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료 현실
우리나라에는 의료기관 중 Big 5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왜 Best 5라고 하지 않고 Big 5라고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큰 병원과 좋은 병원의 차이가 무엇일까? 크면 좋은 병원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의료계 내부의 생각은 좀 다르다는 것을 일반인은 잘 모를 것이다.
Big5는 병상수가 많은 병원 상위 다섯을 말하는 것인데 이 말이 Best 5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다.
서울아산병원 2,947 병상 신촌세브란스병원 2,620 병상 삼성서울병원 2,168 병상 서울대학병원 1,901 병상 서울성모병원 1454 병상이다.
숫자로만 보면 병원의 순위가 병상 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병상 규모가 작은 병원 중에는 이들의 수준을 능가하는 병원이 없을까? 전국에 대학병원이 마흔 개가 넘는데, 크기로 순위를 정하면 맨 꼴찌인 병원은 학생 교육도 시키기 곤란한 곳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실 교육을 막고 의료의 질을 일정 수준 유지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곳이 의학교육평가원인데 정부는 이들의 기능을 부정하려 시도했었다.
무조건 큰 것이 좋은 것이야! 를 외치는 사람에게는 이런 지적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겠지만, 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의료를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병원이 평가되는 것은 문제가 아주 커 보인다. 이러니 대학병원들이 병상 확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되어, 대도시,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병상 과잉 현상이 생겼다.
지난해 전공의가 사표를 내고 퇴직을 한 후에 전공의 수가 많던 큰 병원일수록 일손이 부족해졌다. 이 부족한 일손을 누가 메웠을까? 그냥 교수와 전임의들이 자기 몸을 갈아 넣어 시스템을 유지했을까? 그렇게 했다면 병원은 3-5개월이면 다 문을 닫았겠지만, 지금도 부도난 병원도 문 닫은 병원도 없는 것을 보면 하늘이 내린 비책이 있지 않았을까?
빈 인력 공간을 누가,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채웠을까? PA라는 아무런 합법적 자격이 없는 사람, 정규적인 교육 과정도 없는 불법적 인력이 이를 대체하고 있고 정부도 의료계도 제 각기 자기 앞가림에 바빠서 그냥 눈감고 넘어가고 있는데, 국민만 흰가운 입고 있는 사람은 다 면허를 갖고 있는 의사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일 할 수 있는 근거는 '의사의 감독하에..'라는 정말 애매한 책임 소재를 표현하는 단어뿐인데, 이런 상황에서 일하는 인원이 2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멀쩡한 나라에서 불법 의료인력 2만 명이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정부가 몰라서 이를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합법화하겠다고 법을 만들고 교육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럼 지금까지 일하던 이 사람들에 대한 관리계획은 무엇일까? 짧은 기간 재교육 후 간단한 절차를 거쳐 자격을 주고 합법화하면 되겠지... 그렇게 합법화하면 만약 전공의가 돌아오는 일이 생긴다면, 이들과 업무상 부딪히지는 않을까? 지도 전문의들이 미숙하다고 전공의를 밀어내면 의료의 후속 세대는 모두 PA에게 맡길 것인가? 그들에게 의사면허를 줄 것인가? 그러려면 의과대학 정원을 늘릴 이유가 없지 않겠나?
지금 같은 방식의 의료시스템은 길어야 5년이면 무너질 것이다. 의대생들은 의무사관후보생 신체검사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곧 군의관이 되고자 하는 자원이 없어지고, 공중보건의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PA가 해도 된다고 믿고 있는가? 한의사들이 나서겠다고 하긴 하지만...
지금 우리는 심각한 의료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 무서운 현실을 모두가 모른 척하고 있다. 왜 그럴까? 오랜 기간 문제의 핵심을 피해 가며 대충대충 가던 것이 관행이 되어서 이다. 그리고 이 불법의료행위의 문제에는 많은 의사들이 직접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묻어두고 가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대형병원뿐 아니라 소규모 병의원들도 어느 정도 다 문제를 안고 있어서 의사협회조차 큰소리를 못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의료법을 아예 폐지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의료법이 없어지면 모두가 합법이 될 것이다. 합법이면 문제없는 것인가? 의료의 미래가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