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미술관은 만원인데..

by 혼자놀기

요즘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입장객 수가 세계 6위라는 뉴스가 나왔다. 세상 정보에 늦은 나는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손자를 데리고 고려청자 구경 시켜주러 갔다가 입장 시작 시간인 열 시에 200여 미터쯤 되는 줄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설마 저 줄이 무료 입장하는 상설전시장으로 향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앞으로 슬슬 나갔다가 줄 뒤꽁무니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요즘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인 '케데헌' '국중박'이란 줄임말이 세상을 떠돌고, 박물관 전통문화 굿즈가 매진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물관 검색문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고려관에 가서 청자를 구경하고, 신라 토기도 구경하는데 정말 인산인해이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 모두 귀에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필기를 하면서 다닌다. 문화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다. 이것도 유행을 타는 것인가? 가만 생각을 해보니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점심을 내부 식당에서 먹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나는 참 형이하학적인 인간이다. 우아하게 고려청자 구경하러 와서 점심 먹는 일에나 신경을 쓰고 있으니...) 시계를 보니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푸드코트까지 가려면 거리가 멀어서 신라관에서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이 꽤 많다. 주문은 패드를 통해서 계산까지 한꺼번에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주문하는 것에 익숙지 않지만 별 수 없이 낑낑대면서 주문을 하는데 옆자리에 우리보다 늦게 온 젊은 엄마와 아이들은 이미 주문을 끝내고 모바일폰 속으로 들어가 있다. 워낙 주문이 밀리는지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간 것인지 확인하는 소리가 들린다. 순차적으로 배달하고 있다고 양해를 구한다. 옆자리에 음식이 나온다. 우리도 곧 나오겠구나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니 입장한 지 25분이 되었다. 음식 맛은 그런대로 괜찮다. 입 짧은 손주도 돈가스와 닭강정을 맛있게 잘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하다가 2층 3층 구경하고 2층에 있는 가게에서 먹자고 하고 '사유의 방'으로 갔다. 나야 자주 가서 한참씩 서있다 오는 곳이라 익숙하지만,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는 것이 손자는 마땅치 않은 듯하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니 헉! 인산이해를 또 경험한다. "사유를 못하는 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매스컴에 나오는 것처럼 입장객이 많고 굿즈가 매진되는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느낌을 경험하기는 힘들고,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증명만을 하는 것 아닌가?


국립중앙박물관의 입장이 무료인 것은 수익 사업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수익 사업이 아닌 것은 좀 더 우리의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함일 텐데 그러면 예약제로 하거나 시간당 인원을 제한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손자가 사람이 너무 많으니 힘든 모양이다. 집에 갔으면 한다. 그래도 온 김에 어린이 박물관을 한번 보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그러겠다고 한다. 1층으로 내려가 어린이 박물관 쪽으로 가니 푸드코트 앞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있다. 이제 점심시간이 시작되었으니 줄이 겹겹이 늘어섰다. 저들은 언제 입장이 가능할까 하면서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요즘 우리나라 국민의 문화 수요가 엄청 늘어난 것은 사실인듯 하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한국현대미술전'과 '론뮤익전'을 보러 갔더니 거기도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론뮤익전은 혼잡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차분히 작품을 관찰하거나 감상하고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날이 주말이나 공휴일이 아니고 평일 오후였는데도 그랬다. 그런데 그 옆의 국제갤러리, 학고제에서는 좋은 전시를 하는 중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다. 여기도 입장료가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국제갤러리 식당만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주 조용한 가운데 전시를 보고 있으니 잘 이해하기 힘든 현재미술임에도 기분이 좋아지고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지난봄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일본 나오시마를 한번 더 다녀오자는 의견이 있어서 일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참가했던 분들 대부분이 이미 두 번, 세 번 방문 경험이 있었는데, 돌아오면서 이제 다시는 나오시마에는 가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거기는 문화 예술을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이제는 아니다. 그냥 사람이 몰리는 관광지이고 그것도 제대로는 운영이 되지 못하는 관광지라는 것에 모두 동의하였다. 도저히 찬찬히 작품을 감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 제임스 터렐관은 심했다. 요즘 이태원의 페이스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제임스 터렐전시도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전시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몰리는 것도 좋은 현상이기는 하지만, 작품 감상이 불편할 정도가 되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까?


갤러리들은 모두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는데도 키아프와 프리즈에는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매출도 꽤 되는 모양인데 여기저기 알만한 갤러리들이 문을 닫고 있다. 요즘 갤러리에 자주 다니면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들 입장에서야 동의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호당 가격이 정해지는 시스템은 아무래도 수긍할 수가 없다. 아파트 평수도 아니고 크기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시스템은 예술품을 평가하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예술성에 따라 가격이 정해져야 진정한 예술품이 아닐까?


갤러리들의 비즈니스에 의해 정해진 가격을 아마추어 콜렉터들에게 틀림없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말로 투자를 유도하고 팔고 나면 나는 모른다는 식의 전략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언젠가 잘 알고 지내는 갤러리스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어서 '저거 사두면 나중에 가격이 오를까요?'

"교수님 저거 마음에 드세요?"

'그렇네요 집에 걸기에 크기도 적당하고, 가격도 적당하고요.'

"교수님 댁에 삼성 대형 텔레비전 사서 걸어놓고 있다가, 10년 후 되팔아서 이익 볼 생각을 하신 적이 있나요?"

'그거나 10년 지나면 폐품 처리해야지요.'

"미술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것 방에 걸어두고 한 십 년 감상하시다가 지루해지면 다른 것으로 바꾸고, 가지고 있던 것은 옥션에 내던가, 마음에 들어 하는 지인을 주시던가 하세요."

"대개의 작품이 크게 가격이 오르는 일이 없습니다. 환상이지요.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일이 더 많지요. 어떤 때는 폐기 비용이 더 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제 미술품이 투자라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냥 좋은 작품을 즐기다가 하늘이 기회를 주면 큰돈을 버는 것이지요. 예술 작품이란 것이 시대를 반영하는 물건이라 시대에 따라 그 가치의 부침이 하늘과 땅인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냥 예술품이라 생각하시고 즐기세요."

'어떤 유명한 화상이 이 작가 연로해서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사두면 큰돈 된다고 하던데요.'

"에이 사기꾼이지요. 주식 샀다가 휴지 되는 것보다 더 쉽게 휴지가 될 수 있어요."

이런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믿기는 누구를 믿나? 너 자신의 판단으로 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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