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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Sep 02. 2020

이렇게 혼내도 될까 싶은데,




요즘 같은 나날, 길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어른 사람을 마주칠 때면 잠깐이지만 눈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어차피 보이는 것은 눈밖에 없는데, 그 두 눈이 보통 때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으니 무언의 위로라도 주고받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든다.



오늘은 내 실시간 수업이 6시간, 거기다 두 아들을 데리고 있어야 했다. 끼니마다 밥 먹이고 간식 먹이는 것도 모자라 큰아이는 그 중간에 학원 실시간 수업까지 있었다. 이 모든 게 가능할까 생각했지만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나. 설상가상으로 며칠 전부터 흔들리던 큰아이 이빨이 오늘은 정말 빠질 것 같았고 그 이빨은 특수한 상황인지라 병원을 꼭 가야만 했다. 아침부터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계획하고 있던 나는 이미 눈을 뜰 때부터 지쳐있었다.



아마 그래서 나의 화가 더 쉽게 일어났을 것이다. 평소보다 화를 내는 시간도 일렀고 화의 강도도 셌다. EBS 수업이 시작되어도 멀뚱거리던 아들은 지난밤 모기 뜯긴 자리에 붙여둔 패치를 아무 이유 없이 떼내더니 다시 간지럽다고 아침부터 온몸의 짜증을 끌어모아 내게 부렸다. 이가 흔들린다고 짜증을 냈고 병원을 예약한 내게 그 병원은 무섭다고 또 울면서 으르렁거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키즈치과였다. 아이는 그 인근 다른 치과와 헷갈렸던 것인데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무작정 짜증만 부렸다. 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을 해보려던 나는 그냥 멈췄다. 그리고 곧바로 되받아쳤다.



나는 아이가 부린 짜증의 몇 배는 될 강도로 아이를 몰아세웠고 텔레비전을 껐다. 끝까지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아들을 모른 척했다. 바닥에는 리모컨이 내동댕이 쳐져 있었고 꿈뻑꿈뻑 둘째만 내 눈치를 보며 유치원 원격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여전히 한 번 더 숨을 고르지 못한 내 탓일까.



글쎄. 그 순간만큼은 내 탓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모기가 또 있을까 새벽에 한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휴대폰 불빛으로 아이 몸을, 방을 뒤적거렸다. 그러고는 곧 이른 기상을 하는 아들이 일어났고 아들은 몸을 긁적였다. 나는 너무 피곤했지만 겨우 일어나 겨우 눈을 떠 모기 패치를 찾아 붙였다. 그렇게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온몸에 붙은 패치를 살곰 살곰 떼냈고 금세 괴로워졌고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일순간 지난밤부터의 피곤과 오늘 있을 피곤이 훅 밀려왔다. 자기가 벌여놓은 일을 내게 쏟아붓는 아이가 힘들었다. 이빨도 치과도 다 그랬다. 당장 치과를 가고 싶다고도 했던가. 엄마 오늘 수업이야, 라는 말에 그럼 어떡해!라고 소리도 질렀던가.



꼬맹이 같은 놈과 지나치게 투닥거리고 있는 상황에 나는 질려버렸다. 그 모든 장면이 다 나를 갉아먹었다. 또 자괴감이 들었다. 대체 너는 왜 자꾸 내 바닥을 보게 하는가, 달래지지 않는 마음이 날 가득 채웠다. 그러나 밥을 먹여야 했고 내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어떤 틈도 없이 우리는 또다시 살을 댔다.



나보다 빠르게 달아나는 아들은 이번에도 그랬다. 나와 한바탕 하고 뒤돌자마자, 아이는 동생에게 이상한 동물소리를 내며 낄낄거렸다. 그럴 수 있는 아이의 회복력이 놀라웠다. 놀라웠다고 쓰지만 당시에는 정말 보기 힘들었다. 대체 왜, 매번 이래야 하는지 물으며 나는 나를 또 갉았다.



아이와 이런 시간을 보내며 이렇게 혼내도 되는 걸까, 이런 공격적인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가져오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자라지 않았는데 이 아이는 왜 이렇게 키우고 있는가 또 물었다. 수업을 듣는 아이, 인형을 안고 사과를 우걱거리는 아이, 내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모기 물린 피부를 뜯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정말 기가 빨렸다. 더 이상 내가 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내게 안긴다. 안아달라 고 말하고 치과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무릎을 베고 눕는다. 그렇게 혼나고도 너는 내가 좋구나. 너에게 엄마는 무엇이며 누구일까. 어떤 의미이길래 자꾸만 도망치려는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는가. 대체 우리의 관계는 무엇일까.



길쭉한 다리를 뻗고 침 흘리며 자는 아들을 들여다보며 할 말 없는 입만 달짝거린다.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걸까 하는 의심들. 처음이라서, 첫아이라서 늘 어려운 내 마음들. 언제나 부대끼는 그 마음들을 나는 오늘도 모른 척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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