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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May 08. 2021

고3 이후 처음이다

성당을 가고 싶은 이 야속한 마음들




내겐 엄청난 신앙심이나 믿음보다는 그저 아무 조건 없이, 대가 없이 의지할 수 있는 게 종교였다. 가톨릭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에 축하를 받으며 어린이미사나 주일학교를 다녔다. 으레 그렇듯 그냥 그 나이, 초등학생의 토요일 일과였다.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이후에 견진성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냉담자다.



내 의지로, 자발적인 어떤 필요로 성당을 열심히 다녔던 것은 고등학교 2,3학년 때였다. 학교 특성상 밥먹듯이 참가하는 전국 규모 백일장이나 공모전들에서 살떨리는 경쟁을 하고 다니며 심신이 지쳐갔다. 대입을 앞두고 내가 하는 노력말고 또 무언가 더 하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다. 기도는 무언가를 간절히, 목놓아 비는 행위이면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딱히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거나 후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도는 내가 기를 쓰고 하고 있는 노력 위에 얹을 수 있는 마지막 행위였고, 그것에는 어떠한 책임도 의무도 반성도 후회도 붙지 않는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나는 나를 갉아먹을 필요도, 애꿎은 십자가를 째려볼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그냥 내 마음을 한번 더 붙잡아보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렇게 십 대를 마무리하고 이사를 갔다. 새 동네에서 다니게 된 성당은 성전 건립을 해야 하는 작은 성당이었다. 얼마 후 새로 신부님이 오셨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성전이 세워졌다. 그때 참 좋은 신부님 덕분에 성당을 꽤 오래 다녔다. 그리고는 또 결혼을 하고 동네를 옮기며 자연스레 냉담을 하게 됐다. 어떤 결핍이나 불안이 없는 상태였다고 포장을 해볼까 싶지만 이게 포장인가. 글쎄. 원래 내게 기도가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나는 별달리 빌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몇 주 전부터 성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주일미사든 평일미사든 아니면 미사가 없을 때라도 그곳에 앉아 있고 싶어진다. 나를 볶아치는 많은 일 가운데 평정이란 무엇일까. 이제는 무엇을 빌고 싶다기보다 내 마음을 위해서 가고 싶어진다. 아 이것도 나의 필요인 건 같구나.



오늘 친정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가는 길에 배티성지 표지판을 보고 핸들을 틀었다. 아이들은 거센 바람을 뚫고 처음으로 촛불 봉헌을 했다. 한번도 가톨릭에 대해 이야기한 적 없기에 아이들은 성모상과 아멘,에 대해 물어왔다. 성호를 긋다가 며칠 전 할아버지 산소에서 읊던 기도문이 생각났다. 이젠 정말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기도보다 내 안을 달래기 위한 기도가 하고 싶어진다.






곧 성당에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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