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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Feb 19. 2021

불쌍한 내 인생




나로서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방식이 있고 그 삶은 그 자체로 그냥 있는 것이다. 내 시간들이 굳이 어떤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될 필요는 없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매 순간을 나로서 살아갈 뿐이다.



다만 문제는 이게 나 하나에서 끝나지 않을 때 생기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종종 찾아오는 중압감이나 우울감 같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아이의 삶을 들여다보며 아무 때나 내가 소환될 수 있는 것.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의 삶에서 언제나 내 삶이 들춰지고 내 방식이 들춰지고 결국 모든 것이 내 탓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이 세계. 모든 게 부모의 탓, 부모의 문제로 귀결되는 이 세계.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나를 옥죈다.



아이는 나를 무서운 엄마, 화내는 엄마로 종종 묘사한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저 아이한테 그런 기억을 심어주면서  버티고 살아야 되는 걸까. 나는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어느날 문득 저 아이한테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자연스레 내 탓이 겠지. 왜 이 시간들을 살아내야 할까. 내가  뒤집어쓰살아야  날들이 너무 뻔해서, 그걸 알고 버티는 게 진짜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은 날이 잦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아이의 삶 전체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힘든 일을 왜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는, 사람들은 권할까. 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에서 매번 소환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내 삶도 벅찬데.




다들 어떻게 버티고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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