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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Aug 28. 2021

여덟살이 답한 이슬,

경험에서 얻은 답

그날 국어 수업은 날씨에 대한 단어 풀이로 시작했다.

“이슬이 뭘까?”

여덟 살 꼬마는 한참을 고민했다. 곁에 있던 똘똘한 4학년 누나는 입이 근질근질한 지 입이 들썩거린다. 나와 눈이 마주친 누나에게 ‘쉿’하라고 눈빛을 보내니, 이내 누나 입은 얌전해졌다.


오가며 풀잎에서 봐왔을 그것을 아이는 알지 못했다.  하긴 워낙 활동성이 좋아서, 미처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 뭐. 그렇게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순간 아이는 답을 찾았다는 듯, 눈빛에 빛을 발했다.

“슈울, 슈울이요.”

 아직도 막내 티가 줄줄 흐르는 아이는 ‘술’이라고 야무지게 발음하지 못했다. ‘슈울’이 이슬이라며 겨우 대답했다.


이 아이의 집은 음식점을 운영한다. 조부모님, 백부 가족, 그리고 아이 가족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다. 가족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 아이들은 모두 예의도 바르고 어린 나이에도 어른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도 남다르다. 집에 귤이 있으면 하나를 가져와서 일일이 껍질을 벗긴 후, 학습지 교사인 내게 먼저 나눠주고 자신들이 귤을 먹는다. 사촌 지간에도 사이가 좋은 이 집은 내가 본 가정 중,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그런 아이 입에서 이슬은 술이라는 답을 들었다. 난 진지한 아이 눈을 보고 웃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진지해서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본 여덟 살은 일부러 장난치려고 엉뚱한 답을 말하는데, 이 아이는 심사숙고한 뒤에 내놓은 답이 술이니 어찌 웃음을 참겠는가.


난 아이를 이해한다. 이슬을 모르는 게 어때,라고 토닥토닥할 수 있다. 그건 나를 향한 토닥임이다. 20대 때, 어른이라고 부름을 받기 시작한 때다. 하지만 내 영혼은 느려 터져서 10대 머물러 있었다. 새롭게 만난 20대 또래나 두어 살 많은 연상과 대화를 할라치면 너무 어색했다. 어른의 세계에서 쓰는 진지한 대화를 난 알지 못했다. 끄덕일 수도 없었다. 점점 걱정이 들었다.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말수가 적다고 느낀 건, 그런 데에서 시작되었다. 낄 수 없는 사회생활 능력치, 난 너무 어렸다. 나이보다 어린 내 정신세계가 20대에서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과 더불어 내 미니어처를 갖게 됨으로써 나는 변했다. 문서 압축 파일을 해제한 것처럼 나는 말이 많아졌다. 뻔뻔한 것도 같고, 오지랖이 넓어진 것도 같고. 설마설마 난 보편적인 한국의 ‘아줌마’가 된 건가?


난 그래도 좋다. 뻔뻔하고 오지랖이 넓어진 한국형 ‘아줌마’가 된 것이.


이슬이 술이라고 말한 여덟 살, 난 네가 부럽다. 나처럼 입 안에서만 오물거리지 않는 네가 참말로 부럽다.



아침부터 주절주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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