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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Sep 13. 2020

내 일상이 죄스러울 때






살면서 괴로운 날은 생각보다 잦지만 내 일상이 죄스러울 때, 그때는 정말 말이 모자랄 정도로 괴롭다. 나의 이 평온한 아침, 혹은 전쟁 같은 하루, 셋까지 숫자를 세며 아이를 보채거나 아이가 짓는 찰나의 표정에 흠뻑 취해있거나 하는 일상들. 밀린 수업 준비를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다 식은 커피를 마시고 딱딱해진 맛탕을 씹으며 당신 이빨은 깨질지도 모른다고 웃고 떠드는 나의 평범한 날들이 죄스러워질 때. 그럴 때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인 것은 아니다. 또 우리는 각기 다른 시간을 살지만 계속 다른 삶은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삶을 살아내며 알게 모르게 많은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 관계의 고리는 단단하게 채워진다. 남남인 우리는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고 아끼고 종종 잊었다 다시 떠올린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빈 시간들을 몇 시간 안에 응축하고 또다시 녹여내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헤아린다. 애써 이해하려고 몸부림을 치며 서로 간의 거리를 차차 메운다.



물론 모든 관계가 이런 것은 아니다. 낯가림이 있는 내게 타인은 언제나 조금 불편하고 그래서 그 거리감을 좁히는 데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일까. 천천히 그 시간들을 함께 해낸 몇 안 되는 사람들은 특별히 귀하다. 각기 바쁜 일상 속에서 서로를 살뜰하게 챙겨주고 기억해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서 더더욱 그렇다.



내가 오랫동안 마음으로 의지하던 분께 아픈 일이 생겼다. 나는 그 일의 아픔을 짐작하는 것조차 죄스럽다. 안부를 묻는 것도 할 수 없을 그 큰일 앞에서 나는 몇 번을 주저하고 망설이고 다독였다.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시간들. 일 년 가까이 그러한 시간을 보내는 분과 드문드문 연락을 나눴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좋은 소식을 나눌 것이라는 다짐 속에서 그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러나 얼마 전 수화기 너머로, 메시지 너머로 오는 먹먹한 이야기들에 나는 먹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밥을 먹다 말고 돌아다니는 애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의 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뻔한 아침이 죄스럽고 또 죄스러웠다. 나 혼자 이런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게 미안해졌다. 아마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랬겠지. 도무지 그 삶을 위로할 방법이 없어서. 그래서 그랬을 거다.



우리 모두 조금 나은 날이 오기를 바랐지만 아마 그 희망은 빛을 잃어가는 듯하다. 어떤 말도, 위로도 무색해질 시간이라는 걸 알아서 함께 할 말도 잃는다. 타인의 삶으로 내 삶을 위로하고 내 삶에서 감사함을 찾는 것. 그것은 언제나 내게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왜 타인의 귀한 삶을 그렇게 다루어야 하나 늘 궁금했고 싫었다. 나는 타인의 삶으로부터 나를, 누구를, 위로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의 그 절절한 순간들을 보며 내 삶을 미안해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위로도 안부도 감사도 기도도 모두 원점으로 돌아간다.



일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자꾸 훅, 떠오르는 순간들에 갑자기 멍해지고 갑자기 먹먹해진다. 내 일이 아니면서 내 일인 그 어중간함들. 그래서 더 울적하고 때때로 더 죄스러워지는 마음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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