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밤 10시면 학원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옛날부터 그랬다. 동네 유명학원이 학원가 블럭에서 빠져나와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은 어쩌면 또 새로운 학원가가 될지도 모르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대낮같이 밝은 밤 10시. 횡단보도마다 서있던 차량 안내자들. 마치 아침 등굣길처럼 교통 깃발을 들고 아이들을 인솔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 끼어서 고기 냄새 풍기며 허쉬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었다. 어떻게 다른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는 분명히 다른 색이었다. 애들 아빠는 몇 년 뒤에 너희들 모습이라고 했고 나는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각자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본다. 정답이 없는데 정답이 없어서 다 그렇게 산다. 멀지 않은 그 시간이 숨 막힌다. 아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생각해보자. 괜히 혼자 목을 가다듬는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는 밀린 일을 꺼냈다. 정오답을 채점하는 이 일은 지루하다. 틀린 답을 정성껏 적어내려간 그 시간들도 애탄다. 그러다 자정을 넘겼다. 한참 남은 시험지보다 열어둔 창 사이로 들리는 소리에 마음이 멈춘다. 고요한 가운데 더 요란하게 들리는 택배차 소리. 아마 나도 애용하는 그곳이겠지. 그 각각의 새벽 배송. 이쯤되면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는 말도 거짓말이다. "모두"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몇 해 전, 잠시 동대문을 들락거리던 때 그때의 그 밤공기는 잊을 수 없다. 아무도 잠들지 않은 시간이었다. 적어도 거기선 그랬다. 그리고 또 나와 남편은 거기서도 다른 색깔이었다. 암만 흉내 내도 되지 않는, 그 색깔.
무엇이 되고 싶다 내지는 어떤 색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온전한 나였으면 좋겠는데 살수록 그것은 어렵다. 하물며 내 아이에게는 어떨까. 매일 다사다난한 아이의 삶에 무엇을 기약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일단 내빼기로 한다. 자꾸 내빼다 보면 그 길이 어딘가로 가닿지 않을까 생각한다. 꽉 막힌 마음을 잊고 사는 척 하지만 사실 뚫릴 새가 없어. 그냥 내빼자 우리. 그럼 뭐가 되겠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