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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Jan 06. 2021

딸을 잃은 언니에게




활짝 웃는 예쁜 사진이 왜 거기 놓여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예견된 죽음과 갑작스러운 죽음 중에 무엇이 조금이라도 나은가 혼자 생각했던 제가 가소롭습니다.


그 예쁜 사진은 지난밤 꿈에도 나왔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꿈이었는지 잠시 헤맸네요. 지난밤 내가 다녀온 곳이 어디었나, 마스크 안으로 흘러드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꺽꺽 어깨를 들썩이던 나는 꿈속이었나... 생각했어요.


주차장을 걸어 막 빈소로 들어간 제 손은 너무 차가웠는데 야윈 언니의 손은 온기가 가득하더라고요. 위로를 할 사람은 저인데, 제가 내밀 것은 차가운 손뿐이라 마음이 저렸어요. 어떤 말도 찾지 못하고 헤매던 저를 언니가 더 도닥여준 것 같습니다.


한국 나이로 스물여덟. 덤으로 나이를 먹는 한국 나이를 무시하면 사실은 스물여섯. 종종 같이 만나면 언니는 웃으며 딸에게 말했죠. 이 언니처럼 결혼도 빨리 하고 졸업도 빨리 해. 재작년부터 아팠던 언니의 아이를 보며, 이런 날을 상상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그 말도 대수롭지 않았어요. 그런데 작년 중반부터는 그 말이 저를 감싸더라고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언니가, 아이가 생각났어요. 일상 같던 그 말을 삼키며 슬퍼졌어요. 제 아이들과 살아내는 일상이 죄스러웠고 제 아이들과 투닥거리다 멈칫거렸어요. 슬픔은 일상 도처에 널려 있더라고요. 저는 생각보다 꽤 자주 언니를, 아이를 내 일상에 놓았어요.

그 슬픔을 그 어떤 말로도 덜어낼 자신은 정말 없어요.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운 순간들을 세 치 혀로 건드릴 생각도 없고요. 그렇지만 언니에게 할 수 있는 건 말뿐이네요. 차가운 손을 건네고 언니의 작아진 몸을 안으면서도 제가 그 어떤 온기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했어요. 마음만으로 되는 게 없다는 걸 뼈가 시리게 느꼈네요.


그래도 언니.


아이는 따뜻하고 넓은 부모와 오빠를 만났고 그 안에서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리고 갔을 거라는 말을 붙여요. 아이를 볼 때마다 티 없이 맑은 아이라는 생각을 꽤 자주 했어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런 아이를 길러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는 좀 알 것 같거든요. 아이를 보면 아이의 시간들이 문득 보이잖아요. 아이의 길지 않은 시간과 아이의 작은 몸에는 언니가 깃들어 있었어요. 언니의 사랑과 정성이, 저와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겨주던 그 진심 어린 마음의 모체가 깃들어 있었어요.


너무 일찍 떠났지만 충만한 사랑과 정성을 품고 간 아이는 하늘에서도 맑고 푸른 아이로 티없이 살아갈 거예요. 자기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나누며 예쁘게 활짝 웃을 거예요. 저는 감히 줄 수 없는 온기를 언니 안에 다시 깃든 아이가 줄 거예요, 언니. 저는 그렇게 믿어요.



우리는 내일 또 만나요. 언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곁에 머무는 것.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서서 함께 할게요.



그리고 어여쁜 아가... 부디 조심히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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