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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Aug 27. 2021

바람 잘 드는 부엌에서


7 53, 조금 전에 버스 타러 나간 둘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하늘이 예뻐서 전화했어.’ 이런 일로 전화할 일은 절대 없다. 뭔가 불길하다.

“엄마, 도시락을 두고 왔어. 버스는 아직 안 왔어.”

두 가지를 알려주고 있다. 도시락을 들고 빨리 뛰어나오라는 거,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남원까지 데려다주는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

‘이런, 제길.’


 

설거지를 마치고 가장 바람이 잘 드나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고 있었다. 바람이 잘 드나드는 곳이 거실이나 안방이면 좋으련만, 하필 부엌이다. 작은 평수의 집인데 부엌에 얼마나 평수를 할애했겠는가. 수납장에 등을 기대고 오늘 쓸 글의 제목을 타자 치고 있을 때, 전화가 왔으니 단거리 선수처럼 도시락을 들고 뛰쳐나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둘째는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우아, 엄마 진짜 빠르네. 흐흐흐..”

핸드폰을 만지작대는 딸에게 난 소리쳤다.

“야, 사진 찍지 마.”


 

 운동신경이 둔하다. 철봉 매달리기는 0초로 지구력도 없다. 어쩌면 힘든 것에 애쓰려 하지 않았을 거다.  저렇게 힘든 것에 이를 악물고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25살이 되고, 다른 것이 내게 있음을 발견했다. 책임감이다.  아이는 나만 바라보는지,  생명체에 비하면 훨씬 우월한 위치에 내가 있지만,  아이 아래에서 빌빌댔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줄  엄마도 없는데  이미 알고 있다는 ,  눈곱은  떼도 아이 머리는 곱게 땋아주는 엄마가 됐다. 그때 ‘엄마 본능’을  죽이고 나를  세울  있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주름은 지금보다 적겠지?


 

첫째가 스물한 살이니, 우리 부부가 만들던 울타리는 이제 아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다. 여전히 나를 도시락 들고뛰게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낡은 울타리는 걷어내고 꽃이 피는 나무를 울타리 삼아 심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그 울타리가 보인다. 울타리 안에서 나는 쉴 수 있다. 그 속에서 글도 쓴다. 애들이 만든 울타리 설계도가 마음에 들어서 지금이 좋다.


 

아침 시간,  앞에 있는 냇가 옆을 걸었다. 바람이 좋았다. 바람결만 느끼면 되는 순간이 좋았을 것이다. 쭈그린 ,  기분을 기록으로 남겼다. 나에게 집중하는 지금, 오늘도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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