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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Nov 08. 2021

달아나는 아이에게





남편이 화분에서 키운 방울토마토. 무심하게 씨를 뿌려둔 게 이렇게 맺혔으니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키워내는 과정이 모두 무심하지는 않았지. 늘 들여다보고 챙겼으니 참 살가운 주인이었다.



아이들은 방울토마토가 맺혔을 때부터 매일 달라지는 토마토 색깔을 확인하며 더 붉어지면 먹겠다고 키득거렸다. 그러다 며칠 전 톡, 하고 거실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아이들은 토마토를 주워 내게 달려왔다. 나는 첫 알이 떨어졌을 때는 같이 즐거워했지만 두 번째 알부터는 으응 그래애, 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이들의 섬세함을 따르지 못해 미안할 때가 많다.    아직 토마토 몇 알로 이리도 즐거운 아이들인데 나는 너무 멀리 있다. 그런데 이 이상 무엇을 하기는 어려워서 그 마음이 늘 그 자리에 머문다. 그 맴도는 마음을 더 이상 모른 체하면 안된댔는데 여전히 한 걸음 더디다. 방울토마토만의 일은 아니다.



큰아이는 언제나 빠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감정이   언제나 재빠르다. 빠르게 올라가고 빠르게 내려온다. 흔히들 감정 기복이 심하다거나 업 앤 다운이 있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아이의 감정이 재빠르다고 표현하는 편이다. 아이의 감정은 그 자체로서 역동성을 갖고 있다. '감정'은 명사이지만 그 두 글자가 가리키는 것은 어떤 동사보다 더 살아서 날뛴다.



꼭 방울토마토만의 일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아이의 마음을,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날은 꽤 자주 있다. 나와 같은 시공간에 있는 동안 아이의 감정은 종종 한달음에 저만치 달려간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나를 다시 지나쳐 제자리로 휙, 정말 휙, 날아온다.



나는 아직 영글지 못한 서툰 어른이라 아이의 그 감정을 좇다가 자주 지친다. 방금까지 내 품에 안겼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고 그러다 다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내 마음이 너그러운 날에는 그 전환이 귀엽기만 하고, 내가 일에 치여 있을 때는 그 전환이 버겁다. 한바탕 전쟁을 하다가 혼자 시익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아이를 안아주지 못할 때, 망설이고 있는 나를 마주할 때 나는 조금 쓸쓸하다.



나로부터 멀찍이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와 히죽거리는 아이를 보며 왜 나는 너와 매 순간 같이 달려줄 수 없는지, 나는 너의 엄마인데 왜 네 전환을 버거워하며 더 뾰족한 각을 세워야 하는지 생각한다. 으레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스스로를 원망하며 끝나는 이 반복되는 물음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



무심하게 뿌린 씨앗으로부터 붉은 방울토마토가 맺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괜히 생각해본다. 툭, 떨어져 굴러 나온 방울토마토로부터 아이의 시간을 생각한다. 자꾸만 달아났다가 또 고무줄처럼 빠르게 튕겨 돌아오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괜히 코가 아리다.



 아직 어린데  나는 자꾸 겁이 날까. 너의 속도와 방향이 어떻든 그저 우리 사이에 끝없이 늘어나는     고무줄이 있다면, 그래서 언제고  돌아와 다시 만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마음이 조금 가벼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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