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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Dec 02. 2020

아이를 인정하기 전에 나를 인정해야 했다.




아이와 함께하며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나를 너무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생경한 아이를 돌보며 나는 그동안 마주한 적 없는 나를 자꾸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했다. 어쩌면 내게는 아이보다, 민낯의 나 자신이 더 낯선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 대해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만했던 날들이 부끄럽다. 날마다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고 그때마다 예상치 못한 감정에 휩싸이며 또 부대낀다. 내가 얼마나 오해로 가득 찬 인간인가.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9월 중순이 지나며 초1 아들은 드디어 학교를 매일 가기 시작했다. 아직 운동장에 발을 디딘 적도 없고 교실에서 오카리나를 불어본 적도 없지만 아이는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공부를 하고 친구를 사귀고 밥을 먹는다.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일을 몰아서 겪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나도 9월부터 또 달라진 일상을 살아냈다. 날마다 새로 보는 사람들, 낯선 책가방과 알림장,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그 애매한 그 온도들. 엄마. 엄마들. 나 역시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일을 몰아서 겪었다.



중앙현관, 정문, 후문같이 내게는 너무 당연한 말들을 아이에게 풀어 설명해야 했고 급식실에서 젓가락질을 잘하는지, 밥을 쏟지는 않는지 염려해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와 학교에서의 아이를 날마다 저울질하며 그런 마음으로 지내야 했다. 동시에 나라는 존재에 붙은 수많은 수식을 스스로 명료하게 만들어야 했다. 어떨 땐 말이 부족했고 어떨 땐 말이 넘쳤다. 내 삶을 말로써 설명하는 게 익숙지 않아 체한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모두 처음치고 열심히, 빠르게 적응을 해나갔다. 물론 이제는 이마저도 과거형이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아이의 등교는 다시 주2회로 바뀌었다. 당분간 급식은 먹지 않기로 했고 같은 반 친구들은 절반만 볼 수 있다. 갑자기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어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반납하지 못했다. 연체. 우리의 날들도 그렇다.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그 책처럼 우리의 날들도 그렇다. 이 연체된 날들을 우리는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



아이의 학교생활을 시작으로 나는 이제 막, 나의 면면을 인정한 후에 아이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는 다시 제자리다. 새로운 세상에서 그 애매한 온도를 견디며 하나씩 다시 깨치던 내가, 우리가 다시 집안으로 몰아졌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날들이다. 다음이 있기는 할까. 추운 겨울이 왔다. 공기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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