길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을 피해서 돌아가는 길을 찾아냈다. 몇 년을 의식하지 않고 걷던 길 중간에는 파출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임 순경인 그는 ‘능숙하지 않게’ 들이댔다. 나는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진 않았지만, 드라마에서 연애의 시작을 배웠단 말이다. 그는 드라마와 달랐다. 깬다 깨.


초소에서 튀어나와서 갑자기 생글생글 웃으면 어쩌라는 거지. 내 얼굴은 누가 봐도 낯가림 있어 보일 텐데,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 바빴다.


작은 동네에서 순찰하는 경찰을 만나는 건,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어쩌면 내 동선으로 순찰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도 마주치는 것을 보면 그럴 것이다.


내가 만나는 동네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호주에서 일 년을 살고 온 친구는 나보다 남자에 대해 거부감이 적었다. 자유분방한 호주인의 연애 이야기는 고 카페인을 마신 아이처럼 집중할 수 있었다. 세상에나, 청소년도 그렇다는 말이지.


고명딸이 남자 잘못 만나서 딴 길로 샐까 봐, 아빠에게 세뇌교육을 받은 나는 잘 길들여져 있었는데 말이다. 그는 내 친구와도 친해지는 방법을 택했다. 경찰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나요? 주변을 포섭하라, 뭐 이따위를 가르치나요?


“이번 주말에 마이산에 갈래요?”

“아, 둘이서요? 싫은데...”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에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굴레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았다. 호기심은 굴레의 최대 적이었다.


“그러면 영숙(가명)이랑 같이 가요.”

“좋아요.”


그는 경찰이 되자마자 라노스를 뽑았다. 자연스레 조수석에는 내가 탔다. 하지만 나와 내 친구를 본다면 그와 사귀는 사람은 영숙이로 볼 것이다. 화장기 없는 나와 정성스러운 화장을 한 영숙이. 남자를 만나는 것에 호기심이 싹튼 것, 딱 그만큼으로 그를 만난 것이다.


2월의 마이산은 추웠다. 하지만 여행이란 걸 해보지 않아서인지 조금은 설렜다. 거슬리는 게 있다면, 내 손을 잡으려는 남자의 노력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산에 오르면 정상을 밟아야만 했다. 슬슬 부아가 차 올랐다. 가파른 길이 나타나면 약이 올랐다. 정상을 오르느라 배가 고파지니 말이 없어졌다. 화가 났지만 산채비빔밥은 맛있었다. 겨울날, 산채가 잔뜩 들어간 밥을 급하게 먹다니. 그게 헤어질 이유가 되었다. 연애에 서툰 남자와 연애가 귀찮은 여자는 산채 비빔밥 때문에 헤어졌다.


“우엑..... 우엑... 컥..”


난 체하고 말았다. 체기는 집에 오자마자 토를 원했다. 강제로 정상을 밟게 만든 그를 원망하며 계속 토해냈다. 그는 첫 데이트에 성공했다며 룰루랄라 했을지도 모를 그 시간에 나는 집에서 가위질을 했다. 그날 찍은 사진에서 그 사람을 모두 도려냈다.

‘왜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 끝이야.’


역시 혼자가 편했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를 걸었다. 연락하지 마세요. 아주 간단했다. 외면하면 될 일이다. 그도 알겠다고 했다. 별거 아니네.


하지만 첫날보다  둘째 날은 허전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더 그랬다. 어쩌지, 내 굴레에 균열이 생겼다. 튼튼할 줄만 알았는데. 내가 먼저 사진을 도려냈고,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어쩔 수 없어...


“우리 다시 만나면 안 돼요?”


일주일 만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겨우 일주일인데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몇 초 동안 눈알이 흔들렸다.


“그래요, 그럼.”


아, 뭐야. 호락호락한 내 태도는 뭐냐고.


그리고 우리는 주말마다 쏘다니기 시작했다. 손 잡는 게 거슬리더니 팔짱 끼는 게 쉬어지는 건 뭐야. 오, 이 남자 팔뚝 핏대 좀 보소.


삼 연뒤 , 핏대 서린 그의 팔뚝에는 갓난 딸을 걸치고 목욕을 해주고 있다. 아기는 어리바리한 엄마보다 아빠의 단단하고 너른 팔이 좋겠지.


비록 그의 입냄새를 깨닫게 되었고, 엉덩이를 들고 방귀를 뀌는 것을 보고 “공중부양하겠다, 아주.” 핀잔 같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가 질리지 않다. 같은 공간에서 아무 말이 없어도 편안한 사람 1호이다.



어젯밤, 둘째가 산 필름 카메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우리, 앨범에 사진을 채워 넣자.”

그가 한 말이다.


좋은 날들로 채운 앨범은 기억이 흐릿해질 때 꺼내어 보면 코끝 시린 날이 되겠지. 도려낸 사진은 이제 없을 거예요, 정순경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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