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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Apr 01. 2021

아들과 나누는 평등이야기(2)

지겨운 색깔 논쟁, 그 경계를 허무는 날들




색깔로 남과 여를 구분 짓는 것은 이제 정말 식상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겹고 지루한 이야기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체 그게 뭐길래! 왜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점점 내 취향보다 사회적 취향을 따르게 될까. 그게 왜 당연한 수순일까. 정말 이 약속은 깰 수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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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도 썼듯이 큰아들의 애착 이불은 분홍색이었다. 아이 세네 살 무렵 겪은 이 일로 나는 더 의식적으로 색의 경계를 뭉개야겠다고 생각했고 큰아들과는 그런 대화가 꾸준히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일곱 살 어느 날은 겨울왕국 캐릭터가 그려진 물병을 골라왔다. 여덟 살 어느 날에는 겨울왕국 공책 세트를 골랐다. 보라색에 엘사와 안나와 울라프가 그려진, 누가 봐도 '여자'것이라고 할 만한 공책이었다. 아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뭐 어때, 생각했다. 그렇게 자라나는 아이가 반가웠고 어딘가 대견했다. 하지만 내 아이의 대견함과 달리 문방구에는 여자용과 남자용이라는 표식으로 학용품을 구분해놓고 판매한다. 차이는 색깔이나 캐릭터뿐, 다른 차이는 없다.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아니라 평등주의적 시각에서 보자. 정말 괜찮은가?




큰아들보다는 이런 대화의 기회가 적었던 작은아들. 어느 날 분홍색으로 된 무언가를 보더니 말한다.


"에이, 이거 여자 거잖아!"

옳거니. 기회가 왔구나.


"그래? 왜?"라고 묻자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어서 만화 캐릭터를 읊으며 그건 여자 만화, 이건 남자 만화로 철저하게 구분 짓고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쏟아낼 말들이 참 많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 게다가 가만히 듣던 큰아들이 이미 그런 건 없다고 옆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중이어서 그냥 가벼이 넘어갔다. 대신 나는 분홍색 식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선물했다. 이거 네 거야.







눈치 빠르고 상황 파악이 빠른 작은아들은 그날 이후로 의식적으로 색의 이분법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게 보였다. 내심 좋아했던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일부러 더 골라보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였다. 남자는 파랑이지! 라는 담론에서 벗어나려고 저 작은 녀석이 자기 자신을 단속하는 게 눈에 보였다. 고작 여섯 살이던 아이가 그새 색의 이분법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허물기 위해 저렇게 의식적으로 한 번 더 생각을 해야 하다니. 무엇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나, 묻기도 지친다. 어쨌든 작은아들은 '학습된 결과', 색의 경계를 뭉개려고 노력하니 다행인가?




그런데 또 이런 일이 생긴다.




큰아들이 학원 간 사이, 나와 작은아들은 형아 일기장을 사러 문방구에 갔다. 거의 다 팔려서 남은 거라곤 핑크색에 꽃 그림, 연보라색에 리본과 토끼 그림이 있는 공책뿐이었다. 문방구가 말하는 "여자용"이다. 그새 작은아이는 "엄마 여기 일기장 있다!" 하며 연보라색을 집어 들었다. 나는 그걸 들고 잠시 고민한다. "형아는 괜찮다고 할 거 같은데 친구들이 놀리면 어떡하지?" 나는 속으로 하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작은아들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아냐. 형아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을 거야." 우리는 걱정을 안고 집으로 갔다.






형아가 집에 오자, 동생이 일기장을 흔들며 말한다.     "형아! 내가 엄마랑 가서 이거 사왔는데 친구들이 여자 거라고 놀릴 수도 있을  같은데 어때?" 큰아이는 공책을 받아 들고 말한다.




뭔 소리야. 귀엽기만 하구만.



우리는 같이 킥킥거렸다.

그래. 맞네. 그 말이 정답이네.

뭔 소리야. 진짜 다 뭔 소리야. 그치.




꼴랑 색깔로부터 자유롭기까지 이렇게 많은 품이 든다. 자연스럽게 두면 자연스럽게 그 이분법에 갇히고 마는 이 요상한 세계. 꾸준히 대화하며 스스로 깨달은 큰아들을 보면 작은아들에게 의도적으로, 학습시키듯 이야기한 이 과정도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들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우리 일단 경계부터 허물고 다시 이야기하자.




대체 색이 뭐라고! 다양성을 주장하는 운동마다 무지개가 나오는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일 거야. 각자의 색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것. 모두가 평등한 것이 얼마나 힘든지. 우연찮게 작은아들 그림에서 무지개색을 발견했다. 큰아들은 어제 어떤 음악을 듣고 쌍무지개를 그렸다고 한다. 우연이 쌓여 삶을 이룬다고 생각하는 내게 이 모든 장면은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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