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대학 온라인 강의 시대의 어디쯤
나는 세 학교에 출강하고 있는 시간강사다. 비교적 젊은 강사에 속하면서 동시에 혈관까지 문과스러운 사람. 이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사실 온라인 개강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교강사들이 적지 않았고 나도 그 중 한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젊지만 완전한 문과형 인간에게 기술에 대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실제로도 대학 온라인 강의 시대가 열리면서 모두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온라인 개강을 한 이후 각 학교는 여러 방식의 수업을 제안했고 교강사가 선택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강의자료는 어떤 방식이든 필수로 제공해야 하고 녹음이나 동영상, 그리고 실시간 화상강의가 주된 방식이었다.
나는 집에 짐승 같은 아들 둘을 끼고 있는 관계로 실시간 화상강의는 어려워서 줄곧 녹음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순차적으로 개강을 한 학교들 덕분에 숨 가쁘지 않게 하나씩 해나갔다. 과거형이다.
출강하는 학교 중 한 학교가 무조건 실시간 화상강의만 허용하면서 내겐 약간의 변수가 생긴 것이다. 강의를 두려워하는 편은 절대 아닌데 실시간 화상강의란 말은 왠지 버거웠다. 게다가 짐승 같은 아이들이 늘 함께 있으니 그것도 걸렸다. 심지어 6시간 연강. 일단 아이들과 떨어지는 게 우선이어서 아이들은 친정으로 갔다. 도저히 한 공간에서는 수업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지난 3주 간 음성으로만 진행하던 나는 계속 긴장이 되었다. 물론 개강 전에 교강사들은 리허설 삼아 실시간 화상강의 프로그램으로 회의를 하며 프로그램에 대해 서로 공유했고 학교에서는 여러 매뉴얼을 제공했다. 출강하는 학교 중에 시스템이나 교육연구나 여러 면에서 수업하는 데 만족도가 높았던 학교였기에 내 입장에서는 감사했다.
그 연습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모바일과 노트북을 번갈아만지며 연습을 했다. 학생들에게 어떤 환경이 나을지 이것저것을 눌러보았고 온라인 강의이지만 그래도 직강 못지않은 수업을 전달하고 싶어 수정할 것을 고르고 자료를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수업이 바로 어제, 금요일에 있었다.
자, 그럼 강사 입장에서 보는 실시간 화상강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괜찮은 방식이었다. 이 학교는 Webex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나는 먼저 수업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학생들의 오디오와 비디오를 모두 끄게 했다. 20분 전에 미리 접속하고 콘텐츠 공유를 통해 피피티를 먼저 띄워 두었다. 거기에는 간단한 인사말과 오디오/비디오 설정을 OFF로 해달라는 안내 멘트를 써두었다. 물론 웹엑스 미팅의 호스트는 전체 음소거를 설정할 수 있다. 다만 참가자인 학생들이 스스로 활성화 버튼을 누를 수 있고 호스트가 비디오 제어는 할 수 없는 여러 변수를 고려해 학생들에게 세팅을 당부했다.
나는? 오디오만 활성화, 비디오는 껐다. 사실 리허설로 화상회의를 하면서 느낀 점은 그 작은 화면에서 아이컨택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나 하는 점,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집중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고지하고 일단 어제는 피피티와 오디오만 활성화한 상태로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이게 녹화랑 무슨 차이지? 하며 갑자기 회의감이 들 뻔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통창이 있으니 바로 채팅창. 이게 생각보다 수업에 좋은 영향을 끼쳤고 실제로 내 예상보다 활용도가 높았다.
일단 출석은 각자 학번과 이름을 채팅창에 쓰고 내가 미팅 종료 시 채팅창을 저장하여 체크하는 방식을 썼다. 강의 오티 후 질의응답 역시 채팅창으로 받았다. 재미있는 게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오티 때 질문이 나와봐야 1-2개인데, 채팅창을 이용하니 기대보다 많은 질문들을 해줬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내가 온라인 강의의 장점을 짐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이 오히려 부담 없이 수업에 임하고 질문도 던질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전날 텍스트를 미리 공유하며 수업 중에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수업 중에 각자 텍스트를 읽고 의미 있는 문장 선택이나 요약 등을 바로 채팅창에 띄우게 하니 이 역시 좋았다. 채팅창은 전체 공개나 비공개로 한 개인, 즉 교수자만 보게 보낼 수 있으니 역시 부담이 없다.
수업 후 개인활동과제는 강의 끝나고 작성해서 바로 사이버캠퍼스 과제 게시판에 올리도록 했다. 이것도 좋았던 게 오프라인 수업 중에 쓰라고 할 때보다 학생들이 더 길게, 더 의미 있게 내용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아마 손글씨보다 자판에 익숙한 학생들이 쓰는 데 더 편안함을 느껴서 생긴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이 장점이 유효하려면 수업의 질이 보장되어야 한다. 오프라인 수업에서와 같은 강의력, 더 효과적인 수업자료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수업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할 것이다. 독주나 독백이 아니라 온라인이라는 구조 속에서 대화의 방법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약속했다. 여러모로 힘들겠지만, 그리고 대부분 신입생인 수업이라 더더욱 마음이 쓰이지만 온라인 강의에서도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강의가 끝나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문득 궁금했다. 이 방식들이 학생들에게도 좋을까? 고민해봐야 답은 안 나오니 네이버 오피스로 설문지 폼을 만들었다. 그리고 단체문자로 우리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설문 참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나 둘 들어오는 설문 결과를 보니 지금 같은 방식을 계속 적용하고 활용하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아래는 수업 환경에 대한 몇 가지 객관식 질문에 이어 마지막으로 수업 진행 건의/제안에 대해 주관식으로 물어본 설문지의 일부 결과다. 그냥, 기억하고 이번 학기 또 잘 살아내려고 살포시 캡처. :)
그리고 오늘 나는,
인간은 사고가 가능한 동물이고, 주어진 환경을 활용하며 적응해나갈 수 있는 동물이라는 그 뻔한 명제를 자주 떠올렸다.
매일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절대, 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가변성이 높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절대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그 상황에 맞춰, 혹은 좀 더 이르게 그리고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로울 수 있도록 살아가는 거지.
결국 우리는
단언할 것도 내칠 것도 좋아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저 그런 날들 속에서
다시 균형을 잡으며
충실히 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