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저장할 테야
벌써 수요일이다. 그니까 그 말을 들은 지도 이틀 지났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멍 때리는 귀한 시간에 종종 꺼내어 음미한다. 즐기는 간식보다 더 천천히 맛을 본다.
올해 맡은 2학년은 고작 일곱 명이다. 그럼에도 문제가 많아 보였다. 나와 소통이 안 되는 것도 같고, 자기들끼리 웃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이제야 아이들과 소통이란 ‘도로’가 뚫렸는데, 내년이면 주 2회 정도만 한 시간씩만 볼 수 있다.
“선생님, 제 배를 더 멋지게 꾸미고 싶어요. 선생님이랑 같이 만들어봐요.”
혁이는 1학기 내내 나에게 그림 그리기를 시켜서 내 눈알을 사팔뜨기로 만든 장본인이다. 잠잠하더니 레고 배를 더 꾸미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 집엔 아들이 없어서 레고에는 자신이 없지만, 하다 보면 집중하게 되고, 아이들이 말없이 레고를 하는지 알게 된다.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원하는 레고 조각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 다른 생각이 삐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배 안에 무기고와 운전석을 더 만들었다. 혁이는 내가 만든 것을 건들지 않았다. 만족한다는 뜻이다.
“혁아, 나랑 네 배에 있는 거 레고 하나 바꾸자. 네가 갖고 싶던 거 줄게.”
뭔가를 만들다가 원하는 레고 조각이 혁이에게 있었는지 윤이의 부탁은 간곡했다. 하지만 혁이는 단호했다. 그야말로 ‘거두절미’ 거절이었다.
“싫어! 선생님이 만들어준 거 건들지 마. 얼마나 열심히 만들어주셨는데.”
아이들이 사용한 컵을 씻다가 나는 혁이의 문장을 내 가슴에 모셔왔다. 두고두고 음미할 문장이다. 책에서 읽은 문장보다 더 갖고 싶은 말이다.
자신의 부탁에 대충 시늉만 냈다면, 아이는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난 순간을 즐길 뿐이었는데, 아이는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준 선생님으로 기억해줬다.
몸을 숙이고, 아이 눈을 마주치면 아이들은 눈을 더 반짝여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 아이들의 2학년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