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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Mar 09. 2022

엄마, 내 이름이 지워질 때 너무 슬펐어.




큰아이 학급 회장 선거가 있었다. 3학년이 되어 처음 겪는 일이다. 객관적으로 큰아이는 "인싸"가 아니다. 하지만 큰아이는 회장 선거에 나가고 싶어 했다. 상처받을  같아 말리고 싶었지만 혼자 연설문을 써서 연습까지 했다.



선거에는 누구나 나갈 수 있고 출마하고 싶은 사람은 대통령처럼 공약을 준비해 오라고 했단다. 떨어져도 되는데 나가보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기특했다. 좋은 경험이라고 정말 멋지다고 칭찬했다. 떨어질 것 같아서 그저 마음만 크게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결과는 생각보다 더 슬펐다. 출마자가 많아서 담임은 거수로 사전투표를 진행했다고 한다. 출마를 원하는 아이의 이름을 칠판에 적고 가능성이 낮은 학생을 1차로 걸러낸 모양이다. 아이는 거기서부터 걸러졌다. 칠판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당연히 준비한 연설도 못했다. 아예 후보자 등록도 안된 셈이다. 등굣길, 손바닥에 땀이 난다고 걱정하면서도 즐거워하던 아이다. 집에 돌아와 꺼이꺼이 울었다.


원래대로면 내가 집에 없을 시간인데, 2주 간 비대면 수업으로 바뀌어 갑자기 집에서 수업을 하게 된 날이다. 이런 아픔을 안고 온 아이가 집에 나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찔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내 마음도 슬프고 속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혼자 견뎠을 아이의 시간만큼은 아니니까 마음을 감추었다. 속상했겠다 하며 아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아이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

얼마 후 동생과 터덜터덜 피아노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은 슬펐지만 아이는 피아노를 치며 기분이 나아져 돌아올 것 같았다. 아이가 돌아오면 나는 또 수업을 하고 있을 터. 현관 중문에 응원 메시지를 붙여 두었다.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잠시 머무는 느낌이 났다. 아이를 슬쩍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동생도 형아가 기분이 좋아졌다고 내게 넌지시 알려주었다.




아이는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아무 것도 못해봐서 슬펐어. 떨어져도 되는데 내가 준비한 발표도 못한 게 너무 아쉬워. 내가 열심히 준비한 것도 못 보여주다니. 내 생각도 좋았는데 애들이 들을 수 없었잖아. 아무것도 못하고 칠판에서 이름이 지워질 때 정말 너무 속상했어. 엄마."


​​​


아이가 만날 세상은 날마다 이럴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이지, 잘 알고 있다. 이런 날들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게 그저 태어나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일이라면... 나는 미안할 뿐이다. 어쩌면 후딱 커서 마음이 조금은 딱딱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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