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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Dec 13. 2021

9살이 7살에게 보낸 편지




어제 작은아이가 아빠와 투닥거리다 삐쳐서 자기 침대 에 앉아 식식거리고 있었다. 아빠와 알콩달콩 연애하듯 지내는 작은아이는 아빠에게 단단히 삐쳤는지 엄마인 내가 가서 달래도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잠깐 혼자 마음을 달래게 두었는데 그 사이 큰아이가 후다닥, 작은아이에게 무언가 전해주고 왔다. 방에서 나오는 큰아이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밝았다. 되게 뿌듯해 보이고 기뻐 보였다. 동생이 삐쳤는데 형은 왜 즐거운 것일까 생각하며 남은 라면 면발을 무심하게 당겼다.



얼마 뒤 작은아이가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거실에 당시 웅크리고 앉았다. 그러다가 곧 아빠에게 다가와 아빠를 슬쩍 민다. 저 귀여운 화해의 재스춰.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때, 가만히 있던 큰아이도 식 웃는다. 그러고는 내게 흰 종이를 내밀었다.



엄마, 내가 이런 편지를 써줬거든.
그래서 이제 좀 마음이 풀렸을 거야.
내가 위로해줬어.



 그래? 하며 아이가  종이를 받아 들었다. 아이 종이에는 이렇게나 귀엽고 기특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




동생에게
동생아 많이 슬프지?
나도 그 마음 잘 알아.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마음을 잘 이겨내는 거야.
동생아, 근데 그 일이 쉬운 건 아니야!
그래도 화이팅!
-형아가



이게 9살이 7살에게 보낸 편지라니. 정말 감동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라면 냄새를 뚫고 칭찬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정말 매일매일 얼마나 열심히 자라고 있었니. 그 아득한 시간들이 일순간 확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가 혼자 생각하여 눌러쓴 글자들 속에서 나는 아이가 자라난 그 시간들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이 기특한 글자들. 생각들. 말들. 이러니 나는 글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아들에게도 지지만 글에게도 진다. 그러니 아들이 쓴 글에는 버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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